2022. 11. 22.
평소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필자 내외가 10월 29일 밤의 참사 소식을 접한 건 다음 날 새벽, 미국에 있는 딸한테 다급한 안부 연락을 받고서였다. 그곳 언론이 이 일로 난리라는 소식도 전했다. 대뜸 든 생각은 거짓 뉴스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급히 켠 TV에서 참사 속보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이태원 거리에서 대형 압사 사고라니. 유튜브에서 참사 현장 동영상들을 찾아본 이유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갑작스레 치명적 질병을 통보받은 심정이 이러할까. 절대 사실일 리 없다는 부정 심리,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하는 분노, 아무리 애써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급기야 동료 교수와 심한 언쟁을 벌였다. “참사의 뿌리는 각종 탈법을 일삼고 핼러윈이라는 외래문화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상인들의 탐욕이다. 차제에 그 소돔을 갈아엎고 추모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강남역 일원도 홍대 앞도 갈아엎어야 하나. 아예 온 서울을 추모 공원으로 만들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노려볼 뿐 이성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이제 제법 시일이 흘렀지만 아픔은 좀체 가시질 않는다. 민주당은 책임자 즉각 파면, 국정조사·특검 동시 추진을 요구했다. 새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지 않고,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경찰 기동 인력이 적시 투입되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퇴근길에 튼 공영방송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공공연히 훌쩍거렸고, “추모가 작위적이다” “희생자가 누군지 몰라 슬픔이 구체화되지 못한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며칠 후 극렬 반정부 성향 온라인 매체들이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미사에서 그 이름들을 호명했다.
마치 종말을 맞은 듯 비이성이 판치는 이런 상황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사가 남긴 혼란, 분노,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 첫걸음은 관계 부처, 지자체, 경찰의 수장들이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건축가 유현준(11월 11일)의 글이다. “10월 서울 거리에는 두 종류의 집단 모임이 있었다. 하나는 정치 집회, 다른 하나는 이태원 핼러윈 파티다. 전자는 흑백의 사고와 증오, 후자는 개성을 표출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전자에 해당하는 광화문광장의 크기는 4만4200㎡, 후자에 해당하는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의 크기는 1860㎡였다. 정치적 신념은 상시로 표출되지만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은 1년 중 하루만 허락되었다.”(발췌 정리)
글을 읽으며 몸을 떨었다. 문제는 ‘나’였다.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마땅치 않게 여겨 그들을 안전 사각지대인 이태원의 좁은 공간에 가둔 게 나였다. 참사 소식을 접하고도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게 나였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존재가 나였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 장관, “핼러윈 축제는 행사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한 지자체의 장, 위급한 상황에서 뒷짐 지고 걸은 경찰서장, 자리를 비운 112 책임자가 모두 이 사회의 기성세대인 나였다.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심정으로 희생자들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우리 세대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태원 참사가 남긴 상처는 너무도 깊고 아프다. 그 사실과 원인은 샅샅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너절한 감성팔이며 화풀이는 중단되어야 한다. 더 이상 아픈 죽음을 정치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재난의 정치적 속죄양을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되는 대신, 고정관념과 안일함에 빠져 사회적 소임의 최소치에 머물렀던 ‘나’를 반성하며, 그 소임의 최대치를 되새겨야 한다. 그게 진정한 추모다. 그게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보여야 할 책임 있는 자세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은 ‘퇴진이 추모다’를 외치는 정치 진영과 그 맞불 진영으로 갈라졌다. 그 정치적 대립의 공간 너머 이태원에서는 참사 현장을 찾는 이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는 자발적인 추모 연주와 애도 모임이 열렸다. 시민들은 그렇게 성숙한 모습으로 이태원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윤석민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