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네작가 한현숙입니다. 오늘은 산책하듯이, 사색하듯이 방문하기 좋은 당진의 핫플레이스, 아미미술관을 소개할께요. 자연과 미술이 만난 아미미술관은 작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이 폐교된 (구)유동초등학교를 활용해 만든 사립미술관으로, 생태미술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미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 전통문화 유산과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현 상황에서 지역의 건축, 문화, 풍속, 생활상 등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생태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는데요. 단순한 전시 프로그램을 떠나 미술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당진의 생활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는 배, 건물 등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하여 복구, 보존하며 지역사회와 공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하네요.
▪입장료: 성인 7,000원
▪24개월 ~ 고등학생 5,000원
▪군인 및 복지카드 소지자 5,000원
▪국가유공자 및 70세 이상 5,000원
▪주차: 미술관 바로 옆 공터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해 들어오면
바로 학교 건물이 보입니다. 엄청 관리 잘한 정원 같은 느낌에 포토존이 잘 조성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사진 찍느라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미술관 곳곳은 단순히 꽃과 나무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 조형물이 많이 있습니다. 조형물 각각 포인트가 되는 색이라 더 눈길이 가 멋진 공간을 선물받은 느낌입니다.
한여름 무더위를 잘 견뎌낸 나무들 사이로 비취는 가을 햇살이 산책하기 좋은 따사로움을 선사합니다.
미술관 내부 절반은 그림을 전시하고 있고, 절반은 '나의정원-모두의정원'으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미술관 입구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한 후 사진을 찍고 '방랑자 환상곡' 전을 관람했습니다.
방랑자 환상곡은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일주일 연장 전시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림전시장은 교실의 원형은 살리고 전시작품은 돋보이도록 레트로한 느낌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시해설 시간이 지나서 따로 듣지는 못했지만 큐레이팅이 적혀 있어서 그림에 문외한인 필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방랑자 환상곡(wanderer fantasy)◇
전시기간: 7월 04~10월 22일
2024 아미의 작가들 : 권기동, 김상덕, 이가은, 지오최, 허현주, 홍시연
…이곳의 태양은 내게 너무 차갑게 느껴지네/ 꽃은 시들었고, 인생은 늙었으며/
사람들의 말은 공허한 울림일 뿐, /어디서나 나는 이방인이라네…
-게오르크 필립 슈미트 <방랑자>(부분) -
‘방랑자 환상곡(wanderer fantasy)’은 이 시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형식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곡한 판타지로 분류된다고 해요. 오늘날 판타지는 음악보다는 문학과 영화에서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지만, 본래는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의미하는 환상(幻想)을 뜻한다고 합니다.
환상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됨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음악, 문학, 영화 등에서 형식의 구애 없이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세계관을 한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데요. 또 종종 현실 세계과의 대비를 통해 ‘과연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환영(幻影, illusion)과 연결되기도 한다고 해요.
고대 인도 철학에서는 우리가 사는 물질적인 세상을 마야(maya), 즉 참모습을 잊어버린 채 무명(無明)의 상태에서 잠시 머무는 환영으로 보았는데요. 또 16세기 네델란드 화가들은 해골 등을 그린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로 삶 자체가 공허한 것임을 상기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판소리 단가에서도 역려과객(逆旅過客)이라 하여 ‘인생이 여관에 머무는 나그네와 같음’을 말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했는데요. 슈베르트 또한 비참한 현실을 견디며 이상적 세계를 향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슈베르트는 비참한 현실을 견디며 이상적 세계를 향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을 음악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 역시 환상과 환영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인생 자체가 환영일 수 있음을 표현하고, 타인과 모호한 경계를 이루는 ‘나’라는 실체에 의문을 던지며, 나를 스쳐가는 타인조차 부유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도시에서 목격되는 비현실적 경관이나 환상적인 자연 풍경들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묻기도 하는데요.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미술에서의 판타지까지도 다양하게 아우름으로써 보다 다채로운 환상곡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전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다른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일상에서 목격했던 비현실적 경관이나 환상적인 자연 풍경들을 떠올리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요.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시간이나 공간을 알 수가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환상적으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매일 눈을 뜨고 일상을 이어가지만 어떤 것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이 있는데요. 판타지 영화나 문학에서처럼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오늘 이렇게 아미미술관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나만의 세상을 꿈꾸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기 다른 얼룩말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는 얼룩말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시장엔 실제로 살아있는 담쟁이덩굴과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져서 마치 야외정원에 전시한 느낌이 들었어요. 행복한 기다림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달걀 후라이를 기다리는 관람객의 모습도 하나의 작품입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전시관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은데요. 폐교실의 장점을 잘 활용해 미술관을 만든 박기호, 구현숙 작가의 예술감각에 엄지척이 절로 나왔습니다.
위 그림은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촬영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실제로 매년 동일한 장소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연속 촬영했다고 합니다.
작가별로 특색이 있는 작품과, 큐레이팅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며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시공간별로 2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시리즈처럼 동일한 내용의 그림들이 있어 이해하기도 좋았는데요. 가면을 쓰고 내면을 숨기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낸 홍시연 작가의 그림도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나의정원-모두의 정원'은 교실 복도에서부터 정원처럼 꾸며져 있어 확실하게 구역이 구분되는데요. 복도에는 실제로 학교에서 사용했던 소품들도 있습니다. 각 교실별로 핑크색, 보라색, 하얀색 나무 조형물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흰색 조형물은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햇살과 어우러져 인제 자작나무 숲을 연상하게 하네요.
교실을 나와 밖으로 가면 운동장으로 가는 길로 이어지는데 이 공간도 모두의 정원 연장선의 작품들과 포토존이 있어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셧터누르는 소리와 감탄사로 와글와글합니다.
미술관은 크지 않지만 꽤 넓은 운동장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에서 힐링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운동장 한켠엔 지베르니라는 카페가 있어 미술관 관람하느라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카페로 향했습니다.
카페명이 지베르니라 모네가 연상되기도 하고, 미술적으로 꾸며 놓은 내부도 엄청 독특했어요.
카페 가구들과 소품들도 특색있고 편안해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아미미술관 방문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