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10 년전의 일기)
새벽에 어판장에 나가면, 오징어 배 조명 사이로 멀리 여객선항에 썬플라워호가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7시반 출항을 앞두고 준비를 하고 있는듯, 조명이 환하다.
바다 날씨가 안좋은 날이면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기도 하고, 울릉도에서 발이 묶인 날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썬플라워호를 매일 새벽 볼 때마다 마음이 설랜다.
마치, 내가 그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곧 나갈 것 처럼 들뜬 마음이 되곤 한다.
나는, 마냥, 어디론가 가고 싶은 것일까?
여기, 묵호항은 항상 들떠있는 도시다. 묵호항은 어항과 산업항과 여객선 항이 같이 있기에 항구가 몹시 복잡하다.
그래서, 토박이 보다 뜨내기가 더 많은 편이다. 묵호항 산동네 사람들은 배고픈 시절 전국에서 오징어배를 타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나 역시, 이방인임에 다름이 아니다.
생선을 팔기 위해 머믈고 있는 늙은 상인일 뿐이다.
그래서, 썬플라워호를 타고 이방인은 어디론가 가고 싶은 것일까?
들뜬 도시에서 들뜬 이방인은 어울리는 일이다.
그리고 파도에 휘청이는 썬플라워호는 이방인을 실어나르는 배다.
올 봄, 대게 철이 지나고 아내와 나는, 썬플라워호를 타고 울릉도에 갔었다.
아이들 어릴 때, 제주도 간 것을 제외 한다면 오랜만의 부부 여행이었다. 처음, 별로 내켜하지 않던 아내도 배를 타자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울릉도에 도착해서, 울릉도 별미 약초 한우와 울릉도 호박 막걸리로 저녁을 때우고, 우리는 모처럼 깊고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오랜 잠에 빠졌다.
낮에 관광버스를 따라다니다가, 저녁에 식사를 하고 초저녁에 잠이 들어버리는 단순한 여행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울릉도 여행 내내 들떠 있었다.
육지와 격리되어 있다는 마음이 현실을 떠나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온전히 오랜만에 나와 아내만의 시간이었다.
그 후, 울릉도에서 돌아와 매일 새벽 어판장에 나가서, 그 배를 보는 순간 매번 경험하는 것은 울릉도에서의 들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느꼈을 아내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여행을 너무나 감동스럽게 생각하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별다른 일들이 없었다.
착한 아내는 잘나가던 한국은행 마저 포기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유학생을 위해, 향수병을 앓고 있던 나를 위해, 나 보다 더한 자신의 향수병 마저 포기하고 견뎌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개념 조차 없었던 무심한 남편 곁에서 묵묵히 살아주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경제적 고통은 주지 않았지만 다정함이라고는 없는 나를 위해 내 옆에 있었다.
울릉도는 그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부부가 나누어야 할 대화와 행동 조차 서툴렀던 내가 앞으로 아내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여행이었다.
울릉도는.
앞으로 언제 다시 울릉도에 갈지 모르겠지만, 다음 울릉도 여행에서는 좀더 세련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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