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말, 로마 시대 유대인 출신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의 시초부터 본인이 살던 당대까지, 이방인 독자를 위한『유대 고대사』를 저술했다.<사진5>『유대 고대사』의 서두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지만 땅이 짙은 암흑에 덮여 보이지 않고 바람이 그 표면 위로 운행하자, 하느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셨다. … 이는 사실 ‘최초의 날’(the first day)이었다. 하지만 모세는 이를 ‘하루’(one day)라고 했다.”
『유대 고대사』총 20권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권이 아담과 이브의 창조로 시작되는 히브리 성경의 역사 사건들을 따른다. 우리는 단군 신화를 믿지 않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세계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역사가 확고하고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2천 년 유랑 속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 학살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독립을 쟁취한 뛰어난 민족”이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만들어진 유대인』의 저자 슐로모 산드는 ‘유대 민족’이란 개념은 ‘신화를 사실로 만들고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온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라고 얘기한다. 유대인이란 유대교도일 뿐 민족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그 종교의 신화를 민족의 역사로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고학, 역사학, 과학적 증거들은 이미 충분했다. 슐로모 산드는 책의 머리말에서 본인이 인용한 자료는 대부분 예전부터 이스라엘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라고 했다. 다만 그중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것, 역사학자들이 즉각 은폐해버렸던 것, 망각되었던 것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계에는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인데 반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데다, 교육시스템에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고 했다.
슐로모 산드의 주장처럼, 유대 민족의 역사가 신화를 실제 역사로 변모시킨 신화역사(mythistory) 내지는 유사 역사학(pseudohistory)임을 뒷받침하는, 이미 알려져 있다던 사실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유대인』에서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과학적 역사성을 잃게 될 여러 성서의 내용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첫 시작인 창세기에 관련된 사실들만 몇 가지 짚어보기로 한다. 창세기는 그들의 역사서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소설이나 극의 설정과도 같은 것으로, 삼단 논법에 비유하면 대전제에 해당한다. 대전제가 틀리면 소전제가 무엇이든 결론에 오류가 생긴다. 대전제가 거짓이라면 소전제가 무엇이든 결론도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창세기에 나오는 블레셋인과 아람인들은 고고학적, 금석학적 증거를 보았을 때 빨라야 서기전 12~11세기 등장했다. 낙타 역시 서기전 10세기가 시작할 무렵에야 가축화되었고, 운송수단으로 쓰인 것은 서기전 8세기부터다. 그리고 창세기에 언급된 이름의 다수는 서기전 7세기~6세기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내려오는 창세기의 족보와 구약의 몇 가지 사건들의 햇수를 더해보면 인간과 지구의 역사가 현재까지 약 6,000년이 된다고 주장하나, 성경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상부인 現 터키 지역, 심지어는 그들의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도 지금으로부터 9,500~12,000년 전 유적이 출토되었다.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가 있다.<사진6> 1994년부터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은 20년간 이 지역을 집중탐사하고 발굴하여 괴베클리 테페가 적어도 약 1만 2천 년 전의 신전 도시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1만 2천 년 전이면 맘모스가 살았던 시대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 유적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예리코나 터키의 차탈회위크보다도 약 2,000년이나 앞선 문명이 발견된 것이다. 2014년 8월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는 인류 최초의 신전 유적으로, 멀리 160km 떨어진 곳에서 참배하러 올 정도로 중요한 종교적 순례지였다.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T자형 돌기둥들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 신전터가 23개 가량 확인되었는데,<사진7> 기둥에는 단순한 원시시대 예술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묘사가 탁월한 동물들의 조각이 생동감 있게 새겨져 있었다.<사진8> 괴베클리 테페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아직 유적의 10퍼센트만 발굴된 상태로, 지금의 인원으로 완전히 발굴하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건축 양식이 그 시대, 그 지역에서 비교적 흔한 건축물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T자형 기둥이 원형의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고고학 유적지는 지금까지 총 12군데가 발견되었고 2021년 6월엔 괴베클리 테페에서 11개의 새로운 건축물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특히 괴베클리 테페로부터 36km 떨어져 있는 카라한 테페는 그 규모가 괴베클리 테페에 준하며, 괴베클리 테페와 비슷한 시기인 11,0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어 아직 1% 정도만 발굴된 상태지만, 동물들이 조각된 T자 기둥 250여 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구약을 경전으로 삼는 아브라함계 종교들은 성서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고학적 발견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그들의 바람에 반하는 증거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 슐로모 산드는 “그리스도교의 발굴가들은 성서의 권위를 해치지 않도록 구약성서의 모순을 피하려고 이미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순점이 발견된다면, 이들은 언제나 고고학적 결과보다는 성서 텍스트가 말하는 진실을 먼저 택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출애굽에 대한 이집트의 기록은 단 한 건도 없지만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이것을 오랫동안 무시해왔다. 유대 문화에서는 출애굽기에서 유래된 유월절 축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고, 유대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있어서도 출애굽은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겐 출애굽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에 대해 완강한 거부 심리가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이미 알고 있는 신념이 실제와 불일치할 때, 인지 부조화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불편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사실을 무시하는 방법, 합리화하는 방법, 사실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고 실제에 맞게 신념을 수정하는 것일 것이다.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개인이나 조직, 국가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문화, 성격, 가치관, 능력 같은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역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조직도, 국가도, 자신이 채택한 정체성에 의거해 행동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세아니아 관료들이 역사를 새로 쓰려고 기를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가 거짓이면 그 정체성도 거짓이다. 사기꾼은 자신이 거짓말이나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할 뿐. 진실을 도구로 거짓을 구분해본다. 누가 사기꾼인가?
https://theweekly.co.kr/?p=73903
#괴베클리 테페 #세종탐 #예리코
첫댓글 잘 봤습니다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