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장 2절 – 4절
도미티안시대에 교회박해는 주로 소아시아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지역은 바로 사도요한이 교회들을 돌아 보던 지역이었습니다. 박해 앞에서 성도들은 신앙을 버리거나 또는 지극히 형식화된 즉 율법주의적인 신앙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교회의 위기로 보았습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듣지만 말씀이 예배당안에서 끝나 버립니다. 삶은 지극히 세속화되어서 세상의 관점과 방법을 따라 삽니다. 그러니 교회안에 사랑이 식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세상은 이기적인 본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사랑으로 행한다고 하는 것조차도 이기적인 동기와 목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사랑위에서 이웃을 사랑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동기와 목적에서 나오는 사랑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사랑이 식어지고 교회안에서는 말씀이 풍성해도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왜냐하면 말씀은 죄악된 이 세상과 부디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방법으로 살고자 하면 말씀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교회내에서 즉 예배당안에서 만 선포되는 말씀으로 여기닌까 당연히 성령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진리를 멀리하고 세상에 종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신데 진리를 멀리하닌까 모든 삶에서 성령을 멀리하고 대적하고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체적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교회안에는 진리를 따라 행하는 소수의 무리가 있습니다. 이들을 남은 자라고도 부릅니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라고 말해도 그 교회안에 진리를 따라 행하는 소수의 무리가 있습니다. 이 소수의 무리를 통해서 교회는 유지되고 계속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길로 행하는 넓은 길로 가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좁은 길로 행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외부적인 위협아래에서 위부로부터 오는 박해를 피하고자 신앙을 버리는 자들과 또 교회안에 있지만 교회를 자기에게로 줄세우고 자기를 위한 교회를 추구하는 지극히 육체화된 그런 교회속에서 사도요한은 고난가운데서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그런 자들에게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이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안에서 잘하는 자들은 더욱 잘하게 하고 진리안에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은 징계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