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갔었는데요.
주차할 곳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였는데요.
공항 안에는 인산인해였습니다. 이미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코로나 한 가운데 이미 지하철, 백화점, 놀이터, 맛집, 카페에서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문제는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위드 코로나 시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다 같이 예배하며 나아갈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6장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줍니다.
레위인이 언약궤를 큰 돌 위에 두자, 사람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다른 제사까지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우리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 지인들, 교회 지체들이 다 같이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6장 13~21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 벧세메스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13절)
- 밀을 추수하고 있었습니다.
2)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13~14절)
- 그 궤 본 것을 기뻐하였습니다(13절).
-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자 사람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14절).
3) 언약궤는 왜 벧세메스로 왔었을까요?
- 벧세메스는 고핫의 가문과 제사장 가정들을 위한 도시였습니다.
Beth Shemesh was a Levitical city set aside for the clan of Kohath, the Levitical family charged with responsibility of caring for the ark of the covenant (Num 4:4, 15) and was also a designated home for the descendants of Aaron (cf. Josh 21:13–16).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many if not most of the Israelites in this city were from the tribe of Levi and that they, more than most Israelites, would have had cause to celebrate the ark’s return.
Bergen, R. D. (1996). 1, 2 Samuel (Vol. 7, p. 102).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4) 레위인은 궤를 보고 어떻게 행동하였나요? (15절)
-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렸습니다.
- 궤를 큰 돌 위에 두었습니다.
5) 레위인이 궤를 큰 돌 위에 두자, 벧세메스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였나요? (15절)
-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6) 레위인이 궤를 큰 돌 위에 두자 백성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가정, 공동체, 나라가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 블레셋 다섯 방백들은 왜 벧세메스까지 왔나요? (16절)
- 정말 벧세메스로 궤가 가고, 자신들에게 내린 재앙들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인지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께 속건 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어떠하였나요? (17절)
-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
- 가사를 위해 하나,
- 아글론을 위하여 하나,
- 가드를 위하여 하나,
-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였습니다.
3) 드린 바 금 쥐들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그 숫자는 어떠하였을까요? (18절)
-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의 수 대로였습니다.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냄>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1) 베데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19절)
- 57,000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습니다.
- 백성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2) 왜 궤를 들여다보았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 밖에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안은 말할 것도 없고요.
- 궤를 운반하는 고핫 사람들도 궤를 만지거나 볼 수 없었습니다.
According to the Torah (Num 4:5–6), no Israelites outside the Aaronic priesthood were permitted to see even the exterior of the ark, much less its interior. Even the Kohathites, whose God-given duty it was to transport the ark, were forbidden either to touch or view the sacred box.
Bergen, R. D. (1996). 1, 2 Samuel (Vol. 7, p. 103).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20절). 나 자신, 우리 공동체는 어떤 실수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가요?
3)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를 어디로 보내려고 하였나요? (20~21절)
-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궤를 옮겨 가라고 하였습니다.
4) 벧세메스 사람들은 왜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려고 하였을까요?
-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숲의 성읍'이란 뜻이었습니다.
- 오늘날의 위치는 '쿠르엣 엘 에납'(Kuryet el Enab)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사실 기럇여아림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24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 지점에 있었는데요.
- 이렇게 먼 곳에 보내려고 한 이유는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 그리고 정치적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 그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두 곳을 다윗이 블레셋 족속들로부터 회복시켰다는 성경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삼하 5:18-25).
- 사실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기럇여아림이 실로처럼 가나안에 높은 곳이었고, 신과 관련된 예배 장소이었기에 그렇게 했을 수 있습니다.
Why this place rather than one of the ancient sanctuary sites should have been chosen is obscure. It was some fifteen miles (24 km) east-north-east of Bethshemesh, near the borders of Judah, Dan and Benjamin (Josh. 15:9, 10, 60; 18:14, 15); its alternative name, Baalah (Josh. 15:9), may indicate that it had been a Canaanite high place, like Shiloh, and therefore associated with worship, albeit of another god.
Baldwin, J. G. (1988). 1 and 2 Samuel: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Vol. 8, p. 83).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5) 오늘 말씀 중 주신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