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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75회
주양왕(周襄王)은 궁녀 소동(小東)의 말을 듣고 일시적으로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급히 침상 머리맡에 있는 보검을 뽑아들고 태숙(太叔)을 죽이려고 중궁으로 달려갔다. 겨우 몇 걸음 걷다가 홀연 생각을 바꿨다.
“태숙은 태후께서 사랑하는 아들인데 내가 만약 그를 죽인다면, 그의 죄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필시 내가 불효하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태숙은 무예가 고강하니, 만약 불손하게 검을 들고 덤벼든다면 도리어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차라리 잠시 참았다가, 내일 그의 행적을 캐내어 외후(隗后)를 내치면, 태숙도 국내에 머물 면목이 없어 필시 타국으로 달아날 것이다. 그것이 평온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양왕은 크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검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다시 침궁으로 돌아갔다. 양왕은 내시를 내보내 태숙의 동정을 정탐해 오게 하였다. 내시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태숙은 소동이 왕께 호소한 것을 알고 이미 궁을 나갔습니다.”
양왕이 말했다.
“궁문을 출입하는데 어찌하여 짐에게 명을 받지 않는단 말인가? 짐이 방비에 소홀했구나!”
다음 날 아침, 양왕은 중궁의 시첩들을 잡아와 심문하였다. 처음에 시첩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소동을 불러 대질시키자, 마침내 숨기지 못하고 추한 전후 사정을 모두 실토하였다. 양왕은 외후를 냉궁에 가두고 문을 봉쇄한 다음, 담장에 구멍을 뚫어 음식을 넣어주게 하였다.
태숙 대(帶)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자 적(翟)나라로 달아났다. 혜태후(惠太后)는 너무 놀라 병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편, 퇴숙(頹叔)과 도자(桃子)는 외후가 냉궁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당초에 적나라에 병력을 요청하여 정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한 것이 우리 두 사람이었고, 외후와 혼인하라고 청한 것도 우리 두 사람이었소. 그런데 지금 홀연 내침을 당했으니, 翟侯는 필시 분노할 것이오. 그리고 태숙이 적나라로 도망쳤으니, 그는 거짓말로 翟侯를 선동할 것이오, 만약 翟軍이 쳐들어와서 죄를 묻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명할 수 있겠소?”
두 사람은 즉시 가벼운 수레를 타고 태숙을 뒤쫓아 가서, 태숙을 만나 상의하고 말했다.
“翟侯를 만나면 반드시 여차여차 하십시다.”
세 사람은 적나라에 당도하여, 태숙은 교외에 머물러 있고 퇴숙과 도자는 성으로 들어가 翟侯를 만나 아뢰었다.
“당초에 저희가 태숙을 위해 청혼했었는데, 周王이 외후의 미모를 알고 자신이 취하여 정궁으로 삼았습니다. 외후는 단지 태후의 처소에 문안을 갔다가 태숙을 만났는데, 우연히 예전의 혼인 문제를 얘기하다가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궁인들이 말을 지어내 비방한 것을 周王이 경솔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귀국(貴國)이 정나라를 정벌한 공로는 생각하지 않고, 왕후를 냉궁에 가두고 태숙을 국외로 추방하였습니다. 이는 형제를 잊고 은덕을 배신한 것으로, 의리도 없고 은혜도 모르는 것입니다. 저희들에게 군대를 빌려주시면, 왕성으로 쳐들어가 태숙을 왕위에 옹립하고 왕후를 구출하여 국모로 삼겠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귀국의 의거가 될 것입니다.”
翟侯는 그 말을 믿고, 물었다.
“태숙은 어디 있습니까?”
최숙과 도자가 말했다.
“지금 교외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翟侯는 태숙을 성으로 영접하게 하였다. 태숙이 장인을 대하는 예로 상견하자, 翟侯는 크게 기뻐하였다. 翟侯후는 보병과 기병 5천을 내주고, 대장 적정(赤丁)으로 하여금 퇴숙·도자와 함께 태숙을 받들어 주왕실을 정벌하게 하였다.
주양왕은 翟軍이 국경에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부 담백(譚伯)을 사신으로 적나라 군중에 보내 태숙이 내란을 일으킨 죄를 설명하게 하였다. 하지만 적정은 담백을 죽이고, 병력을 몰아 왕성 아래에까지 쳐들어왔다.
양왕은 크게 노하여, 경사(卿士) 원백관(原伯貫)을 대장으로, 모위(毛衛)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병거 3백승을 거느리고 성을 나가 적을 막게 하였다. 원백관은 翟軍이 용맹하다는 것을 알고, 돈거(軘車)를 연결하여 견고한 성처럼 진영을 만들었다. 적정은 몇 차례 충돌했으나 뚫지 못하였다. 연일 싸움을 걸었지만, 원백관은 응하지 않았다.
[‘돈거’는 제74회에도 설명했듯이, 전투에서 수비하는 데 쓰는 병거이다.]
적정은 분노하여 한 계책을 정했다. 취운산(翠雲山) 위에 높은 누대를 설치하고 천자의 깃발을 세운 다음, 한 병사를 태숙으로 분장시켜 누대 위에서 주연을 열어 가무를 즐기게 하였다. 그리고 퇴숙과 도자로 하여금 각기 1천 기병을 거느리고 산의 좌우에 매복하게 하고서, 주나라 군대가 당도하면 누대 위에서 포를 터뜨리는 것을 신호로 하여 일제히 공격하게 하였다.
적정은 또 아들 적풍자(赤風子)로 하여금 기병 5백을 이끌고 주나라 진영 앞으로 가서 욕을 퍼부어 적을 격노하게 하였다. 만약 적이 영문을 열고 출전하면 거짓 패한 척하여 취운산으로 가는 길로 유인하기만 하면, 그것을 공로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였다. 적정은 태숙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접응하기로 하였다.
한편, 적풍자는 5백 기병을 이끌고 가서 싸움을 걸었는데, 원백관은 망루 위에 올라가 적의 숫자가 적은 것을 보고 깔보고 출전하려고 하였다. 모위가 간했다.
“적나라는 속임수를 많이 쓰기 때문에 신중하게 합니다. 적들이 해이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해야 합니다.”
정오쯤 되자, 翟軍은 모두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앉아 욕을 퍼부어댔다.
“周王은 무도한 왕인데, 또 저런 무능한 장수를 기용하였구나. 항복하라고 해도 항복하지 않고, 싸우자고 해도 싸우지 않으니, 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아예 땅바닥에 누워서 욕하는 자들도 있었다. 원백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영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영문이 열리자, 병거 1백승이 달려 나갔는데 병거 위에 한 대장이 서 있었다. 황금빛 투구에 비단 전포를 입고, 손에 대간도(大桿刀)를 들고 있었는데, 바로 원백관이었다.
[‘대간도(大桿刀)’는 자루가 긴 큰 칼이다.]
적풍자가 황급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말에 올라라!”
적풍자는 긴 창을 들고 원백관과 싸웠다. 10합이 못 되어, 적풍자는 말을 돌려 서쪽으로 달아났다. 적나라 군사들은 말에 오르지 못한 자들이 많았는데, 주나라 군사들이 어지럽게 말들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에 전혀 대열을 이루지 못했다. 적풍자는 말을 돌려 다시 원백관과 몇 합 교전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점점 취운산으로 접근해 갔다. 적풍자는 말과 병기를 다 내버리고 몇 기만 이끌고 산 뒤편으로 달아났다.
원백관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산 위에 비룡(飛龍)이 새겨진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데, 비단 일산(日傘) 아래에 태숙이 앉아서 풍악을 울리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원백관이 말했다.
[‘일산’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큰 양산이다.]
“저 역적은 내 손에 끝장날 것이다!”
원백관은 평탄한 곳을 골라 병거를 몰고 산을 올라갔다. 그러자 산 위에서 뇌목(檑木)과 포석(砲石)이 쏟아져 내려와, 원백관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뇌목(檑木)’은 성 위에서 아래로 굴러내려 적을 막는 큰 나무토막이고, ‘포석(砲石)’은 적을 향해 쏘는 돌덩이이다.]
홀연 산요(山坳)에서 연주포(連珠砲) 터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왼쪽에서는 퇴숙이, 오른쪽에서는 도자가 철기(鐵騎)를 거느리고 마치 광풍취우(狂風驟雨)처럼 쳐들어와 원백관의 부대를 포위하였다.
[‘산요(山坳)’는 산속의 우묵하게 팬 곳이다. ‘철기(鐵騎)’는 철갑을 입은 기병이다. ‘광풍취우(狂風驟雨)’는 미친 듯이 불어 닥치는 바람과 별안간 쏟아지는 소나기를 말한다.]
원백관은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급히 병거를 돌리라고 명했으나, 지나왔던 길에는 이미 翟軍들이 베어서 넘어뜨린 나무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어 병거가 지나갈 수 없었다. 원백관은 보병들에게 길을 열라고 소리쳤지만, 군사들은 이미 놀라고 당황하여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원백관은 아무런 계책이 없어 비단 전포를 벗어던지고, 병사들 속에 섞여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때 한 군졸이 소리쳤다.
“장군께서는 이리로 오십시오!”
퇴숙이 그 소리를 듣고 원백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翟軍 기병을 지휘하여 추격하였다, 주나라 군사 2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과연 원백관이 그 가운데 있었다. 그때 적정의 대군이 당도했는데, 이미 전승을 거두었으며 거마와 기계도 모두 노획하였다.
간신히 도망친 주나라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가 모위에게 보고하였다. 모위는 단지 진영을 굳게 지키기만 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을 周王에게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퇴숙이 원백관을 포박하여 태숙에게 바치자, 태숙은 원백관을 군영에 감금하게 하였다. 퇴숙이 말했다.
“지금 원백관이 사로잡혔으니, 모위는 필시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 밤중에 그 진영을 기습하여 화공(火攻)을 하면 모위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태숙은 그 말에 찬성하고, 적정에게 말했다. 적정은 그 계책을 쓰기로 하고 은밀히 호령을 전했다.
그날 밤 자정 이후에, 적정은 친히 보군(步軍) 천여 명을 거느리고 周軍 진영을 기습하였다. 날카로운 도끼로 돈거를 연결한 쇠사슬을 끊고 진영으로 돌입하여 병거 위에 갈대를 쌓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진영 안에 불덩어리가 어지럽게 굴러다니기 시작하자, 周軍은 크게 혼란해졌다. 퇴숙과 도자가 그 기세를 타고 각기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周軍 진영으로 쇄도하였다.
周軍들은 그 날카로운 기세를 당할 수가 없었다. 모위는 급히 작은 병거를 타고 진영 뒤편으로 달아나다가, 마침 翟軍 보병 한 부대와 마주쳤다. 그 부대 대장은 바로 태숙 대였다. 태숙이 소리쳤다.
“모위는 어디로 달아다느냐?”
모위는 당황하여 허둥대다가, 태숙의 쟁(鎗)에 찔려 병거에서 떨어졌다. 翟軍은 전승을 거두고, 마침내 왕성을 포위하였다.
[‘창(槍)’은 자루가 나무로 되어 있는데 비해, ‘쟁(鎗)’은 자루가 쇠로 되어 있다.]
주양왕은 두 장수가 사로잡혔다는 보고를 받고, 부신에게 말했다.
“일찍이 경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런 화를 당하는구려.”
[제74회에, 퇴숙과 도자가 적나라의 군대를 빌려 정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했을 때, 부신이 반대했으나 양왕은 듣지 않았다. 또 양왕이 숙외를 왕후로 세우려 했을 때 부신이 반대했으나, 양왕은 듣지 않았다.]
부신이 말했다.
“翟軍의 기세가 아주 강하니, 왕께서는 잠시 성을 나가 피하십시오. 필시 제후들이 의논하여 왕을 도울 것입니다.”
주공(周公) 공(孔)이 아뢰었다.
“王軍이 비록 패하긴 했지만, 백관의 가병들을 모두 동원하면 성을 등지고 일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어찌 경솔하게 사직을 버리고 목숨을 제후들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소공(召公) 과(過)가 아뢰었다.
“싸우자고 하는 것은 위태로운 계책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 화는 모두 숙외(叔隗)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왕께서 먼저 그녀를 죽인 후에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제후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만전(萬全)을 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양왕이 탄식하며 말했다.
“짐이 현명하지 못하여 화를 자초했도다! 지금 태후의 병이 위중하니, 짐은 잠시 자리를 피하여 그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오. 만약 인심이 짐을 잊지 않는다면, 제후들이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오.”
양왕은 주공과 소공에게 말했다.
“태숙이 지금 온 것은 외후 때문이오. 그가 외후를 취하게 되면 필시 나라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여, 감히 왕성에 머물지 못할 것이오. 두 분 경은 병사들을 잘 다스려 왕성을 굳게 지키면서 짐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시오.”
주공과 소공은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받았다.
양왕이 부신에게 물었다.
“주왕실이 땅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鄭·衛·陳 3국인데, 짐은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소?”
부신이 대답했다.
“陳과 衛는 약하므로, 정나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짐이 지난번에 翟軍으로 하여금 정나라를 정벌하게 했는데, 정나라가 짐을 원망하지 않겠소?”
“신이 왕께 정나라로 가시라고 권한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정나라의 선대(先代)는 주왕실에 공이 있으며 그 후손들도 필시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 翟軍으로 하여금 정나라를 정벌하게 했기 때문에 정나라 사람들은 불만을 품고, 밤낮으로 적나라가 주왕실을 배반함으로써 자신들이 주왕실에 순종했음이 절로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정나라로 가시면, 저들은 필시 기쁘게 영접할 것이니 또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제5회에, 주왕실의 사도 벼슬을 지내던 정환공(우)은 융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제6회에, 세자 굴돌(무공)은 신나라로 가서 태자 의구를 모셔와 왕위에 옹립하였고, 주왕실의 경사 벼슬을 지냈다.]
양왕이 정나라로 가기로 결정하자, 부신이 또 아뢰었다.
“왕께서 翟軍의 예봉을 뚫고 나가려 하시면, 翟軍이 총동원되어 막을 것이므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가병들을 거느리고 나가 翟軍과 결전을 벌일 테니, 왕께서는 그 틈에 성을 나가 피하십시오.”
부신이 자제들과 친척들을 모두 불러 모으니, 수백 명이 되었다. 부신은 그들을 충의로써 설득하여, 성문을 열고 나가 翟軍 진영으로 돌격하였다. 양왕은 그 틈에 간사보(簡師父)와 좌언보(左鄢父) 등 10여 명과 함께 성을 나가 정나라를 향해 달렸다.
부신은 적정과 크게 싸웠다. 죽거나 부상당한 翟軍이 아주 많았는데, 부신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때 퇴숙과 도자가 와서 부신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대가 충간한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바입니다. 오늘 꼭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신이 말했다.
“이전에 내가 왕께 누차 간했는데, 왕이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소. 내가 만약 결사전을 하지 않으면, 왕은 필시 나를 원망할 것이오.”
부신은 다시 전력을 다해 한동안 싸우다가, 마침내 힘이 다해 전사하였다. 부신과 함께 싸우다 죽은 자제들과 친척들이 3백여 명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부신을 칭찬하였다.
用夷凌夏豈良謀 오랑캐를 이용해 중국을 침범한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일까?
納女宣淫禍自求 오랑캐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여 음란한 화를 자초하였다.
驟諫不從仍死戰 몇 번의 간언을 따르지 않아 결사전을 초래했구나.
富辰忠義播春秋 부신의 충의는 춘추시대에 널리 전파되었다.
부신이 전사한 후, 翟軍은 비로소 양왕이 이미 왕성을 빠져나갔음을 알았다. 그때 성문은 다시 닫혔다. 태숙은 원백관을 석방하여, 그로 하여금 성문을 열라고 소리치게 하였다. 주공과 소공이 성루 위에서 태숙에게 말했다.
“본래 성문을 열고 봉영(奉迎)하려고 했으나, 翟軍이 입성하면 노략질을 할까 두려워 감히 성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태숙은 적정에게 성 밖에 둔병하고 있으면, 자신이 입성하여 부고에 있는 재물을 내어 군사들을 호궤(犒饋)하겠다고 하였다. 적정은 승낙하였다.
[‘호궤(犒饋)’는 음식을 베풀어 위로한다는 뜻이다.]
태숙은 왕성으로 들어가자, 먼저 냉궁으로 가서 외후를 구출한 다음 혜태후를 알현하였다. 혜태후는 태숙을 보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한번 웃더니 곧 절명하였다. 태숙은 상을 치르기도 전에 먼저 외후와 궁중에서 환락에 빠졌다.
태숙이 소동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소동은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이미 우물에 몸을 던져 자진한 뒤였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다음 날, 태숙은 태후의 유명(遺命)이라 속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숙외를 왕후로 삼았으며, 조정에 나아가 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부고의 재물을 내어 翟軍을 호궤한 후에, 태후의 장례를 치렀다.
주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莫喪母 且娶婦 모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아내를 취했다네.
婦得嫂 臣娶后 형수를 부인으로 삼고 신하가 왕후를 취했다네.
為不慚 言可醜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추하다고 말할 수 있네.
誰其逐之 누가 그를 쫒아내려나?
我與爾左右 나와 너 바로 좌우의 사람이네!
태숙은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중론(衆論)이 불복하고 있음을 알았다. 다른 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 외후와 함께 온(溫) 땅으로 옮겨가 궁실을 크게 짓고 밤낮으로 환락을 즐겼다.
[앞서 양왕이, 태숙이 외후를 취하게 되면 필시 나라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여 감히 왕성에 머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예상이 적중하였다.]
왕성의 국사는 모두 주공과 소공에게 맡겨 요리하게 하였으니, 명색은 왕이었지만 실제로 신하들이나 백성과는 접촉한 적이 없었다. 원백관은 원성(原城)으로 달아났다.
한편, 주양왕은 왕성을 빠져나가 정나라를 향해 갔지만. 정나라의 뜻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범(氾) 땅에 당도해 보니, 대나무가 많아 일명 죽천(竹川)이라고도 하는데 공관이 없었다. 양왕은 주민들에게 물어보아, 정나라 경계에 들어섰음을 알았다.
수레를 멈추고 농민 봉씨(封氏)의 초당(草堂)을 빌려 유숙하였다. 봉씨가 물었다.
“어떤 직책에 계시는 관원이십니까?”
양왕이 말했다.
“나는 주천자이다. 나라 안에 난이 일어나 피신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봉씨는 크게 놀라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며 말했다.
“저의 집 이랑(二郎)이 어젯밤 붉은 해가 초당을 비추는 꿈을 꾸었다고 했는데, 과연 귀인께서 하강하셨습니다.”
봉씨는 이랑에게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짓게 하였다. 양왕이 물었다.
“이랑이 누구인가?”
봉씨가 대답했다.
“계모(繼母)가 낳은 아우입니다. 저와 이곳에서 함께 살면서 같이 농사를 짓고 계모를 봉양하고 있습니다.”
양왕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대 농부 형제는 이처럼 화목하건만, 짐은 귀하게 천자가 되어서도 도리어 아우에게 해를 입었구나! 짐은 이런 농부보다도 훨씬 못하구나!”
양왕이 처연히 눈물을 흘리자, 대부 좌언보가 말했다.
“주공(周公)께서는 대성인이셨지만, 골육의 변란을 겪었습니다. 왕께서는 너무 상심마시고, 속히 제후들에게 이 난을 알리십시오. 제후들이 필시 좌시(坐視)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74회에도 나왔는데, 무왕(武王)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등극하여 주공(周公)이 섭정하자 주공의 형제인 관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좌시(坐視)’는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는 것이다.]
양왕은 친히 서신을 작성하여, 齊·宋·陳·鄭·衛 각국으로 보냈다.
불곡(不穀)이 부덕하여, 모후께서 총애하시는 아들인 아우 대에게 죄를 얻어, 정나라로 건너가 범 땅에 머물고 있음을 고하노라.
[‘불곡(不穀)’은 왕이나 제후가 자신을 겸손하게 이르는 자칭(自稱)이다. 곡식은 사람을 기르는 물건인데 임금이 백성을 잘 기르지 못하여 곡식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간사보가 아뢰었다.
“오늘날 제후 가운데 패업을 도모하는 자는 오직 秦과 晉뿐입니다. 秦에는 건숙(蹇叔)·백리해(百里奚)·공손지(公孫枝) 같은 현신들이 정사를 맡고 있으며, 晉에는 조쇠(趙衰)·호언(狐偃)·서신(胥臣) 같은 현신들이 정사를 맡고 있으니, 필시 그 군주에게 왕께 충성하라고 권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양왕은 간사보에게 명하여 晉에 가서 알리게 하고, 좌언보에게 명하여 秦에 가서 알리게 하였다.
한편, 정문공(鄭文公)은 양왕이 범 땅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천자는 오늘 비로소 적나라가 정나라보다 못함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양왕에게 정나라로 가라고 할 때, 부신이 말한 예측이 적중하였다.]
정문공은 즉시 장인들을 범 땅으로 보내 임시 거처를 짓게 하고, 친히 범 땅으로 가서 문안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살펴 모두 공급해 주면서 결코 박정하게 대접하지 않았다. 양왕은 정문공을 만나자 부끄러운 기색을 띠었다.
첫댓글 요즘 기력이 딸려 열국지를 못 읽고 있습니다.
연일 수고하심에도 아무 도움을 못드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 늘 응원합니다.
곡 성님 이계셔서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