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이란 광오한 국명을 쓰고 있는 화화족(자칭 중화족)들의 역사
란 것이 일천하다는 것은 같은 화족계통인 대만의 사학자들도 사석에선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는 오늘날 중국이 자기들의 역사라고 말하는 부분중
지극히 일부만을 차지할 뿐이란겁니다.
상고시대의 헌원이후 한,수,당,송,명에 이르기까지 그나마 그들의 역사
라고 봐줄만한 것들이 이들 나라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하,은,주,춘추전국시대,진시황의 진나라,오호십육국시대,원,요,금,청등
은 진실한 그들 화화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상고시대 우리민족은 스스로는 하늘의 자손이라 해서 천손이요 다스리는
임금님을 하늘의 아들이라 해서 천자라 불렀습니다만 저들 화화족들이
그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던 주인의 나라를 범하고난뒤 세력이 강해지자
스스로를 높혀서 쫒겨난 주인의 행세를 오늘날까지도 하고 있는 실정이
랍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그들이 지금도 자신들의 시조라 믿고 있는
헌원제까지도 엄밀히 말한다면 당시(상고시대) 찬하를 다스리던 천손국
의 반란자 수괴라고 보시면 정확할 것입니다.(당시 그 반대편인 통치자
의 입장이었던 우리 조상의 임금님은 이번 월드컵에서 붉은악마들에 의
해 유명해지신 자오지천황,일명 치우 천황이셨지요.
고조선멸망 이후 그나마 부여가 어느정도 그 전통과 영역을 유지했엇으
며, 古조선시대때 삼제후국(번한 진한 마한)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알
고 있는 신라의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제후국이었던 마한은 그 후 남하한 고구려의 이민들과 더불어
백제라는 나라와 가야란 나라로 생겨나게 되고 번한역시 부여의 계승
을 이어받은 고구려에 복속하게되는 것이 우리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
입니다.
나름대로 제가 알고있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설명을 했엇지만 워낙 사료
가 부족한 우리의 상고사인지라 맞지않거나 틀린점이 있을지도 모르니
널리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三國誌 魏志 東夷傳(삼국지 위지 동이전/// 3세기,진수)에 신라지역과 관련해 깜짝 놀랄 기록이 있음을 방영하더군요.
가만있자? 역사 스페셜이 확실한가? 아니면 '한민족의 기원'에 관한 특집방송 이었던가...
하여튼 이 역사서에 보면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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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韓 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自言 古之亡人避秦役 來適韓國…其言語不與馬韓同”
=> "진한 (현 경상도지역)은 마한 (현 호남지방) 동쪽에 있다. 그 나라 노인들이 전해 말하기를 옛날 도망 온 사람들이 진나라의 부역을 피하여 한나라(진한)에 오자 진한은 그 동쪽 국경지방의 땅(현 경상도지방) 을 떼어서 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여기는 성이 있고 그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않다. "
진나라 시절에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백성들을 강제동원했는데(이때 강제노역으로 사람이 많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서북방 유목민들이 강제노역을 피하기 위해 집단으로 한반도 경상도 지방으로 이주를 했다.(진시황도 서북방 유목민 출신 이라는군요, 혹시 동이족?)
이들은 현재 호남지방인 '마한' 사람과는 언어가 틀려 의사소통이 안되었는데, 마한사람들이 이들에게 동쪽 국경의 땅(현 경상도)을 허락하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유목민들 이었으니까 농사를 몰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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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현재의 경상도 지방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는데 중국 서북쪽 변방의 유목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와 농사 짓는 법을 배워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2.1. 북부 : 부여제어 - 부여어, 고구려어, 옥저어, 예어의 상호관계는? 2.2. 남부
三國誌 魏志 東夷傳(3세기,진수)의 언어에 대한 기록
① 고구려어와 부여어의 관계
“東夷舊語 以爲 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腹有異”
동이의 옛말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의 일종이다. 고구려의 언어와 여러 가지 일들이 부여와 같은 점이 많고, 그 성질과 의복은 달랐다.
② 옥저어와 고구려어의 관계
“其言語與句麗大同 時時小異”
그들(옥저)의 언어는 고구려와 대체로 같으나 때때로 조금 다르다.
③예어와 고구려어와의 관계
“其耆老舊自謂 與句麗同種…言語法俗 大抵與句麗同 衣服有異”
옛 노인들이 오래전부터 스스로 일러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하였으며…예어의 언어와 법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고, 그러나 의복은 달랐다.
이와 유사한 기술은 後漢書 東夷傳(5세기,범엽) 기타에서도 발견되며, 부여어, 고구려어,옥저어, 예어를 포괄하는 한 어군을 형성한다. 부여계 제어는 고구려어에 의해 대표되었고, 부여어, 옥저어, 예어 등은 아무런 자료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2.2. 남부 :
한계제어 - 마한어 (→백제어), 진한어 (→신라어), 변한어 (가야어)의 상호관계는?
1) 三國誌 魏志 東夷傳(3세기,진수)의 기록
① 진한어와 마한어의 관계
“辰韓 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自言 古之亡人避秦役 來適韓國…其言語不與馬韓同”
진한은 마한 동쪽에 있다. 그 나라 노인들이 전해 말하기를 옛날 도망 온 사람들이 진나라의 부역을 피하여 한나라에 오자 진한은 그 동쪽 국경지방의 땅을 떼어서 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여기는 성이 있고 그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않다.
② 변한어와 진한어의 관계
“弁辰 與辰韓雜居…言語法俗相似”
변진은 진한과 서로 섞여 산다. 여기도 성곽이 있고 의복이나 거처가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과 풍속도 서로 비슷하다.진한과 변한의 언어는 相似하고, 마한의 언어는 이들과 相異하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2) 後漢書 東夷專(5세기,범엽)
진한과 변한에 대하여 “其言語風俗有異”(진한과 변한의 언어와 풍속은 달랐다.)라 기술하고 있다.
3) 김방한. 이기문의 해석
三國誌 魏志 東夷傳에서 진한과 마한의 언어가 다르다고 한 것에서 其言語는 진한의 언어가 아니라 秦나라의 부역을 피하여 마한의 동쪽 변경에 들어와 정착한 중국인 집단의 언어를 말한다. 이 기술은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辰’과 ‘秦’의 同音性에 말미암은 作爲가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진한과 마한과의 언어차를 기술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방언을 고려하면 세 언어사이의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