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 앞둔 오정희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활동
한국 여성문학의 代母로 평가… 최근 '오정희 컬렉션' 기념 출간
소설가 오정희(70)가 새해에 등단 50주년을 맞게 된다. 오정희 소설을 도맡아 내온 문학과 지성사는 최근 등단 50주년을 앞서 기리기 위해 '오정희 컬렉션'(전 5권)을 냈다. 올해로 출간 40주년이 된 작가의 첫 소설집 '불의 강'을 비롯해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새'의 개정판을 낸 것. 작가가 다시 교정지를 보면서 몇몇 문장을 다듬었고, 초판의 일부 오류도 바로잡았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 문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오정희 소설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와 더불어 오정희는 요즘 활동하는 대다수 여성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82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현재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여성 문학의 대모(代母)'라는 평가에 대해 작가는 "저에게는 박경리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 작가들이 있었다"며 몸을 낮춘 뒤 "글쓰기는 저에게 삶의 변명이자 동력이기도 하다"며 화제를 돌렸다. 올해 주요 문학상을 여성 작가들이 휩쓴 현상에 대해 그녀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중간 지대로서 문학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오정희 소설의 특징은 '여성의 삶과 몸을 통한 인간 존재의 인식, 밀도 높은 문체와 강렬하고 상징적인 언어, 현실과 환상의 혼재,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아득한 심연' 등으로 요약되어 왔다. 오정희 소설의 주요 이미지로 '거울, 우물, 저녁, 바람'이 꼽히기도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아끼던 거울을 갖고 놀면서 '유년의 비밀'을 털어놓은 친구로 삼았고, 거울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만의 환상을 즐겼다"며 "소설을 쓸 때 그런 원체험을 의식하면서 쓴 적은 없지만 평론가 오생근 선생님이 제 소설에 '거울'이 자주 나온다고 해 저도 깨닫게 됐고, '우물'은 거울의 변형인 셈"이라고 말했다. '저녁'이 자주 등장한 것에 대해 작가는 "어두워질 때 저는 정서적 흔들림이나 떨림을 느낀다"며 "평론가 김화영 선생님은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멀리서 오는 어스름'이라고 했는데, 그 불분명한 삶의 순간은 어린 아이의 몽환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오정희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경계한다. 작가는 "젊은 날의 글을 보면 '자기 신비'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학대하기도 했는데, 자기 신비에서 벗어나야 세상과 타인의 신비가 보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불우한 초등학생들을 돌보는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적도 있다. 그 체험으로 목격한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 '새'는 2003년 독일에 서 리베라투르문학상을 받았다.
문학과 더불어 걸어온 반세기에 대해 작가는 "제 초기 소설은 인생의 비밀과 심연을 관념적으로 드러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반석(盤石)이나 비의(秘義)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그 '없음'을 찾아서 헤맨 삶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뒤 "내가 뭘 찾지도 못한 채 이런 말을 하니 민망하다"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