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어느 모자
석야 신웅순
그날도 평소처럼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끌고 가고 할아버지는 옆에서 할머니와 보조를 맞춰 걷고 있었다. 할머니는 걷는다기보다 움직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할머니가 너무 늙었다. 부부 같지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어머니와 아들이었다. 아들은 70 후반쯤 같고 어머니는 90 후반 쯤 보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아들도 걷는데는 힘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 때 나는 40대 후반이었고 어머니는 70대 전반이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걷기 운동을 시키기 위해 이 공원을 매일 나왔었다. 어머니는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나보다 이른 연세에 돌아가셨다.
지금의 나는 저 할아버지였고 지금의 어머니는 저 할머니였다. 그 때는 젊은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이젠 늙은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조금만 걸어도 쉬셨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었을까. 그 뒤뚱거리는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 때는 유모차 같은 보조기구가 없었다. 늘그막 감기라도 앓아보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모른다. 그 상황이 되어 보아야 하고 겪어보아야한다. 그래야 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자식 소용없다 아셨을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자식인들 어디 남편만 하랴.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해 참으로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왜 이제 와서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인가. 내 손녀를 보고 딸들을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그렇게 자식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바람이 많고
당신은 비가 많다
그 곳이 어느 역인지 아무도 모른다
쉬었다 가신 아버지
머물다 가신 어머니
- 신웅순의 「인생 시편 1」
“재들이 뭘 알아?”
부모님도 혼잣말로 되뇌었을, 그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마음이 쓰리다.
“여보, 내 머리 좀 보아. 흰머리도 좀 보아.”
요 몇 년 동안에 흰머리도 부쩍 늘었고 머리도 많이 빠졌다. 옆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 보면 휑하다.
아내는 농 삼아 그런다. 대머리 되면 자기하고 안산다고. 아직도 아내의 풍성하고도 새카만 머리카락을 본다. 머리핀도 꽂을 수 있고 머리도 빗을 수 있다.
“나 좀 머리 빌려줄 수 있을까.”
뭣 하나 나를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에겐 머리가 많지 않으니 머리빗은 이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요새는 그 할머니 할아버지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분명 있다. 그렇게 인생은 산 너머 흰구름처럼 가는 것이다.
- 2024.6.20.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