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풍경에는 바람이 있다
김광기
바람이 분다. 낮이나 밤이나 부는 바람, 바람 속에는 풍경이 있고, 풍경이라는 말에는 바람의 볕, 바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바람 곁에도 있고 그 뒤에도 있는 가십거리로 전달되며 알코올 중독자로 찍힌 그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마누라가 좀 들어가 있어 달래. 근데 어쩌면 좋으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뇌경색 네 번이면 다들 죽는다는데 다섯 번을 맞고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걷지도 못하고 왜 죽지는 않는지, 사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의 어눌한 말투를 들으며 그래도 사는 것에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우물쭈물 전화를 끊는다. 시를 쓰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는 술이 그를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다. 통화 중의 식사는 결국 얹히고 말았다. 언젠가는 나를 먹어치울 어류의 조상쯤 되는 비린내가 오늘따라 더욱 진동한다. 바람이 분다. 낮이나 밤이나 부는 바람, 바람 속에는 풍경이 있고, 풍경이라는 말에는 바람의 볕, 바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시집 『풍경』 2024.3 --------------------- 김광기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아주대 대학원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95년 계간 《다층》 동인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07년 계간 《문학⸳선》에 평론 등단.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풍경』,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