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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재앙, 빌곶제, 팔병신 등 온갖 별명과 창녀와의 SM플레이 따위의 기행으로 유명한 우리의 빌헬름 2세
후대의 짝부랄 콧수염과 함께 독일을 말아잡순 원흉으로 온갖 욕을 쳐먹고 계시는 황제 폐하께서는
1919년 1차대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났다.
비록 망명자 신분이었이지만 재산을 60대의 마차에 나눠 실어야 할 정도로 부유했던 빌헬름
그의 취미는 사냥과 벌목이었는데, 수천 그루를 잘라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즐겼다.
어떻게 전직 황제 취미가 벌목...
그러고도 지루하면 (현실성은 전혀 없는) 전함과 건물의 설계도를 그리면서 놀았다.
어떻게 전직 황제 취미가 밀덕질.......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고,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그리스에 가서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를 발굴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도 했다
물론 회고록을 써서 1차대전의 개전 책임은 본인에겐 없으며, 자신의 외교 정책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변명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빌헬름은 유럽의 정세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나치당이 돌풍을 일으키자, 아내를 통해 호엔촐레른 황조를 복원해달라는 청원을 넣었지만
빌헬름을 망국의 원인으로 극혐했던 히틀러는 그의 청원을 그냥 씹어버렸다
수정의 밤 사건이 일어나자 빌헬름의 나치에 대한 감정은 더욱더 악화되었다.
독일의 '보수적 전통'도 존중하지 않고, 무지한 대중들을 이용해 정권을 잡았으며, 종교적 권위조차 존중하지 않았던 히틀러는 왕권신수설 신봉자 빌헬름과는 완전히 상극이었다. 빌헬름은 히틀러를 가리켜 '폭도들의 두목, 거짓말쟁이와 광신도의 무리를 이끈다...' 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1939년, 폴란드 침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부터 빌헬름 2세의 태도는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빌헬름 2세는 독일군의 성과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시종을 통해 황가를 대표하여 히틀러를 지지한다는 전보를 보낸다.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점령되자, 빌헬름 2세의 기쁨은 한층 더 높아졌다.
"히틀러는 프로이센 정신의 구현자이다... 그는 블뤼허, 클라우제비츠, 그나이제우처럼 싸운다..."
이후 네덜란드를 정복한 독일군이 그의 거처에 나타나자, 빌헬름은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렸다.
그는 황제로서의 체면도 벗어던지고 히틀러를 '총통 각하'라 높이며 직접 축하 전보를 보낼 정도로 열광적인 히틀러 신봉자가 되었다.
빌헬름은 영미 프리메이슨과 유대인들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독일을 집어 삼키려 했으며, 히틀러는 신의 섭리에 따라 그들을 막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믿는 지경까지 이르었다.
1940년 6월, 히틀러가 파리를 함락시켰다. 빌헬름은 감격에 겨워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이제 빌헬름은 히틀러를 절대정신(Zeitgeist) 이라 불렀으며, '가장 위대한 독일인', '신의 사도'와 같은 온갖 미사여구로 히틀러를 극찬했다.
프랑스의 항복에서 느껴지는 깊은 감동과 인상 속에서 나는 그대와 모든 독일군에게 신께서 주신 엄청난 승리를 빌헬름 1세께옵서 위대한 1870년에 남기신 말을 인용하여 축하하고자 하오. "신의 보우하심으로 이 얼마나 엄청난 성취인가!" 모든 독일인들의 심중은 로이텐 전투의 승자들이 불렀던 그 합창이, 위대한 왕의 병사들이 불렀던 그 노래로 가득하오. 우린 이제 우리의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오!"
히틀러는 빌헬름 2세를 미워하면서도 연민을 느꼈으며, 한편으로는 전직 황제마저 자신에게 굽실거린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1941년 6월 4일,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바르샤바의 너른 벌판으로 달려가는 전차들을 보며,
최전성기를 맞이한 독일에서 빌헬름 2세는 숨을 거둔다.
그는 죽기 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인생을 후회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첫댓글 말년을 재밌게 살다 갔네요
완전 호상이네요
호상이네....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