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냄새나는 신발 속에서도 나의 발가락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도록 태어났습니다 사랑을 잃고 시끄러웠던 철다리 밑을 가로질러 올 때에 나의 고요한 발가락들은 서로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발톱이 아무렇게나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고 강 하구에 이르도록 너무 오래 걸었습니다 삼월의 발톱이 사월의 발가락을 찔러 날리던 벚꽃에 피를 묻힐 줄을 몰랐습니다 땅 끝에 이르는 그 긴 길을 절룩거리며 걸어갈 줄은 나는 애초에 몰랐습니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5.03.30. -
〈심재휘 시인〉
△ 1997년 '작가세계' 통해 등단
△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
△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수상
세상에서 가장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도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실패나 고난을 마주하게 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어디에도 위로받을 곳이 없을 때 “좁고 냄새나는 신발 속” “발가락들”처럼 내가 나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던 발톱이 “발가락을 찔러” 버리는 것처럼 나를 아껴주지 않을 때 가장 크게 상처를 내는 것 역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발가락은 서로 미워하지 않도록 태어났습니다 / 심재휘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 원본 바로 가기
사진〈Pinterest〉
삼월 안목
심 재 휘
삼월은 강변 버들에 색이 들어오듯 내게로 와서
그 삼월에게는 집을 나서는 새벽과
강변으로 나가는 좁은 길이 있습니다
간장종지가 엎어진 느리고 긴 식탁의 계절들을 지나
입을 틀어막고 자도 샐 것들은 새어나오는 밤들을 지나
갈림길의 왼쪽과 또 갈림길의 오른쪽을 지나
강물의 끝나는 곳에는 안목이 있습니다
나는 물길을 따라 오래 걸어온 듯합니다
자주 오는 삼월은 너무 가깝고 사람의 길 끝에도
혼자 보는 바다, 안목은 있습니다 거기에는
바닷물에 젖은 당신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오지 않는 사월이 있습니다
- 시집〈두부와 달걀과 보이저〉문학동네 -
Love Theme from Romeo and Juliet - Joslin - Henri Mancini, Nino Ro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