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자력 자립의 아버지,
장인순 박사
한국 원자력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작’의 이름들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자립’의 순간은 그렇지 않다. 기술을 들여오는 일보다, 그 기술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훨씬 조용하고 지난한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설계도 없이도 판단하고, 외국 기술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며, 사고와 지연, 비용 초과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립이라 부를 수 있다. 이 기준을 한국 원자력의 공통 언어로 만든 인물이 있다. 바로 장인순 박사님이다.
장인순 박사님의 이름은 화려한 수사와 함께 불리지 않는다. 그는 원자력의 도입을 선언한 정치가도, 새로운 이론을 창시한 학자도 아니다. 대신 그는 현장에서 묻고 또 물었다. “이 원전은 정말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답을 실천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설계와 제작, 시공과 운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립은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장 박사님은 바로 그 단절의 지점을 집요하게 짚었다. 국산이라는 이름 아래 남아 있던 외국 의존의 흔적을 드러내고,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끝까지 확인했다.
한국 원전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런 태도가 있다. 일정과 예산, 안전을 동시에 지켜내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한국은 ‘지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 기술 목록 하나가 늘어난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범위가 확장된 사건이었다. 장인순 박사님은 이 전환의 기준점을 제시한 사람이다. 그는 자립을 성과로 포장하지 않았다. 자립은 선언이 아니라 검증의 결과이며, 검증은 언제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를 ‘한국 원자력 자립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 호칭은 영웅을 만들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역할에 대한 정확한 명명이다. 원자력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원자력이 외부 도움 없이 완결 가능한 국가 기술이 되도록 기준을 세운 사람. 위기가 오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위기가 올수록 그 의미가 선명해지는 인물. 한국 원자력이 오늘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말보다 책임을 앞세운 한 기술자의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묻고 답해야 한다. 이 기술을, 이 선택을, 끝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가.
#박진하칼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