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
鳥巢獸穴皆有居(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고아평생독자상) 내 평생 돌아보아도 너무 홀로 가슴 아프다
芒鞋竹杖路千里(망혜죽장로천리) 짚신과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떠다니며
水性雲心家四方(수성운심가사방)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이 내 집인 것을…
尤人不可怨天難(우인불가원천난) 더욱이 남을 탓할 수도,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歲暮悲懷餘寸腸(세모비회여촌장) 섣달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이 넘쳐났지
初年自謂得樂地(초년자위득락지) 초년에는 좋은 세상 만났다 말도 하고
漢北知吾生長鄕(한북지오생장향) 한양이 내가 자란 고향인 줄 알았었지
簪纓先世富貴人(잠영선세부귀인)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花柳長安名勝庄(화류장안명승장) 화려한 장안, 이름 있는 곳에 집도 있었다네
隣人也賀弄璋慶(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早晩前期冠蓋場(조만전기관개장) 조만간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髮毛稍長命漸奇(발모초장명점기) 머리가 차츰 커지고 팔자가 기구해져
灰劫殘門飜海桑(회겁잔문번해상) 벽해상전이라더니 집안이 무너졌네
依無親戚世情薄(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인심 각박하여
哭盡爺孃家事荒(곡진야양가사황) 부모상을 마치고 나니 집안이 쓸쓸해졌구나
終南曉鍾一納履(종남효종일납리) 남산 새벽 종소리에 신 끈을 바짝 동여매고
風土東邦心細量(풍토동방심세양) 팔도를 돌아다니니 시름 또한 가득찼네
心猶異域首丘狐(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타향에서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勢亦窮途觸藩羊(세역궁도촉번양) 궁지에 몰린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南州從古過客多(남주종고과객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轉蓬浮萍經幾霜(전봉부평경기상)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 몇해나 되었던가
搖頭行勢豈本習(요두행세기본습) 머리 굽신거리는 행세 이게 어찌 내 본성이랴
糊口圖生惟所長(호구도생유소장) 입에 풀칠하며 살기에 말솜씨만 늘어났네
光陰漸向此中失(광음점향차중실) 그런 사이에 세월만 차츰차츰 잊어버려
三角靑山何渺茫(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의 푸른 모습 아득하기만 하여라
江山乞號慣千門(강산걸호관천문) 이 강산 떠돌며 얻어먹은 집이 천만이나 되련만
風月行裝空一囊(풍월행장공일낭) 풍월시인 행장은 언제나 빈 자루 하나…
千金之子萬石君(천금지자만석군) 천금의 부자 자제, 만석꾼 부자들의
厚薄家風均誠嘗(후박가풍균성상) 후하고 박한 가풍 골고루 맛보았다
身窮每遇俗眼白(신궁매우속안백) 신세가 궁박해져 늘 업신여김 당하고
歲去偏傷鬢髮蒼(세거편상빈발창) 세월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만 아프다네
歸兮亦難佇亦難(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기도 어렵지만 그만두기는 더 어려워
幾日彷徨中路傍(기일방황중로방) 길가에서 방황하기 그 며칠이나 되었던가?
*위 시는 “현대시의 감각으로 풀이한 김갓갓 시집(金笠詩選集)(정민호 역저)”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역저자는 “이 시는 김삿갓 방랑 시인의 가정과 생활, 지나온 내력을 낱낱이 소상하게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로 그가 태어난 가정과 근본까지 알 수 있고, 그가 왜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는지까지를 고백하고 있다. 歸兮亦難佇亦難(귀혜역난저역난)에서 그의 심리적 표현이 잘 나타나 있다”라고 감상평을 하였습니다.
*김삿갓[1807 ~ 1863, 본명 김병연(金炳淵),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 부름,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멸족되어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도망가서 살다 그 다음에 집안이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장원급제하였는데,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조상에 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머나먼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57세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정민호(鄭旼浩, 1939~, 본관 迎日, 아호 丁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조부 학강(鶴岡)으로부터 한문 수학, 1966년 ‘思想界’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문단 등단, 현역 문단인(시인)으로 활동, 경북문화상, 한국문학상, 한국pen문학상, 한국예총 예술대상 등, 포상으로는 녹조근정훈장(대통령), 예총경주지부장, 경북문인협회장 등 역임, 현재 경주향교 사회교육원 한문지도 강사, 경주문예대학 원장, 시집으로 “꿈의 耕作” 외 15권, 산문집 “시인과 잃어버린 팬티”등, 국역으로 “論語抄”, “鶴岡詩集”, “五言唐音”, “七言唐音”, “唐詩選集”, “교양 明心寶鑑”, “三國史記”, “三國遺事”, “唐詩의 이해와 감상”, “한국인의 한시(漢詩)” 등 다수.
*蘭皐(난고) : 김삿갓의 아호
芒鞋竹杖(망혜죽장) : 竹杖芒鞋(죽장망혜), 대지팡이와 짚신이라는 뜻으로, 먼길을 떠날 때의 간편(簡便)한 차림을 이르는 말. 떠돌이 시인의 행장
水性雲心(수성운심) : 떠돌아다닌다는 말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
歲暮(세모) : 1.그 해가 저무는 때. 세밑, 2.노년(老年)
簪纓(잠영) : 비녀와 갓끈, ‘높은 벼슬아치가 쓰는 쓰개의 꾸밈’이라는 뜻으로, 높은 지위(地位)를 이르던 말. 내력 있는 집안
璋慶(장경) : 아들을 낳은 경사
冠蓋(관개) : 1.높은 벼슬아치가 타던, 말 네 마리가 끌던 수레., 2.관(冠)과 일산.
稍(초) : 1.(점점 초/끝 초), 2.점점, 점차, 차츰차츰, 3.이미, 벌써
海桑(해상) : 벽해상전碧海桑田을 의미하여 세상의 변화가 무상함을 말함
爺孃(야양) : 부모(父母)를 속(俗)되게 이르는 말.
佇(저) : 우두커니 설 저, 1.우두커니 서다, 2.머물러 있다, 3.기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