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규작가의 오늘의 추천 글
#웹에세이
비밀번호
세상 짐 다 짊어진 듯
혼자 마트를 돌며 이것저것 장을 봐온
남편은 서툰 솜씨로 요리를 해 늦은 밤 상을 차리더니 티브이 위에 있는 아내 사진을 상 앞에 올려놓고는
"여보…. 잘 지내지?
거기에선 남편 자식 챙기느라 애쓰지 말고 편히 쉬어"
…....
"살았을 땐 당신이 차려준 상을
이젠 내가 차리네그려"
…......
작은 그리움이 커질까
두려움을 눈물로 감추더니
밤을 지키는 별들의 손짓 따라
소주 두어 잔을 입에 털어 넣어 보지만
그럴수록 또렷이 짙어지는 그리움 때문인지 액자 속 아내 얼굴만 매만지던 남편은
살아있을 때 따스운 밥 한 번
차려준 적 없는 무심한 남편인 게 미안해서인지 소주잔을 눈물로 채워가다 낮에 아들들에게서 온 문자를 꺼내어 읽어 내려갑니다
(아버지….부부 동반 해외여행이라 빠질 수가 없네요.)
(아버님 죄송해요
지수 아빠 미국 출장 따라갔다 올게요.)
(할아버지….아빠 외박한 것 때문에 밤새 싸우더니 엄만 짐 챙겨 나갔고 아빠는 아직도 자고 있어)
"자식새끼 키워봤자 허탕이라더니
애미 죽고 첫 기일인데…. 쯧쯧…."
자식이라는 물통에 물을 부어준 걸로 감사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넣어주고 있느냐에 의해 평가되는 효도라는 기준이 삶의 한 페이지로 넘기기엔 턱없이 아파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늘도 애꿎은 술잔에 푸념을 담습니다
"여보….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
"더 있다가 오지 왜 벌써 오냐고 구박하는 건 아니지?"
…....
아내마저 떠나버린 텅 빈집에서
혼자 어떻게 버텨왔는지
남편은
며칠 전 아침을 밟고 들른 의사가
한 말을 곱씹어 봅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4기입
니다 수술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밀려가 버린 삶의 흔적들을
새벽이 내리는 길에 그려놓으며
꼬박 밤을 새운 남편은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앨범들을 펼쳐놓고
파란 하늘 품으로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들을 조각조각 맞추어 가더니
"진수냐….이 아비가 너희한테 할 말이 있으니 형들한테 연락해 이번 주말에 집에 한 번 들리거라"
비틀어도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의 강을 건너 마주한 일요일 저녁
불편한 마음을 얼굴에 그려놓은
세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나도 이제 네 엄마 곁으로 가야 할 것 같구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 놓는 아버지의 말에 놀라기는커녕 병시중과 돈 걱정에 얼굴 살이 찌푸려지던 아들 내외 앞에 소리 없는 눈물로 쓰여진 통장 하나와 도장을 내밉니다.
"이게 뭐예요 아버지?"
"그동안 이 애비가 모은 돈이다."
그제야 구겨진 얼굴이 펴진 자식들은
통장 속 금액을 확인해 보는데요
"이게 얼마야? 십억…."
가슴 저 밑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슬퍼도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묻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십억을 유산으로 저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단, 조건이 있다."
"뭔데요?"
"간병해 달라거나 효도하면 준다는 조건 같은 거 말하실 건 아니죠?"
"그런 건 불효자인 너희한테 요구하지 않겠다."
"그거 아니면 다 좋아요"
"내가 죽기 전에 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면 너희 돈이 되겠지만 만약 못 알아내면 이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갈 것이야."
"좋아요!!
그까짓 숫자 네개 정도야…. 하하"
그날 이후부터
삼 형제 내외는 밤잠을 설쳐가며
자신들이 태어난 날, 결혼기념일, 자식들 생일, 등등 수없이 비밀번호를
은행에 가서 넣어보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비밀번호는 결국 찾지 못한 채
10억의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고
실망한 자식들은
새벽을 따라나선 별처럼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0908인 걸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윗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글입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첫댓글 좋은일 많고 웃음 가득한 하루 되세요~~~
하나같이 자식들이란
참~
며느리들이 더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