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집 (외 2편)
남지은
어서 오렴 어린 사람 이 방이 처음인 사람 하고 싶은 말이 태어난 사람 아니라도 짭조름한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웠으니까 검고 미끌한 손끝을 갈고 또 갈았으니까 무른 앞니를 살살 건드려 보렴 도미노 패처럼 한통속처럼 우리들은 차례가 오면 넘어지고 넘어뜨리면서 지내게 돼 있으니까 울음에는 보호 요청, 항의, 분노 등의 의미가 포함된다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말해 보렴 순차를 알고 나면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고 하니까 우느라고 못다 한 말이 남은 여러분 이야기의 꽁무니를 한없이 뒤쫓는 여러분
: 초인종은 사절 다음 회기에 시도해 볼 것 오르간 멍든 무릎이 숲으로 번진다 밤이 낳고 간 알의 악몽 세어보지 마 세어보는 손가락부터 지워질 거야 잃어버린 그림자 나를 엎지르고 태어나는 그림자 한 발에 사실의 사슬을 한 발에 진실의 사슬을 매달고 가볍게 떠올라 꿈의 기슭에 우릴 첨벙첨벙 빠뜨리는 그림자를 오리자 수치심을 나누어줄게 층계마다 묵상의 죽은 발이 놓이고 모조 우린 열한번째 손가락 어쩌면 신이 떨어낸 모래 알갱이 뻥 뚫린 시간 속으로 튕겨진 개와 어린이의 영혼은 공터만 보면 뛰쳐나가도록 설계되었어 넓으면 넓을수록 비어 있으면 비어 있을수록 망치기 좋은 것들이 가득한 세계 누구야? 달궈진 쇠공을 저 높이에 매달아둔 거 잠깐 졸았을 뿐인데 굴러다니던 머리통에 징그러운 팔뚝을 꽂아넣은 거 살짝 부는 바람과 가지 끝의 연두 레몬빛 태양을 깨물면 땀냄새가 퍼졌어 서로의 옷 속에 집어넣기 좋도록 우린 만들어져 있었어 흙모래가 무릎에 박혀 만들어진 무늬 어쩜 나무들이 쏟아낸 그림자 목이 좀 마른데 웃다가 보면 쏟아지는 여름잠 겹겹이 포개진 손을 떼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어 안쪽의 일은 지어낸 이야기 같아요 죽고 싶은 마음과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나란한 것 같아요 웃어 보이면 많은 것이 넘쳤어 남은 건 문밖의 일 개와 어린이를 향해 어색하게 웃는 일 매끈한 알전구가 깜박이는 일 의심은 나쁜 거여서 윤기 나는 잎사귀 하나를 떼어내 우린 서로의 입속에 깊숙이 찔러넣었어 분간하기 어려운 발음이었어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2024.3 ---------------------- 남지은 / 1988년 전남 여수 출생. 강남대 국문과 졸업.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당선.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