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우리네의 삶 한가운데로 깊숙히 들어온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아직도 떨치지 못한
밥세끼의 지겨움을 안고 남쪽 섬 거제를 다녀와 어둠이 쏟아진 물처럼 밀려온 이제사 컴
앞에 자리합니다
보이는 섬 하나없이 오직 검푸른 파도만이 으르렁대는 무서운 동해에 비해 올망졸망 섬들
이 효주님 손자 지호군 장난감처럼 널려있는, 수영장 같은 남해를 다녀온 잔잔한 여운을
애써 아끼며 봉다리 커피 두잔째 끌어당기는 카페순례중에 늘 삶방을 빛내주시는 이젤님
그림을 다시 감상하는데..
거기에 묻어 부끄럽지만 저도 그림을 접해본 옛기억이 스멀스멀 앞뒤없이 잠시 떠올라서
몇줄 주절여봅니다, 왜? 금요일이잖아예ㅎ
오래전.. 아주 오래전 동양화를 객기로 잠시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재미에 두서없이 빠져 밤낮없이 작품활동을ㅎ 했었는데요, 그러나 원래 삐딱선
청개구리 팔자라 국화꽃만한 솔잎을 그려야하는 왕초보 시기에 '백련화' 같은, 대가들의 작품
모화에 분수모르게 열을 올렸으니 곧..
'귀하는 수강료에 상관없이 도저히 소질없음' 판정을 받고 당연히 퇴출되었습지요
...그런데 많은 세월이 지나 어느 한가한 시간에 보니 제가 그린 그림 또는 제가 좋아했던 그림
에는 아하,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 눈치채었습니다
길이 있는 그림.. 그림 속에는 늘 길이 있었습니다
동양화의 구름걸린 가파른 절벽 모서리에도 암자로 흐르는 길이 있었고, 수채화의 황량한 벌판
에도 황토빛 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지나간 길.. 지금 누군가 지나가고 있는 길.. 언젠가 누군가 지나갈 길..
그 길은 늘 인적없는 황량한 길이었지만 거기에는 늘 길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거창하게 그림속의 길이 상징하는 바를 억지로 견강부회, 부족한 제 삶과 연관시켜 보면 저는
하나의 현실성으로 그 길들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것, 우리네 삶은 지금의 삶을 선택한 대신에
가보지 못하고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그림자처럼 거느리고 사는 건 아닐까하는..
제가 쭈그려사는 부산에는 흙수저들은 근접불가의 조선8도 천하절경의 해운대 달맞이길이
있는데 그 길의 중앙에 자리한 추리문학관 2층에 이런 시가 걸려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
죄없이 눈망울만 맑던 중학교때 중간고사 시험용으로 외우시던 기억들이 혹 나시는지요ㅎ
'...오랜 세월이 지난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교과서에 나온 것이라 달달 외웠는데 이제 지구에서 66년차, 이것도 연식이라고 입에서 다만
순서없이 맴돌기만 합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사 이 시의 뜻이 숙취뒤 훅 땡기는 짬뽕국물처럼 시원하게 다가오는데
아하, 사는 거, 그게 그런 거였구나.. 무릎을 치니 깊어가는 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을 따라
이 시정접배의 청춘도 그렇게 속절없이 저물고 있습니다..
늘 길에서 길을 묻는 구봉이는 참 불쌍한 인간입니다ㅎ
...입은 닫고 지갑을 열 연식이건만 한번 시작하면 되잖은 잡설이 자꾸 길어집니다
삶방식솔들의 눈을 어지럽힌 죄 엎드려 사과드리오며 이번 주도 수고하신 언니누나오빠형님들
모두 평안하고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시길 소원합니다
그렇다고 뼈와 살을 너무 태우지는 마시고예^^ 총총..
첫댓글
한번쯤 가보고 싶은
거제섬에 다녀 오셨네요
파도처럼 일렁이는 글이
생동감있어 힘이 넘쳐 흐르며
강건하시고 가호하소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오늘은 부산도
예외가 아닌데 따스한 날씨에 길들여진
부산사람들이 엄살을 떱니다ㅎ
가을에는 산도 좋지만 크고작은 섬들이
널린 남해바다도 좋습디다
낙엽들이 돌돌말려
쪼그리고 있는 계절에
뭐한다고 쭈그리고 살아요
위풍당당하게 사셔도 될
구봉님이신 걸ᆢ ㅎㅎ
참고로 구봉님께서 동양화를
그리셨다연
선이 굵었을 것같아요
오래전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는 이 맏손자
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풍당당 영의정
이 될 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오늘날
이리 초라한 모습의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뭐 선이 가늘다는 것이지요 쩝..
구봉님
안가본길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반대에 있음
또 다른 반대에 대한
길이 궁금해지니까요
구봉님 도 불금
뜨ㅡㅡㅡ 건 ㅡㅡㅡㅡ밤
2%가 부족한 인간이란 동물의 삶이 햇빛
과 그림자의 끝없는 숨바꼭질임은 익히 알
연식이지만 그래도 가보지 못한 길에의
동경은 여즉도 조금 남아있습니다
The road not taken..
'만약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항상 그리 살지요
거제 몽돌들은 여전한지...ㅎ
한주를 마감하고 느긋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 금요일
밤입니다.
역사에는 만약.. 이란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지만 잔머리만 발달한 이 인간은 더러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그건 그만큼 저의
현실이 피곤하다는 것이겠지요ㅎ
학동몽돌해수욕장은 파도만 홀로 흥겹고요,,
구봉님?
길에게 길을 물으면 길이 길을 알켜 주나요???
구봉님은
참 불쌍한 인간 맞습니다 ㅎㅎ
앞으로는 자신에게 길을 물어 보겠다에 추천 쿡 ~~^&^
주체성 부족의 찌질이라 늘 남의 눈치나
보고 남의 의견에 귀가 엷습니다, 두아이
의 애비로 이 사회의 선배로서 나이값을
못하는 것이지요ㅎ
낙산사 입구 커다란 돌에 이따만한 글씨로
'길에서 길을 묻다..' 가 문득 충격이었습지요
그러시군요..
지금껏 가셨으니 계속 가세요..ㅎ
가보지 못한 길에의 호기심은 남아있지만
그 길로 가기에는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고
가본들 그들이 저를 인정할 리도 없겠지요
조상이 달리다 사라진 그 길을 저도 목묵히
계속 갈 뿐입니다, 뜨거운 응원 감사예^^
가을이란 계절은
생각을 많게 만드나 봅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며
인생의 가을느낌을 받으시는듯 ..
구봉님 화이팅 하세요
이순신 장군님이나 강재구 소령님처럼
나라를 위해 짧고 굵게 사는 건 감히 생각
도 못하는 장삼이사라 그저 이 한목숨만
가늘고 길게 살기를 바라는 바입니다ㅎ
가을은 소멸하는 것들에 눈길이 가는
계절입니다..
길에게 길을 묻다
어느 아나운서의 멘트
그목소리 낮으막하면서도 평온함이 깃들어있지요
구봉님 글은 참 심오합니다
때론 구봉님에대해 조사 하고싶은 충동마저도 입니다
넘 먼거리에 계신 관계로 그냥 추리만ㆍ상상만합니다
어떻게 66년을 살아오신분일까?
저녁 7시 45분에 꼭 귀 기울이게 되는
'길에게 길을 묻다..' 조운님도 저녁스케치 팬이시군요..^^
부산에서도 cbs fm 개국한지 몇년 돼가네요.^^
과찬에 이 늙은이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66년동안 죄없던 어린 때도 있었으나
남의 지갑 여는데만 눈이 충혈된 삶의
음흉교활간특한 시정잡배올습니다
이 카페 10년세월에 글장난으로 욕도
더러 먹는 비호감회원이기도 하고요ㅎ
우리님들이 올리시는 글...사진...거의 제게 가본곳인데
이미 20여년 가까이 전에 가본곳들이니
많이 변하고 생소합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새로운 소식들...
오래전 번개불에 번데기 구워먹듯 둘린
광활한 아메리카도 멋졌으나 올망졸망
구릉과 저녁밥 짓는 연기가 나즈막히
깔리는 우리들의 조국도 가볼 곳, 사랑
하고픈 곳이 많습니다.. 멀리서나마 이
카페가 제공하는 눈요기 많이 하셔요ㅎ
해운대 달맞이 길..
가고싶은 길인데 몇년전에 부산 여행 계획할때 목록에 적어놓고 여행이 무산 되었지요..
지금도 역시 가보지 않은 길이네요..^^
어느날 문득 훌쩍 떠나는 날..
걷고싶은 길..
가고싶은 곳이 너무나 많은데 늘 이렇게.. 지구의 서울이라는 변두리 한모퉁이에 쭈그려 사네요..
이러다 가는 것이 인생이겠지요...ㅠ
두어달전부터 짐을 챙기며 마음 즐거운
게 여행이지만 문득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도 꽤 괜찮습디다.. 우리네 삶이란
이리저리 여행다니며 뭔가를 쪼물쪼물
해보다가 하늘이 부르면 제시닥 가는,
긴 여행이 아니던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