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8 금요일
(2403 회)
- 거덜과 피맛길 -
재물(財物)을 마구 써버리고 없는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거덜 났다."
원래 거덜은 조선시대에 말(馬)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侍)의 하인(下人)으로, 귀인(貴人)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가며 길을 틔우는 사람입니다.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갈 때 잡인의 통행(通行)을 통제(統制)하기 위하여 이렇게 외쳐대던 하인을 말합니다.
"쉬~ 물렀거라~ 물렀거라! 대감마마 행차 납시오."
그 시대 ‘거덜’의 흔적(痕迹)이 오늘날에도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남아 있지요.
지체 높은 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惡行)을 다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 고관들의 주요 통로(通路)였던 종로 길의 백성들에게 이로 인한 고통(苦痛)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한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고 행렬(行列)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구부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갈 길을 제시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現場)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죠.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길!
이른바 ‘힘없는 백성들, 즉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하지만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죠.
‘피맛길’은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에서 온 말인데,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은 신분이었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優越感)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리며 걸었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덜 거린다,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했을 때 '거덜 났다'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그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어려워진 상황(狀況)을 가리킬 때 ‘거덜 났다’고 사용합니다.
기록에 남은 '거덜'은 관직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종7품의 잡직을 말하며, 피맛길은 지금 종로(鐘路)의 먹자골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