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나무 벤치 위에 그렇게 앉아 있다.
단풍이 겨울의 초입에 빨갛게 불타고,
그 아래 벤치가 놓여 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와서 앉기를 바라는 벤치,
“광장의 벤치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그는 외 안경에 낡은 회색 옷
엽권련을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보면 안 된다.
그가 보이지도 않는 양
그냥 지나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쳐야 한다.
혹 그가 신호라도 한다면
당신은 그의 곁에 앉을 수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혹한 고통을 받고
그 사람은 계속 웃기만 하고
당신도 똑 같이 웃게 되고
웃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혹하고
당신은 거기 벤치 위에
미소 지으며 꼼짝 못하고 앉는다.
곁에는 아이들이 놀고
행인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자끄 프레베르’ 의 <절망은 나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어디 절망이 나무 벤치 위에만 있는 것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 새에,
내가 잠든 따뜻한 이불 속에
지난밤에 마신 커피잔 속에
우리가 의식하던 안하던 간에 담겨져 있던 절망의 무게,
세상은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2023년 11월 24일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