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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클라렌
제 3 간구 아버지의 뜻을 위한 기도
마태복음 6:10b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자아 계시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 세우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앞 세우느냐, 이 양자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종교는 노예적이고 맹목적인 복종, 또는 달갑지 않은 의무와 내키지 않는 금욕이 되풀이되는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경우 미지의 존재인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통치권을 휘두르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독재적, 암흑적 숙명, 신비롭고 불 가사의한 어떤 세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주권적 의지만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시고,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위대하고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만물(창조물)에 자신을 반영하시고, 인간들의 복잡 다단한 세상사를 통해 역사하시고, 자기 이름의 음절 하나 하나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짜 넣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생각할 때,
-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 우리는 의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선한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복종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복종은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우리의 의지의 굴복은 즐거운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 그것은 노예적 복종이 아닌, 자식으로서의 효성의 순종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자기보다 힘있는 어떤 세력에 대한 내키지 않는 복종 대신, 사랑과 선의 근원에 대한 즐거운 순종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기 체념 대신 신뢰심 깊은 의존 행위가 될 것입니다.
- 그것은 달갑지 않은 의무의 고통스런 억지 준행 대신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로 시작하는 사람은 노예이며, 실제로 그 뜻을 전혀 이행하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시작하는 사람은 아들이며 충심에서 우러난 순종을 바칩니다.
바로 이것이 주기도문 각 구절의 상호 순서가 현재처럼 이루어진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리고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는 "나라가 임하옵소서"와 관련된 보충 간구로도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이 간구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뜻이…이루어지이다"라는 문구는 문자적으로 '당신의 뜻이…행해지이다'입니다.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마는 '소원, 욕망(구), 의향, 의사. 기쁨. 뜻, 의지'를 의미합니다.
"이루어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데토는 여기서 '행해지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명령 과거 수동 디포넌트이며. '행해지게 하옵소서'입니다.
그리고 과거형이기 때문에 완전한 행해짐(실현)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그 뜻이 행해지는, 곧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약성경에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면
(1) 하나님의 뜻은 그의 소원입니다.
요한복음 6:40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그의 "소원"을 의미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은 그의 목적입니다.
디모데후서 1:9에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뜻'이란 말은 그의 '목적'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그의 기쁘심입니다.
에베소서 1:9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 뜻"이 '그 기쁘심'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그의 계획입니다.
사도행전 2:23에서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이라고 말하였고, 4:28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나 "하나님...의 뜻"은 그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말씀에서 살펴본바 하나님의 뜻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의사(意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하여 생각하면 나라는 그의 주권이 행사하는 영역이고, 그의 뜻이란 그 나라의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사(意思)입니다. 주의 교훈과 명령도 포함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7:22이하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 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또한 마태복음 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법인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인간 구원과 그것을 통한 의와 사랑과 진리의 실현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간구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눅 22:32; 행 23:14).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요 6:38; 엡 6:6).
우리는 주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롬 12:2; 골 4:12).
이렇게 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인 의와 사랑과 진리가 완전히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모든 신적 계시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의 존재, 성품이 알려진 연후에 하나님의 뜻이 선포됩니다.
이 순서는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몇 가지를 시사해 줍니다.
- 하나님의 뜻은 단순한 전능적 권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의 범위와 방향은 하나님의 이름(곧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상이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뜻, 곧 아버지의 뜻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 흑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하여 전능한 독재자, 불가사의한 주권자, 무자비한 운명, 냉정한 숙명 등의 온갖 잔혹하고 무서운 관념을 일소시켜 버립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잘못된 관념에 의해 기독교 신앙이 상당히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경향은 성경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실망하는 체념의 어조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힘쓰고 애써도 불가능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전제로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힘에 붙잡혀서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어떤 사람은 지긋 지긋한 반항심으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위번은 하나님의 쇠발에 인간이 짓밟히는 느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베토벤은 외로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입술은 악물고 손은 부르쥐고 마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휘두른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적대하지만 그의 힘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할 수 없이 의지로 굴복하고 속으로 격한 반항심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은 분한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복종합니다.
(4) 어떤 사람은 냉냉한 의무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5) 어떤 사람은 믿음과 사랑에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 간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건물을 지으려 하거나 개조하거나 수선하려 할 때 기사를 찾아가서 의논할 것입니다. 그 기사는 자기의 뜻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당신이 전문가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뉴톤은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단 하나의 선택의 권한을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 주실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계약 교파의 일을 보던 리차드 케미론이 살해되어 머리와 손이 잘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같은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원수들이 그 아버지의 슬픔을 더해주기 위해 아들의 머리와 손을 그에게 가지고 와서 이것이 누구의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핼쑥한 아들의 머리와 손을 잡고 거기에 입맞추면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아들입니다 내 귀여운 아들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주님은 나도 내 가족도 배반하신 일이 없고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은혜와 긍휼만을 예비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W.Barlay).
여러분, 욥은 그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생활 전부가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사랑의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지 못할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별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하였고, 에베소서 5:17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신적 계시로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십니다(시 119:105; 딤후 3:16.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인간의 구원과 성도의 거룩, 즉 의와 사랑과 진리의 완전한 실현입니다. 요 6:40; 살전 4:3).
- 하나님은 섭리와 환경을 통해서 그의 뜻을 보여주십니다(잠 16:11,9; 잠 19:21; 행 4:28).
-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창 24:12이하).
-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행 16장).
-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고후 12:7; 벧전 1:6, 7; 4:12, 13; 약 1:2, 4).
- 하나님은 지혜(경험, 이성적 사고, 지식)를 통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참 지식을 쌓는 수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과 거룩하게 여기는 행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다음 사실에 주목합시다.
(1) 순종의 본질은 내적인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2) 즐거움과 사랑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 순종은 강제적인 일이 아닙니다.
- 순종은 기분 언짢은 일이 아닙니다.
- 순종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어떻습니까?
(3) 하나님의 진리의 원리들은 모든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지배합니다.
그 원리들을 배웁시다. 그 원리들을 알게 되면 온갖 안식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온갖 크고 작은 행위를 지배 관리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4) 신앙이 없으면 실질적인 의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도덕의 진정한 토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 내지 그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강단에서 신조보다 실제 삶에 대한 교훈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양면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이론적, 실천적 도덕률의 유일한 토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해야 도덕적인 의로운 사회가 이룩됩니다.
(5) 실천적 순종이 없는 신앙은 불구이고 가짜입니다.
사상과 감정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신앙은 삶에 영향을 주도록 되어있습니다.
과연 신앙이 여러분의 생활을 영향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영향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아 계시의 궁극적 결과는,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됨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궁극적 결과는 인간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치가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성품과 행동이 모두 중요합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 고백의 최종적 결과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외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적 복종, 이 모든 것의 최종적 영역은 인간성의 완전한 성화와 삶의 자유로운,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독교적인 감정과 의식(conciousness)을 일상 생활과 분리시키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신앙적 감정을 가진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그러나 세상의 현장에서는 그들이 죄를 밥 먹듯이 짓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확신, 결심과 행동 사이에 언제나 불균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원리 원칙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합니다.
중력이라는 힘 때문에 날아가는 화살은 결국 밑으로 떨어집니다. 활의 성능이 제 아무리 좋고, 목표를 제 아무리 정확히 조준하고, 손의 힘이 제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활을 쏘았을 때 화살의 진로는 직선 아닌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기계가 진공 속에서는 작동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찰력과 대기 압력이 기계에 작용하여 기계를 멈추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실천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신자의 순종 문제도 그렇습니다.
- 우리의 순종은 죄로 인한 중단이 있습니다.- 유혹으로 인한 저항이 있습니다.
- 무지로 인한 결함이 있습니다.
- 연약으로 인한 실패가 있습니다.
- 피곤으로 인한 휴지가 있습니다.
- 반역 의지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못하고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나 간격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란 꾸준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꾸준한 노력과 회개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며 소망의 불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합니까?
기도하고 노력해도 잘되지 않습니까?
실망하지 맙시다. 희망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여기서도 여러분의 생활에, 가정에, 그리고 땅 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의 하는 일이나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사람 죠지 물러 목사는 어떤 사업이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의한 것인가를 기도하여 보고 시작하고 분투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의한 것인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를 물어볼 것입니다.
만일에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당신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니 전혀 관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 끝까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그 일을 착수하고 절대로 단념하지 마시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당신 마음에 부정한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에 그러면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든 죄는 다 내어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믿으시오. 하나님을 섬기고 믿으시오.
하나님께로부터 큰 일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립시오.
만일 축복이 더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오직 영원히 찬양받으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의 공로만 믿고 의지 하십시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무한하신 주님의 공로에 의지해서만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우리가 하는 사업이 열납될 것입니다’(엡 4:l, 엡 5:l7)라고 죠지 물러는 말하였습니다.
[4].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모든 바람의 총화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고상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해지며 지극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합시다.
(1) 인간의 가장 고상한 존엄성은 순종입니다.
우리 인간도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도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인간의 의지는 복종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의지는 다스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위치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순복하는 인간의 의지는 자유와 힘과 안식을 누립니다.
① 자유에 대해서 -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지는 자유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가 뭉개지거나 흡수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순종 가운데서 자유로이 작용되기를 원하십니다. 노예 상태와 그리고 죄와 악의 짐에서 벗어난 의지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의지입니다.
② 힘에 대해서 -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의지력을 강화시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죄는 의지를 억압합니다. 순종은 의지의 힘을 길러줍니다.
③ 안식에 대해서 -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의지에 안식을 줍니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자아 의지의 투쟁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통해 홀러 나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속하는 살아있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자유를 누리고자 합니까?
- 힘을 가지고자 합니까?
- 안식을 누리고자 합니까?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시다. 목숨을 다하여 순종합시다.
(3) 순종의 결과는 완전한 지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인간의 유익과 선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인간들과 국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준수된다면 세상의 모습은 변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자기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자들이 소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내부로부터 개혁을 일으켜 생명을 부여하며, 이것이 법률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듭니다. 여기에는 모든 사회 개혁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기도를 통하여 그들의 일이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지식을 확산시키려고 노력하고, 그들 자신 하나님의 뜻과 조화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서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재난과 불행은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고 불순종으로 인한 것입니다.
불순종의 날로부터 이제 까지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불순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 졌다면 슬픔과 질병, 고통과 죄악과 억압과 폭력 등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의 결과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를 섬기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에는 새벽기도회, 주일 예배, 수요 예배, 그것 모두 참예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좀 편하게 살아야지,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반쯤은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반쯤 불행을 얻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긴다면 당신은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음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란 문구입니다. 이 간구는 외견상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을 순종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에서"란 말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우주를 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주를 주의깊게 살펴본 자라면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질서를 느꼈을 것입니다.
우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지의 본질에 대한 위대한 계시입니다.
평화로이 떠다니는 구름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합니다.
별들은 불타고 혹성들은 회전 운동을 합니다.
하늘의 천체들이 그들의 궤도를 유지하며, 계절이 계속 반복되었으며, 인간의 필요를 위하여 땅이 그 소산을 산출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이 문구가 의미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별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을 맹목적으로 준행하며, 자기가 분별할 수 없는 어떤 세력에 의해 움직입니다.
둘째로, 유일한 참된 순종은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의 순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또 자신들의 삶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을 명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바다가 조류를 움직이는 달을 쳐다보듯이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늘의 이 영적 존재들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고 있습니다.
- 그들의 순종은 분명히 완전무결합니다.
- 그들의 순종은 죄로 인한 중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연약 때문에 순종을 위해 노력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 유혹으로 인한 저항이 있을 수 없습니다.
- 무지로 인한 결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피곤으로 인한 휴지(식)가 있을 수 없습니다.
- 반역적 의지로 인한 고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확실히 자유롭고 항구적이고 자발적이고 행복함이 넘치는 순종입니다. 순종은 그들의 모든 삶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존재 행위가 그들 자신들이 바라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봉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활동적인 삶입니다.
이 기도에서 표본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완전한 영들의 충만한 지식이나 그들의 지복이 아니라 그들의 섬김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합니까? 그 섬김을 살펴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한 순종을 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완전합니다.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는 것입니다(겔1:l2, 20, 21)".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사 6:3; 계 4:8).
그러므로 그 천상적 존재 양식은 오직 한가로이 속세를 떠나 아무런 일도 의무도 없이 조용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미래의 천상적 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행복의 비밀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응에 있으며, 현세에서는 그러한 순응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짐에도 그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저 하늘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복락이 있을 것입니다.
그 복락이 어떠 하겠습니까?
셋째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특수 계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6:38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34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 곧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최고 최후의 요구는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에 뜻에 대한 인간들의 이행이 그의 세상 역사의 최후를 장식할 궁극적 목표입니다. "주께서 주의 뜻에 따라 하늘의 군대와 땅의 거민 중에 행하시도다"라는 말씀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만유가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 협력하게 되고, 한 목적, 한 뜻, 한 사랑이 온 피조계에 충만하게 될 그때 우주에는 얼마나 영광스런 조화의 소리가 울려 퍼지겠는가?를 생각하며 소망합시다. ---할렐루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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