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를 왜 민비라 칭하며, 그토록 비하하고 비난하냐고? 그걸 모르는 헛똑똑이 당신에게 하나 하나 가르쳐 주겠다.
남 가르치기만 해봤지? 이번 기회에 쫌 배워라.
(좀 흥분-모드 임, 아침부터 야마 돌음.)
황희 정승과 임진왜란 때 영웅 황진 후손인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비는 대원군이 10년간 쌓은 국부를 순식간에 탕진한 여자"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교관, 작가, 정치가·개화 사상가·계몽운동가인 유길준은,
"명성황후는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여왕,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보다도 더 악하다."
황현 '매천야록'을 보면 민비의 무능함과 탐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비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했으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조선을 전쟁터로 만든 사람이 일본자객에게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화가 된 인물이다.
▪️그녀의 사치와 공금 횡령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진은 민비의 응접실에 깔린 양탄자, 표범 48마리 분량의 가죽이 들어갔다. 또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마차를 엄청난 거금을 주고 수입했다.
릴리어스 언더우드 여사는 자신의 저서 '조선견문록'에 민비로부터 축의금으로 100만냥을 받았다고 이야기 했다. 그 당시 1년 국가예산은 480만냥 이었다.
민비의 오빠 양자인 즉 친정 조카인 민영익이 갑신정변으로 전신에 자상을 입었다. 그러나 묄렌도르프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미국인 의사 알렌(Allen, H. N.)의 치료를 받았는데, 그 때 사례금으로 10만냥을 주었다. 현재 가치로 약 50억원 된다. '알렌일기' 1895년 1월 27일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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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은 1884년 3월 27일 알렌은 궁궐로 들어가 고종 부부를 치료했다. 부부는 천연두 증세를 앓고 있었다.
한 달 뒤 왕비로부터 하사품이 왔다. 100 야드 짜리 비단 한 필과 황금빛 비단 두루마기 하나였다. 100 야드는 90m가 넘는다. 알렌은 곧 왕실 주치의 겸 고종 정치고문이 됐다.
1885년 민영익은 알렌에게 광산 이권에 대해 언질을 주자, 1887년에는 정2품 참찬 벼슬을 받고 조선 사신들과 함께 미국을 다녀왔다. 왜? 조선의 금광을 팔아치우기 위함이다.
1895년 운산금광채굴권, 1896년 경인철도부설권을 직접 획득해 미국인 사업가들에게 넘겼고, ‘노다지(no-touch)’라는 말을 만들어낸 운산금광채굴권은 40년간 총 900만 톤의 금광석을 채굴해 5600만 달러의 수익을 미국에 건네줬다.
또한 아관파천을 주선하고, 친미세력이 대거 등용된 뒤에는 경인철도부설권을 따냈는데 두달 만에 일본에 넘기면서 약 200만 원의 차익을 챙겼다.
민형식은 명성황후의 척신이라는 후광을 입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권세가 해와 같아서 백성들이 호랑이같이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빈부를 가리지 않고 재산을 빼앗아 부를 축적하였다. 선박이 닿을 만한 모든 연읍을 먼저 착취하고, 큰 부자에게는 5만 내지 6만냥을 상납하도록 하였다. 1만냥 이하는 1차 상납으로 치지 않고 모두 죄수로 인정해서 가산을 몰수하였으므로 영내에 쌓인 돈이 매우 많았다. 심지어 국가 예산의 14%를 착복했다. 현재 가치로 50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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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는 굿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매주마다 궁궐에서 굿판을 벌였는데 시세보다 5배 이상 더 주었다. 무당들은 민비에게 굿판을 더 부추기고 민비는 굿판을 더 벌리고를 반복했다. 국가예산을 본인 멋대로 굿 할때마다 몇 만 냥씩 낭비했다.
민비는 원자가 태어나자 궁중에서는 원자가 잘 되길 빈다는 핑계로 제사를 8도 강산에 두루 돌아다니며 지냈다. 이렇게 탕진하는 하루 비용이 천금이나 되어 내수사가 소장한 것으로는 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호조나 선혜청에서 소장한 공금을 빌려서 사용했지만 그것이 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1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대원군이 비축해 놓은 재물을 모두 탕진했다. 그래서 매관(관직을 팜)이나 매과(과거시험 합격증을 팜)까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결국 민비의 악행으로 인해 임오군란과 동학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 팩트다.
🟥 민비는 국가 재정을 탕진한 것 뿐만이 아니라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외세를 조선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을미사변은 친일대신과 일본대신들이 살해를 모의해 민비를 죽인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 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수도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팩트는 대장부터 말단 병사까지 민비를 죽이는데 자발적으로 협력했고, 민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기뻐했다.
조선군 1대대장 우범선·2대대장 이두황·3대대장 이진호 등과, 전 군부협판 이주회, 국왕 친위대 부위 윤석우, 일본 공사관 통역관 박선, 문신 구연수 등이 협력했고, 궁궐수비대의 구식군대 출신 조선인 병사들도 자발적으로 협력했다.
송병준의 사위이기도 했던 구연수는 일본 낭인들이 민비 시신을 소각하는 걸 도왔다. 우범선은 씨없는 수박으로 알려진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다.
▪️유길준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유길준은 흥선대원군을 명성황후 암살의 조선인 최고 지휘자로 지목했다. 민비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와 비밀 접촉하였고, 1894년 가을 개화당 모두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미다가 대원군에게 발각되었으며, 대원군은 일본공사 오카모토 류노스케와 협의 끝에 일본인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얻어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인 조선군 1대대장 우범선은 흥선대원군의 사람이었다.
위의 말을 종합해보면, 민비시해의 범행은 일본 낭인들이 맡고, 흥선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의 반란인 것이다.
▪️한마디로 조선인이 계획하고 일본의 칼을 빌렸다는 이야기다.
🟥 민비라는 이 여자는 결국 나라와 백성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때그때 자기 신변 보호만을 1순위로 삼았으며 궁궐을 굿판으로 삼고 국고를 탕진했다.
민비는 국가 재산을 호주머니에서 쌈짓돈 쓰듯이 낭비했으며, 어느나라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외교적인 감각이라고는 살펴 볼 수가 없는,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결정타를 날린 사람인데, 왜 비하하고 비난하냐고❓
그걸 이해 못하는 당신은, 스스로가 조선시대 양반이라 생각하고 반일주의에 사로잡혀, 우파보수인 척하는, 발갱이들에게 선동당한, 선민의식을 가진 헛똑똑이다.
내 말에 억울하다면, 역사인물에 대해 공개토론을 제의한다.
https://www.facebook.com/100015814518678/posts/pfbid034X55simRq1v5KFLsnoCkW3k33ejDBDBoTKYbRiysHMmGRRCjaT5LpvCCUyfPktpgl/?mibextid=Nif5oz
첫댓글 민비는 민바일뿐
명성황후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고종도 마찬가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