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Life-Go to Manhattan!, North Pole의 추억
비행고도 11,582m
비행속도 844km/h
바깥온도 –55.0°C
그것이 우리가 탄 비행기가 북극점 부근을 날 때의 비행정보였다.
뉴욕 JFC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받으면서 그 창구의 흑인 여직원에게 서툰 영어로 ‘window’라고 하고 ‘wife’라고 해서 창가에 앉고 싶다는 뜻과 아내와 동반하고 있다는 뜻을 알려서 창가의 탑승권을 챙겨 받을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하나 빠뜨린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창가에서 ‘북극점’(North Pole)을 내다보고 싶다는 그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찾아들어간 내 자리는 북극점을 볼 수 없는 자리였다.
날개 때문이었다.
그것도 A380-800기종의 대형 에어버스 비행기로 엄청 폭이 넓은 날개였으니, 그 창가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 날개와 그 날개 위쪽의 하늘뿐이었다.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아예 창 덮개를 내려서 닫았다.
북극점은 미국 뉴욕 JFC공항에서 우리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까지의 총 거리 11,274km에 소요시간 13시간 33분의 그 중간쯤 되는 지점이었다.
그 나마라도 아까운 생각에, 북극점이다 싶은 곳에서 잠깐 창 덮개를 올려 북극하늘을 잠깐 내다봤다.
사파이어 빛의 짙은 푸름이 그 하늘에 있었다.
그렇게 북극 하늘을 내다보는 그 잠깐 사이에 뇌리를 스치는 추억이 하나 있었다.
그 추억, 가슴을 저미는 사연이었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 친구가 일구었던 경기 ‘노스폴’(North Pole)cc에서의 추억이었다.
허가 내기도 어려웠고, 허가를 내고도 주민들 반발을 무마시키기도 어려웠다.
하도 어려워 나와 어울려 통음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세운 골프장이었는데, 그 3년 뒤에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을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는 남편이 그 골프장에 얹어놓은 빚더미에 짓눌려 한 해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4년 전 이맘때쯤에,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골프장을 찾았었다.
그리고 그 감회를 ‘산중에서의 비감’이라는 한 편 글에 담아놓았었다.
다음은 그 글 전문이다.
잡초가 무성했다.
그 무성한 잡초를 바라보면서, 내 눈물지어야 했다.
1주일 전인 2012년 10월 5일 금요일 오후 5시쯤의 일로, 경기 연천군 고능리 ‘노스 폴’(North Pole)cc에서의 일이었다.
원래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다면, 내 그리 눈물짓지 않았을 것이다.
한 해 전만해도 잘 가꿔진 잔디가 푸르렀던 골프장이, 마치 버려진 땅처럼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으니, 그 허무한 세월이 내 마음을 슬프게 해버린 것이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온 재산을 다 털어 그 골프장을 일군 범구형이 이승을 떠난 지가 벌써 그렇게 됐다.
나보다 두 살 위인 범구형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카로서 꽤나 괜찮은 집안이었고,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재산도 쌓아놓고 떵떵거리면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 나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인연을 맺은 사이였지만, 우리 둘 서로 마치 어릴 때부터 정을 쌓은 죽마고우인양 거의 매일을 만났고, 만날 때마다 술로 어울렸던 사이다.
한 집안의 막내인 범구형과 한 집안의 맏이인 나는, 그 다른 집안에서의 위상으로 빚어지는 견해 차이로 툭하면 다투기 일쑤였으나, 그래도 인간적인 그 마음 하나에 서로 혹해서, 미운 정 고운 정을 참 많이도 쌓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이 닥쳐온 뇌종양이라는 병마가 범구형을 딱 6개월만 버티게 하고는, 죽음이라는 너울을 씌워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벼렸다.
범구형도 그렇고, 내가 ‘형수’라고 부르는 그 부인도 그렇고, 그 죽음을 예견치 못했던 듯, 재산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을 마련해놓지 않았다.
그 결과는 이승에 홀로 남게 된 형수를 비롯해서 범구형의 혈육들 모두에게 참담한 현실을 안겨주고 말았다.
골프장도 그렇고, 범구형이 살던 대궐 같은 구기동 집도 그렇고, 살아생전 두 아들에게 넘겨줬던 집도 그렇고, 가족들의 모든 재산들은 은행 빚으로 경매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래도 근근이 지탱해오던 골프장도, 문 닫은 지 1년 남짓 됐다.
나와 같이 모태신앙인 범구형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정문 입구에 예배당 하나까지 새로 지어줄 정도로 혼신을 다했던 골프장이었다.
경매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골프장을 팔아버려야 했지만, 끊임없이 하락하는 부동산 경기로, 아무리 싼 값에 내놓아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그렇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두어 명 남아있던 직원들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결국 그 골프장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찬 재처럼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으니, 골프장이 잡초로 뒤덮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젠 빈껍데기 같은 형식적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 골프장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는 형수님의 부탁을 받아, 골프장 임원등기 변경을 위해 연천등기소를 가는 길에, 잠시 그곳 골프장을 찾아 그렇게 한순간 비감에 빠져들어야 했다.
산중의 흥망을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