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4일 15개 신설 약대에 100명 추가 증원을 발표하면서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28년 만의 약대 정원 증원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한약사회 김구 집행부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정부 정책에 끌려가면서 사실상 약대 정원 증원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약대 정원 증원, 390명→590명…2년만에 1210명서 1800명으로2009년 4월
복지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일부 지역에 약대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28년만의 약대 정원 증원 움직임은 처음 외부에 드러났다.
당시 복지부는 약대 6년제 시행에 따른 일시적 약사 배출 중단, 병원약사 인력수급 문제 해결 등을 위해 1210명 수준인 약대 정원을 보다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6월 29일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30여년 동안 동결된 약대 정원을 2011학년도부터 1600명으로 390명 증원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600명으로 산정돼 교육과학기술부로 넘어온 약대 정원 증원안은 4개월 뒤인 10월 20일 교과부가 약대 신설과 함께 계약학과 100명 추가 선발을 공식화하면서 490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해 2월 26일 당초 복지부가 제시한 정원 증원 규모인 390명 가운데 350명으로 15개 신설 약대를 설립하고 나머지 40명은 부산·경성·충남·강원약대 등 기존 약대에 각 10명씩 추가 배정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교과부는 신설 약대 정원이 20~25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추가 증원 방침을 밝혔으며 이는 지난 4일 신설 약대에 5~10명씩, 총 100명의 정원을 배정하는 것으로 현실화됐다.
당초 390명으로 시작된 약대 정원 증원 규모가 계약학과 100명, 신설 약대 추가 증원 100명 등 교과부 차원의 논의를 거치면서 2년여만에 59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이번 6년제 약대 입시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각 약대들이 기존 4년제와 동일하게 정원 외 입학을 유지한 것까지 감안하면 최대 연간 2000명에 육박하는 약대 신입생 선발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복지부·교과부, 약대 정원 원칙 무시…"계약학과 폐지 없다"그러나 2년여의 약대 정원 증원은 약사 인력의 적정 수급보다는 정치적 안배를 통한 나눠먹기식 증원이라는 것이 약사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제 현장에서 약사 인력수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약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는 정부는 정원 배정 원칙을 스스로 무시하는 모습을 수 차례 보여 왔기 때문이다.
당초 복지부는 390명에 이르는 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약사 공급과 수요체계를 예측해 산출한 수치라고 밝혔지만 590명에 이르는 교과부 차원의 증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는 실정이다.
교과부도 약대가 없는 지역에 50명 정원 규모로 5개 약대를 신설한다는 복지부의 입장과 달리 정원이 20~25명에 불과한 미니 약대를 신설한 후 다시 이들 약대에 정원을 추가 배정하면서 원칙없는 증원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약대 정원 증원의 목적이 약사 인력의 적정 수급이 아닌 실상 가급적 많은 약대를 신설하는데 있었다는 것을 교과부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약대 정원 증원으로 '신약개발을 위해 산업체 연구약사 및 병원약사 육성'이라는 교과부의 당초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느냐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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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6월 당시 복지부의 보도자료 |
개국가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늘어난 약사 인력들이 제약산업체나 병원으로 진출할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존 약대에 배정된 82명(기본 정원 100명)의 계약학과 정원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올해 계약학과 입시의 평균 경쟁률이 0.5:1에 불과할 정도로 계약학과는 제약산업체에서조차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지만 교과부는 여전히 이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학과의 저조한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약대 정원을 1800명까지 산출할 수 있는 것도 교과부가 계약학과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데 기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약대의 교육 목표가 제약산업계 및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잡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평가인증제 등을 통해 이를 유도할 수 있도록 약대들과 협의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학과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경쟁률이 저조한 것은 시행 첫 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결과 분석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 등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대생들, 정부청사 앞 철야농성 등 정원 증원 결사 반대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 속에서도 약사 사회가 약대 정원 증원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도 정부가 정원 증원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데 기인하고 있다.
특히 전국약대학장협의회를 필두로 약대생들은 약대 정원 증원 논의 초기단계부터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약사 사회의 약대 정원 증원 반대 움직임을 이끌었다.
복지부의 약대 정원 조정안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2009년 7월
전약협은 복지부의 입장 철회 기자회견, 수업 거부를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25일에는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2200명의 약대생이 참석한 가운데 약대 증원·증설 반대 집회를 갖기도 했다.
해를 넘겨서는 교과부를 상대로 한 1인 릴레이 시위 등이 이어졌으며 정수연씨를 의장으로 하는 20기 전약협 집행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약대생들의 약대 증원 반대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9월 13일부터 3주 동안 이어진 전약협 정수연 의장 등의 교과부 앞 철야농성은 약대 증원과 관련해 사그라들던 약사 사회의 반발 움직임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또한 전약협은 정부 뿐만 아니라 약사회를 상대로 약대생 1600명의 증원 반대 서명서 전달, 항의 방문 등을 진행하면서 김구 집행부가 약대 정원 증원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교과부가 신설 약대에 대한 추가 증원을 발표하면서 결과적으로 약대생들을 중심으로 한 증원 반대 움직임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약대 정원 증원을 바라보는 약사 사회의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약사회, 정원 증원에 소극적 대응 일관…눈치보기 급급반면 약사회는 약대 정원 증원에 대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회원들로부터 눈치보기식 회무를 펼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초 약사회는 약대 정원 증원 논의에 대해 6년제 시행으로 정원 외 입학이 사라지면서 이에 따른 결손 인원 정도의 증원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후 추가 증원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약사회는 다양한 방식의 추가 증원이 발표될 때마다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면피용'에 불과했다는 것이 일선 약사들의 판단이다.
일례로 김구 회장은 지난해 3월 약사회 정기총회에서 약대 정원 증원에 대응하기 위해 TF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대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현장에서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기총회 이후인 지난해 4월에는 다시 TF로 대체돼 비대위를 구성하겠다는 김 회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더욱이 약대 정원 증원 논의가 진행되면서 약사회 내에서는 지나친 반대는 국민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거나 실제 증원이 필요하다는 식의 의견까지 제시돼 회원들로부터 증원에 반대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자아냈다.
전약협이 지난해 9월 약사회를 상대로 발표한 행동촉구서를 통해 '파렴치한 약사회', '지도부의 정치적 사리사욕', '구성원의 인생을 팔아먹는 비양심'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날선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강한 추진의사를 보이는 사안에 대해 약사회가 이를 모두 저지하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현안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회원들의 불만을 키운 것이다.
이후 약사회는 전약협의 입장을 수용해 교과부 관계자 공동 면담, 약사 인력 수급 토론회 개최 등의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는 것이 일선 약사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