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망(李眞望)-對酒拈白集韻(대주염백집운)(술잔을 마주하고 백거이 시집의 운자를 뽑다(술을 벗하여 태평 시절 노래하네)
頭白窮山裏(두백궁산리) 흰 머리로 궁벽한 산속에서
婆娑獨自娛(파사독자오) 홀로 한가로이 즐거워한다
淸幽大抵有(청유대저유) 맑고 그윽한 풍광만 있을 뿐
喧閙一齊無(훤뇨일제무) 떠들썩한 세상 소리 전혀 없다네
得酒花相勸(득주화상권) 술 얻으니 꽃이 마시라 권하고
吟詩鳥共呼(음시조공호) 시 읊으니 새가 함께 지저귀누나
尤欣北窓下(우흔북창하) 더욱 흐뭇한 일은 북창 아래서
日暮枕空壺(일모침공호) 저물녘에 빈 술병 베는 거라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도운유집陶雲遺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변구일님은 “궁벽한 산속에 사는 백발의 노인이 있다. 한가로이 산수(山水) 속에 소요(逍遙)하면서 조용하고 담박한 삶을 즐긴다. 맑고도 그윽한 풍광은 황혼에 접어든 인생에 어울리는 옷과 같고 시끄러운 세상일은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카락처럼 빛깔을 잃었다. 찾아오는 벗이 없어 술상 마주할 이는 없지만 곁에서 웃고 있는 꽃들이 술 마시라 권하고, 외로이 앉아 시를 읊조리노라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정겹게 지저귀며 시심(詩心)을 부추긴다. 잔 들고 시 읊는 사이 어느덧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이 하늘을 물들이면 시는 쌓이고 술기운은 거나해져 북창 아래서 맑은 바람 쐬며 태곳적 희황羲皇 시대 사람이라 말하던 도연명처럼 다 다 마셔버린 술병을 베고 깊은 잠이 든다.
이진망은 영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증손이다. 그 역시 대제학을 지내고 예조 판서까지 올랐는데, 술을 유독 좋아하였던 모양이다. 시제에 보이는 ‘백거이 시집의 운자’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유몽덕의 와병한다기에 술을 들고 찾아가면서 먼저 이 시를 부치다(夢得臥 病 携酒相尋 先以此寄)’라는 시를 가리킨다. 이 시는 백거이가 벗 유우석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술 한잔 하자며 노래하는 내용으로 장난기가 가득 묻어나는 시다.
이진망의 문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는 술을 읊은 시가 적지 않은데 그 내용을 보면 애주가(愛酒家)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가 있다.‘술을 대하며 對酒’에서는 식사하면서 반주를 마시다 갑자기 흥이 일어 한 잔이 다음 잔을 부르는데 결국에는 생선회까지 곁들이고 입이 원하는 대로 거푸 술잔을 비우며 과음도 꺼리지 않는다고 노래하였고, ‘한밤에 술을 대하며 夜裏對酒’에서는 예순 나이에 마음은 텅 비어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데 술잔만 보면 군침이 돌면서 마음이 들뜬다고 했다.
한편 ‘밤중에 취해 일어나다 夜中醉起’에서는 취해 쓰러져 자다가 술이 모자랐는지 일어나서는 술병에 술이 남은 것을 기뻐하며 마저 비운다고 노래하였고, ‘새벽에 일어나 술을 먹다 曉起飮酒’에서는 닭 우는 소리에 문득 깨어 일어나 보니 산은 온통 새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고 새벽 한기가 몸을 오그라들게 하는데 무료한 마음 달랠 길 없어 화로를 끼고 술잔을 데운다고 했다.
이처럼 그는 시에서 호젓하게 혼자 앉아 술을 먹는 정경을 자주 묘사하였다. 북속의 유학자 소옹邵雍은 항아리로 창을 낸 누추한 집을 지은 뒤 안락와安樂窩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앉아 새벽에는 향을 피우며 고요히 정좌를 하고, 하루의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한가로이 지내다가 저물녘이 되면 몸이 살짝 따뜻해질 정도로 서너 잔의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학문에 매진하는 삶 속에서 술을 벗하는 것도 지나치지만 않다면 멋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이진망[李眞望, 1672년(현종 13년) ~ 1737년(영조 13년), 자는 구숙(久叔), 호는 도운(陶雲)ㆍ퇴운(退雲). 본관은 전주(全州)]-조선의 문신. 영의정 경석(景奭)의 증손, 우성(羽成)의 아들. 1696년(숙종 22) 생원(生員)이 되고, 1711년 문과(文科)에 장원, 지평(持平)ㆍ정언(正言)을 거쳐 1725년(영조 1) 대사성(大司成)으로 소론(少論) 이광좌(李光佐)의 신원(伸冤)을 상소하였다. 1730년 형조 판서가 되고 1732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 판서가 되어 대제학(大提學)을 겸임, 1735년 좌참찬(左參賛)으로 빈객(賓客)을 겸했으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죽었다. 영조의 잠저(潛邸) 시절에 사부(師傅)로서 왕의 예우(禮遇)를 받았다.
*拈(염) : 집을 념(염), 달 점, 1.(집을 념(염)), 2.(손으로)집다, 3.집어 들다
*婆娑(파사) : 할머니파, 춤출사, 1.춤추는 소매가 가볍게 나부끼는 모양(模樣), 2.(힘ㆍ세력(勢力)ㆍ형세(形勢) 따위가)쇠(衰)하여 가냘픈 모양(模樣)., 3.(거문고 따위의 소리가)꺽임이 많은 모양(模樣).
*大抵(대저) : 막을 저, 1.대체(大體)로 보아서, 2.무릇, 3.대강(大綱).
*喧(훤) : 지껄일 훤, 1.지껄이다, 2.떠들썩하다, 3.시끄럽다
*閙(요) : 시끄러울 뇨(요), 1.시끄럽다, 2.지껄이다, 3.흐트러지다.
첫댓글 자연인....
ㅎ, 자연인과 비슷하겠군요,
술 마시는 것은 좀 다르겠네요.
즐거운 금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술을 부르는 시와 유유자적한 삶...
득주화상권 음시조공호라
오늘 저도 한잔 해야겠네요~~~~~~~
ㅎ, 풍류가 좋습니다.
회장님 맛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