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소한 것이 세상을 바꾼다 ]
( 조연경 / 드라마 작가 )
#1. 이사 가는 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실직을 하고 이력서를 들고 꽤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결국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아내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해야 되는 새로운 삶이
두렵고 외로워 울고 싶었지만
남편의 절망을 아는지라 내색할 수 없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던 아내는
싱크대 서랍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이사 오느라 애쓰셨어요.
저는 이곳에서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특히 부엌에 있는 작은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은
늘 한 폭의 수채화같이 멋지답니다.
당장 이용해야 되는 가게 전화번호입니다. 주인 모두 친절하고 다정한 분입니다. 행복하십시오.”
글 밑에 빼곡하게
쌀집, 채소가게, 정육점, 약국, 미용실, 목욕탕 등
가게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춥고 앙상한 겨울산이지만 머지않아
연둣빛 새싹이 돋고
진홍빛 진달래가 수놓여진 아름다운 봄산이 되리라.
아내는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편지 한 통으로
이곳에서 행복을 꿈꾸게 됐다.
#2. 딸은
친정아버지를 요양원에 두고 온 날 밤새 울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아버지가
먼저 요양원 이야기를 꺼냈고,
하루 종일 아버지만 돌볼 수 없는 딸은 만류하지 못했다.
대신 딸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1주일에 한 번은 꼭 찾아뵙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요양원 방문을 한 첫날,
뜻밖으로
아버지의 표정이 밝은 것에 놀라고 안도했다.
그 이유는
요양원에 있는 노인을 부르는 호칭에 있었다.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다른 요양원과 달리
그곳에서는
한창 일하던 때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선생님, 지배인님, 원장님 등
그건 단지 호칭이 아니라
눈부신 젊은 날을 한 조각 돌려주는 일이기도 했다.
정년퇴직한 지 15년이 된 아버지는
다시 교감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딸에게 고백했다.
딸은 아버지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호칭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요양원이라면 아버지를 잘 돌봐줄 것 같은 믿음에서다.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닌
작고 사소한 일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비를 맞고 걷는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일,
길거리에 버려진 유리조각을 줍는 일,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일,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일,
양손에 짐을 가득 든 뒷사람을 위해서
잠시 문을 잡고 서 있기 등
내가 하고도 곧 잊어버리고 마는
사소한 것이
누군가에게
인생은 아직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은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된다.
내 미소,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나의 친절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지인이 보내준 톡에서-
아름다운 것들 /양희은
https://www.youtube.com/watch?v=hPqprZy7s3Q
내가 알 수 없는 것
너도 알 수 없지 않을까?
그건 나의 오산일 수도
새벽에 일어나 톡보내니 지인들이 잠을 설치지 않을까?
의미없는 카톡소릴 잠재우면 좋을 건데...
뭐 내 손을 떠난 건 내 것이 아니지
굳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는가?
얼른 동물들 챙겨주기
개가 세 마리 닭장과 병아리장에 닭과 기러기 거위
거기다 육추기엔 이제 깨어난 병아리 부화기엔 태어날 알들이 대기
종류별로 먹이주는게 다르다
어쩜 난 이렇게 고루 키우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들 하나하나 살피며 대화하는 즐거움
그들은 날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집사람은 계란과 양배추 당근을 함께 넣어 볶아 놓았다
봄동도 다듬어 씻어 놓고
가지고 가 점심때 먹겠단다
그래 각 집에 한가지씩 반찬이 모이면 푸짐할 것같다
아침 한술 하고 바로 교육원으로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
나오기 좋게 매남성당 옆길에 주차해두었다
뒤이어 다른 분들도 도착
열의들이 대단하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1교시 수업시작
원장님이 아침 조회를 하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
부담없이 교육 받을 수 있게끔 많은 배려를 하신다
오전 3교시 교육은
폐결핵과 심혈관계 질환인 고혈압과 동맥 경화증에 대한 교육
전문적인 의학은 아니지만 원장님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니 기초적인 상식이 있어 이해하기 쉽다
사모님이 점심을 지어 놓아 몇분이 반찬을 준비
함께 어울려 먹으니 맛이 좋다
거기다 오늘은 쑥국까지
교육원에 놀러 오신 할머니가 쑥을 캐 오셨단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
이게 사람사는 세상
동생 전화
오늘 곰소 왔는데 가는 길에 사거리 집 들러 냉이나 캐겠다고
그렇게 하라고
4교시가 끝난뒤 생각해보니 동생들이 집에 온다는데 내가 있어야겠다
몸도 피곤하니 잠도 한숨 자고 오면 좋겠다
내 나이에 8시간을 꼬박 앉아 있다는게 쉽지 않다
동생들 오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집에 가니 아직 세시가 못되었다
난 먼저 잠한숨
침대에 누우니 금방 코를 곯아 버린다
내 스스로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깨어 버렸다
꽤 피곤했나 보다
동생들이 왔다
냉이 캘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주고
매제에갠 양배추도 한포기 뽑아 주었다
양배추를 뽑으려는데
어?
양배추가 꽃을 피우려 위가 벌어지며 꽃대가 고갤 내밀었다
저런 이라니
난 4월에나 꽃대가 나올까 생각했는데 날씨가 푸근하니 일찍 나와 버린 것같다
내일은 양배추를 모두 수확해 저장해야겠다
동생들에게 청계알과 기러기 알을 주었다
사로 원하는 걸 가져가라고
모두 청계알을 주었으면 좋겠지만 알이 부족
그러나 청계알이나 기러기 알이나 나이든 사람에겐 모두다 좋다
동생들이 가고 난 뒤 다시 교육 받으러
5-6교시를 받지 않아 그 자릴 읽어 보았다
심부전과 빈혈
나이들면 심장이 두꺼워져 원활한 일을 하지 못한다고
철분 섭취의 부족으로 빈혈도 흔하다고
7-8교시는 근 골격계에 대한 증상들
퇴행성 관절염과 골다공증 고관절 골절 등에 대해 교육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 늙은 몸은 늙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
모두다 퇴화하고 있어 좋아질리 없으니 잘 다스려가며 살아야한다고
마지막 교시
원장 사모님이 찐달걀과 두유를 제공
갓 찐 달걀이 맛있다
집에 오며 문사장에게 전화
별일 없음 집에 와 막걸리 한잔하자고
금방 오겠단다
집에 도착하니 문사장이 와 있다
오늘 쉬는 날이라 송산 저수지에서 입질 받으려 했다가 공쳤단다
같이 막걸리 한잔
노열동생도 일 끝나 올라왔다
지난번 내가 실수 한 이야기
내가 술마시고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았던건 그날 뿐이라고
충격을 먹으니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아 버렸다며 자네들이 이해하라고
동생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인게 부끄럽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
이젠 다르게 살아야겠지
이래저래 오늘도 술만 많이
저녁 생각이 없어 술로 때워 버렸다
의자에 앉아 공부한다는게 일하는 것보다 더 피곤한 것같다
일찍 잠자리로
수탈 한 마리가 홰를 치니
저 멀리서도 꼬∼끼∼오
님이여!
격려의 말 한마디
존중하는 한마디가 우리의 마을을 활짝 열게 해 준답니다
이 주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입에 다시며
님의 주위가 늘 훈훈한 날들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