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언제나 붉게 녹이 슨 철대문 옆 한겨울에 대추꽃을 환하게 피우고 미쳐버린 아름드리 대추나무, 십 년을 넘게 기른 늙은 고양이 살찐이가 묻힌 사철나무 울타리, 가득 찬 물이 시퍼렇게 썩어가던 우물, 밑동이 서로 얽혀 자라던 우물가의 무화과 두 그루와, 무화과나무에 기대어 밤으로만 무성하게 자라는 포도덩굴이며, 달빛 아래 흰빛을 뿜어 대던 치자나무……
밤마다 나는 할머니 품속으로 파고들면서, 할머니도 살찐이처럼 너무 늙어 숨을 멈추면 어떡하나, 가르릉거리는 할머니의 숨을 빨아들이고 할머니 코밑으로 단내나는 숨을 내뿜으며, 나는 내 숨이 할머니의 몸속으로 들어가기를, 할머니 몸속으로 들어간 내 숨이…… 그러다가 나는 자꾸만 오줌이 마려워 눈을 꼭 감고 요강에 앉아 쪼르랑거리면, 아주 먼 곳에서 기차 소리가 들려오는데, 진주에서 비단 싣고 오는 기차 서울로 가는 기차, 삼랑진 거쳐 부산 가는 기차, 구포, 밀양, 동대구…… 그 아득한 이름들을 외우며 침목을 밟고 레일을 따라 멀리멀리 가다가 설핏 보면, 할머니가 어느틈에 풀었던 머리를 쪽찌고 앉아 벽을 보고 구렁구렁 염불을 외고 있고, 흰 할머니 고무신이랑 내 꽃고무신 안에 작은 살찐이가 또 새앙쥐를 물어다 넣어 놓았을 텐데, 아침이면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발끝의 새앙쥐 온기에 나는 화다닥 또 놀랄 것인데……
- 오랜 밤 이야기, 창작과비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