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청바지
석야 신웅순
퇴임한 지 7년 째다. 세월이 이렇게 빠른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여보, 백화점에 가요.”
청바지를 사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내에게 여름에 편히 입을 청바지 하나 사달라고 했었다. 퇴임 후 산 청바지가 그것만 입다보니 다 낡아 해져버렸다.
“일부러들 찢어서도 입는데 그냥 입고 다닐까?”
“앵?”
기가 막히다는 얘기이다. 하기사 젊은이도 아닌데 맞는 말이다. 나는 찢어진 부분만 좀 누비면 입고 다닐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버리게 되면 환경오염도 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내가 골라 준 메이커 청바지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맞는 분홍빛 티까지 샀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난 여간해서 옷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애초부처 옷에는 돌아선 부처였다. 아내는 나이 들수록 단정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며 입버릇처럼 잔소리를 했다. 아내가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여류 화가가 내 차림새를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와, 청바지, 윗 티, 안경까지 한 세트여요. 아주 멋진 패션여요.”
거기다가 머리까지 물을 들여보라고 한다. 색깔까지 얘기해준다.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바지는 블루요, 윗 티는 분홍빛이요 안경테는 붉은 색이다.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일부러 맞춰서 입은 것도 아닌데 그리 보였나 보다. 그날은 그림도 잘 되었다.
교수시절엔 늘 정장만을 하고 다녔다. 퇴임하고 나서는 청바지 하나만 계속 입고 다녔다. 빨간 티를 사서 이미지 변신을 해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나이가 드니 머리까지 빠진다. 친구가 그런다, 모자 패션으로 바꾸어보라고. 그 친구는 키도 크고 배도 나오지 않아 무엇이든 옷을 입으면 모자까지 멋진 첨단의 실버패션이 된다. 키가 작은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일생을 옷에 대해선 무심했었다.
한 남자로써 멋지게 꾸미며 또 하나의 매력남으로 살아올 수도 있었을 텐데 세월만 축내고 말았으니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인생은 단 한 번인데 말이다.
실수가 창조라 하지 않았는가. 지난 나의 패션을 실수라 생각하자. 며칠 전 피티도 신청했으니 실버의 멋진 몸매를 만들어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보자.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키는 작아도 멋은 있네”이런 소리라도 들어보자. 이것을 첫 버킷리스트로 삼아보자.
청바지 하나가 내게 기쁨과 깨달음을 주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2024.7.5.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