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
강일규
동네 저수지에서
방생으로 추정되는 동남아산 등검은새우가 발견되었다
고 한다
한겨울
저수지 바닥에서
수온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아
진화의 단계를 앞당겼다는 설이 파다하지만
임금체불로 생활고를 겪던 건설 현장의 한 불법체류자가
창 없는 쪽방에서 허리가 휜 상태로 사망했다는 보도
가 나왔다
경찰은 닫힌 공간에서 폐소공포증으로 인한 돌연사라
는 의사의 애매한 소견을 사망 원인으로 발표했고
나는 단순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향수병에 의한 사망으
로 단정 지었다
누구에게도
부고를 전할 수 없는
저 허리 휜 신원 미상의 시신
마침내 죽어서야 세상 밖으로 드러난 그의 붉은 살빛
빛이 울기 시작한다
불안불안 재계약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취준생 같아
안 보이면 취직했나 싶은
수시로 입사원서를 쓰는 너에게 첫 월급 탔다고 밥 한
번 먹자 했다가
면접이나 보고 먹자며 미룬 것이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입사한 너도
계약직
출퇴근용 출입증을 목에 걸고 현장사무소에서 늦은 시
간까지 주간 공정계획서를 작성하다 알았다 일정과 공정
사이의 불공정 계약을
사원증 걸고 휴게실이나 헬스장으로 내빼는 정규직 한
번 씹어보자고 나선 선술집
뒷담화는 나쁜 상사라도 있고 욕할 회사라도 있어야
했다
한 발 들여놓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재계약이 불안불안한
우리는,
일기
아내의 일기를
현재진행형으로 읽으면 아프다
소리 내어 읽으면 내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
속기로 오기한 숫자도 거꾸로 읽은 문자도 오독하면
헛웃음이 되는 문장이 많았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오독
이 쉬웠다
이후의 문장은 깨끗한 고통
생전에 같이 가자 했던 소풍을 혼자 다녀가 안부를 따
르는 잔이 아프고 위로가 아프다
먼저 보내 아프고 남겨 놓아 아프다
아내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내 앞에 노을 짙어지고 땅거미 내려앉아
아내가 멈춘 일기를 이어 쓴다
혼자서
립싱크
수족관의 물고기는
무슨 노래를 부르려는 것일까
다윈 설이 맞는다면
저 물고기는 앞으로 얼마나 더 뻐끔거려야 새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자신의 진화를 앞당기려는지 물고기 한 마리가 수족관
밖으로 튀어나와 파닥인다 새의 부리가 되지 못한 큰 입
으로 연신 뻐끔거린다
나는 물고기 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
귀를 바짝 갖다 댔지만
물의 품속에 가두었는지
빠꼼빠꼼
립싱크 금지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긴급 뉴스에
물고기가 두 눈을 부릅뜨고
강일규 시인
* 충북 영동 출생
* 2017년 『문예바다』 등단
* 2022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
* 2022년 세종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 시집 『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 2022년 상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