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오늘의 미사강론
5월 16일 부활 제 4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복산성당 부주임 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신약성경의 4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있던 제자들의 메모리 창고다. 예수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예수의 부활, 승천을 모두 경험했던 제자들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하드 디스크다. 그 하드 디스크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우리는 매일 복음으로 읽어가고 있다. 오늘 복음은 그 제자들이 들었던 스승의 말씀들 가운데, 당신의 신원, 당신의 정체에 대한 말씀 부분을 우리들에게 열어 보인다. 그 스승께서는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오 »라고 당신 스스로를 밝혀 보이신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길,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진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바로 다름 아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스스로 밝히신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그날부터 자신들의 스승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 선포는 제자들의 내면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들을 꺼내었던 것들이었다. 그들의 스승이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말씀들, 표정들, 미소들,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일어났다. 그 기억들이 복음이었음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예수의 그들과 함께하심이 바로 복음이었음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그들은 그분의 말씀,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와 3년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예수를 직접 만나 뵈었고,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누고, 그분과 함께 대화도 나누고, 그분과 함께 삶을 공유했기에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시공간을 넘어가는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만 있으면, 지금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네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무의미한 것들에 대해 밤새도록 물어보고 싶다.  인간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그 제자들이 부럽기 한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체가 있다. 제자들의 기억들의 보고인 성경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2천년 역사 동안 교회 안에 고스란히 내려오는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그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인들, 나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도반이 있다. 직접 예수를 만나 뵈옵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들이 경험했던 따스함에 대한 기억들, 사랑에 대한 기억들, 그런 기억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끄는,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읽는 성경의 말씀들은 제자들의 기억들이고, 예수를 체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이기에, 성경의 말씀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성사로서 현시대의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받아 모시는 성체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뚱아리다. 그 몸을 우리들의 손으로 느끼고, 그 몸을 우리들의 혀로 맛보고, 그 몸을 우리들의 몸뚱아리 안으로 소화시키면서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만나고, 늘 그분과 함께 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다.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표징이다. 이 표징을 우리가 알아듣고 깨달을 때에, 우리들도 제자들의 기억 속에서 펄펄 살아 뛰는 말씀,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오 », 이 말씀을 받아들여, « 주님, 당신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포는 그저 말로 끝나지 아니한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면, 그 분의 일을 하고, 그분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 선포는 완성된다. 선포와 실천, 이 둘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면, 지금의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기 위해서 필요한 실천은 무엇일까? 가장 시급한 것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일은 기억과 함께 한다. 국가와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능과 무책임도 모자라 이제는 희생자들과 유가족은 물론이고,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국민들마저 기만하는 망언과 망동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불난 집’의 불을 함께 꺼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기름을 퍼붓고 있는 격이다.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참으로 오만한 ‘나쁜’ 정부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국가 권력의 오만과 무책임은 우리에게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게 만든다. 또한 이와 같은 권력의 오만과 폭주에 맞서 국민들의 권익과 특권을 어떻게 강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오래된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자유당 이승만의 부정과 독재를 막아낸 4.19 혁명, 전두환 신군부의 장기독재 의지를 꺾은 87년의 6월 항쟁을 기억해야 한다. 독선과 오만에 찌들어 있는 정치권력은 절대로 스스로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 국민들의 각성과 행동만이 이 오만한 정부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다. 기억하자. 연대하자. 교회도 여기에 동참하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께서도 분명히 교회의 동참에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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