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복음적 식별을 할 수 있는 안목을 주소서.
어려서 깜부기를 뽑아서 입술에 칠하고 다니면서 귀신놀이를 한 적이 생각납니다. 입술이나 이빨이나 혀를 까맣게 만드는 재료는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양질의 재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오디나 버찌도 피처럼 그렇게 물들이는데 아주 좋은 천연자료였지요. 어떤 것은 며칠씩 지워지지도 않아서 비누도 없었을 때 학교에 가면 금방 들통이 나고, 치약이나 칫솔이 거의 없을 때 한참을 애를 먹은 적이 많이 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가라지의 비유가 나오면 언제나 떠오르는 얘기꺼리가 된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정말 성가시고 골치 아픈 것이 논에는 피가 있고, 밀이나 보리밭에서는 가라지와 깜부기랍니다. 피는 생육이 얼마나 빠르고 잘 자라는지 정말 못 알아 볼만큼 빨리 자랍니다. 어려서 피가 논에서 극성을 부리면 벼 이삭이 패려고 할 때 조그만 가위 칼을 가지고 피사리를 하러 논에 들어갑니다. 피를 뽑으려고 하다가는 벼가 뽑히니까 하는 수 없이 피를 일일이 잘라서 말려 태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피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피를 벼인 줄 알고 내버려두고 피가 씨앗이 여물면 그 이듬해 그 논은 거의 피 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피만 키운다고 합니다. 지금도 8월이 되면 피가 많은 논을 지나면서 게으른 농부를 흉봅니다.
가라지도 밀이나 보리하고 아주 똑 같습니다. 그런데 알갱이는 거의 없고 쭉정이 같은 모양만 주렁주렁 달립니다. 그런데도 밭의 영양분은 거의 다 빨아 먹어서 밀은 영양실조가 된답니다. 또 그 쭉정이 같은 것도 아주 여물어서 그냥 내버려두면 그 이듬해에는 온 밭이 가라지 밭이 됩니다. 이것은 추수해도 바람에 날려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깜부기는 깜부기 포자가 공기 중에 날려 다니다가 밀이나 보리에 붙으면 그 때부터 그 밀이나 보리는 병을 얻어 그 이듬해 씨로 뿌려지면 거의 모든 곡식은 깜부기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씨앗을 뿌리기 전에 소금물에 담가두어 소독을 한 다음에 파종을 해야 깜부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많은 병들이나 기생하는 식물들은 서로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아주 똑 같이 생겨서 농약을 쳐도, 제초제를 뿌려도, 뽑아낸다고 하여도 영양분을 모두 빨아 먹은 다음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라지 처리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악마가 뿌려놓은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이해가 된답니다. 그건 양질의 밀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질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습니다. 또한 가라지에게 모든 영양을 빼앗기면 안 된답니다. 그 것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주님께서 은총으로 그 능력을 키워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가라지나 깜부기나 피가 극성을 부리기 전에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고, 벼와 피를 구별하고, 깜부기를 소독하고 깜부기가 조금씩 모양을 드러낼 때쯤이면 뽑아내서 태워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들 속에서 식별해서 찾아내는 것을 ‘복음적 식별’(福音的 識別)이라고 하고, 복음적 식별을 통해서 무엇이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고, 무엇이 악마가 뿌리고 간 것인지 알아내야 한답니다.
그렇게 알아낸 것을 하느님의 뜻이라면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권고해야 합니다. 정의, 평화, 일치, 희망, 사랑, 화해, 자유, 진리 등등 정말 우리가 선포하고 권고해야 하는 것은 많이 있답니다. 매일의 말씀 중에서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누고 선포해야 하는 것을 시기를 잃지 말고 찾아나서야 한답니다. 주님께서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용기와 모든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엄청난 은총으로 우리를 무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격하고 정성들여서 뽑아내야 할 가라지와 피와 깜부기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살아있습니다. 분열, 파괴, 살인, 교만, 독설, 험담, 이간질, 사기, 공포, 기타 등등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매일 찾아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매일 찾아내서 매일 수선하고 고쳐서 다시는 그 안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우리가 그런 일들에 적극적으로 앞장설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시는 그 식별의 은총을 복음 안에서 이루어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1-11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님의 집 대문에 서서 이 말씀을 외쳐라. “주님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서는 유다의 모든 주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3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4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5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6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8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9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10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 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11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축일7월 23일 성녀 비르지타 (Birgitta)
신분 :과부, 설립자
활동 지역 :스웨덴(Sweden)
활동 연도 :1303-1373년
같은 이름 :브리지따, 브리지타, 브리짓다, 비르지따, 비르짓다, 비리시다
1303년 스웨덴 우플란드(Uppland)의 총독이며 부유한 지주인 비르거(Birger)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인게보르크(Ingeborg) 사이에서 태어난 성녀 비르지타는 12살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 그때부터 계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로 훗날 네레시아 지방의 총독이 된 18세의 귀족 울프 구드마르손(Ulf Gudmarsson)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중의 하나가 스웨덴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이다.
1335년 그녀는 스웨덴의 왕 마뉴스 2세와 막 결혼한 왕비 나무르의 불랑쉬(Blanche)의 시녀가 되었다. 비르지타의 큰딸이 결혼에 실패하고 또 그녀의 막내아들 구드마르(Gudmar)가 1340년에 죽게 되자, 그녀는 노르웨이 트론디엠의 성 올리프 경당으로 순례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궁중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재차 순례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아라스에서 병을 얻었고, 이때 그녀는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환시를 보았다.
1344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알바스트라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4년을 지냈다. 이때에도 그녀는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았고, 고해신부는 그녀의 모든 환시가 올바르다고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계시에 따라 그녀는 1346년에 바드스테나(Vadstena)에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 수도회'를 세웠고, 마뉴스 왕도 여기에 거처하였다. 이것이 '삼위일체회'(비르지타회)의 시작이다. 바드스테나는 15세기 스웨덴의 지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그녀는 라트비아(Latvia)와 에스토니아(Estonia)의 이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려는 국왕 마뉴스의 지원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당시 아비뇽(Avignon)에 유배 중이던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게 글을 보내어 자신의 환시 내용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교황은 안전하게 로마(Roma)로 돌아올 것이며,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에 교황이 중재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지내면서 매우 엄격한 생활과 빈민구제에 온 정열을 쏟았으며, 당시의 심각한 교회와 정치사이의 제 문제에 대하여 기탄없는 충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엄격한 생활과 성덕,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 및 교황의 로마 귀환에 대한 노력 등이 로마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는 로마 주변의 수도원을 개혁하였고, 그녀의 예언과 고위직책에 대한 탄핵은 유명하였다. 그녀는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는 문제를 위하여 계속 노력하였으나, 우르바누스(Urbanus) 교황만이 잠시 귀향하였고 그의 후임자인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는 여전히 아비뇽에 있었다.
그녀의 구술로 적은 “계시”라는 책에는 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내용으로 당대에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그녀의 시성과 콘스탄츠(Konstanz) 공의회에서 그러하였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녀가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그의 체험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교리와도 부합된다고 갑론을박하였다. 그녀의 사후 트렌토(Trento) 공의회는 그녀의 “계시”를 세심히 검토하도록 하였는데, 결국 신자들이 읽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녀는 스웨덴의 수호성녀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르지타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