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549045367
때는 인세의 지옥이라 할 수 있는 독소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소비에트 연방,
1939년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야쿠티야 전역이 기근에 시달리던 때,
소련은 사람부터 물자까지 전부 동부전선에 몰아넣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전선으로의 원활한 식자재 공급을 위해 소련 인민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소집하여,
1942년 8월 11일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강 유역 수산업 발전»이라는 결의안을 발표하게 된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수년간 가뭄으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야쿠티야 '추랍친스키 울루스Чурапчинский улус' 내 41개 집단농장 소속의 모든 야쿠트족들은 야쿠티야 북부에 위치한 코뱌이스키, 지간스키, 불룬스키로의 재정착이 계획되어 있었고,
지도부는 야쿠트족 인민들이 어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성인 남성에겐 군면제, 그리고 1인당 밀가루 16kg를 배급하면서 추가로 주택과 의료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서라면 인민들 목숨 따위 그냥 갈아버리는 스탈린 치하 소련답게 그 과정이 찐빠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우선 1942년 8~9월부터 시작된 해당 계획은 10월 초까지 모든 과정을 단기간 안에 마쳐야했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군경들이 쳐들어와 추랍친스키 야쿠트족들이 음식과 옷가지 등이 포함된 16kg 이하의 개인 소지품만 챙겨가도록 명령했고,
심지어 불룬스키 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야쿠트족에게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소와 말을 데려갈 수가 없어 대부분 급하게 집과 재산을 두고 고향을 떠나 약 160km를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이때 1,850가구(5,318명)의 사람들이 야쿠츠크 근처에 위치한 니즈니 베스탸흐 부두에 도착하여 레나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할 바지선을 기다렸는데...
이때 예상과 달리 바지선이 오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2~3주 동안 야외에 방치된 채로 바지선을 기다리다가 병사와 아사, 동사 등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터져버렸다.
또한 며칠만에 도착한 바지선은 굉장히 노후화된데다 화물 수송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9월 말~10월 초까지 이동하는 동안 차가운 가을비와 바람을 맨몸 그대로 맞아야 했고,
당연히 음식을 조리하거나 몸녹일 차조차도 만들 수가 없어 아예 강물을 퍼다마시거나 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투신자살하려다가 간신히 제지되었다는 여러 처참한 일화들이 전해진다.
그러나 간신히 북쪽 땅에 도착한 이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추랍친스키 사람들은 평소 농업 또는 축산업에 종사하며 살아온 탓에 어업이나 사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고,
소련 지도부의 약속과 달리 북쪽 땅에는 서류상에 분명히 있다고 기재된 집과 식량, 방한복, 어구, 부지 따위 전혀 없던 상태였다.
그리고 야쿠티야의 10월은 야쿠츠크 기준으로 최저 −11.0도, 최악의 경우 −40.9도까지 떨어지는 끔찍한 기온을 자랑하는 곳이기 때문에,
눈이 오자 사람들은 급하게 임시 오두막을 짓거나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등 제대로 정착조차 못한 채 당명에 따라 어업을 시도해봤지만,
한겨울에 물고기는 거의 잡히질 않아 사람들은 신발 밑창이나 벨트 그리고 이끼를 뜯어먹으며 겨울을 보내야했고, 열악한 상황을 증명하듯 아사자들은 매장을 못해 그냥 밖에다 둬야 됐다는 증언이 존재한다.
심지어 당국은 약속한 것에 훨씬 못미치는 밀가루 3~5kg만 배급하고 남자들은 모조리 징집해버리는 소련다운 혐성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후 1944년, 소련은 전시 동안 야쿠티야 어획 생산량이 3.5배 증가한 것에 만족이라도 한듯 생존한 추랍친스키 주민들이 고향땅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큼은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철저히 금지시켰고, 1992년이 되어서야 생존자들은 강제이주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야쿠티야 주민들은 소련이 추랍친스키 주민들을 북쪽으로 강제이주시켜 1,747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을 '추랍차 참사Чурапчинская трагедия'라 부르고 있으며,
매년 9월 19일마다 애도되는 해당 사건은 현대 추랍친스키 주민들 사이에서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첫댓글 너무 슬픈 사건이네..
잘 봤어 슬프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