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경(三更)의 도살장
땅거미가 질 무렵, 신선루는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송불군은 여전히 벽에다 석회칠을 하고 있었지만 그 동작이 매우 느렸다.
보기에는 매우 바쁘게 서두르는 것 같지만
실은 한나절 동안 삼분의 일밖에 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송불군은 조금도 조급해 하지 않고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에만 골몰했다.
그의 목적은 이 신선루의 주인이 어떠한 신분이며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 사람고기를 파는지의 여부를 캐내는 것이었다.
"아직도 이것밖에 칠하지 못했느냐?
날이 곧 어두어질 텐데 오늘 내로 일을 끝낼 수 있겠느냐?"
송불군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끝내지 못하면 내일도 계속 일하겠습니다."
"홍! 내일도 못 끝내면 모레 또 하겠단 말은 아니겠지?"
"아...아닙니다. 내일이면 틀림없이 끝낼 수 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분명히 꾀를 부리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그런데 너는 말을 듣지 않다니.
흥! 일을 끝내지 않고는 절대 이곳을 떠날 생각은 말아야 할 걸."
송불군은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그건 안 됩니다. 밤에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문가는 그를 쏘아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흥! 밤에 일을 할 수 없다면 우리 누에서 잠을 자고
내일 또 일하면 될 것 아니냐?
아무튼 너는 일을 끝낸 후 은자를 받아 가도록 해라."
송불군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그럼 제가 누워 잘 침상이 따로 있단 말입니까?"
"하하하하...그래도 편안한 침상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탁자를 두 개 붙여서 자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라."
하고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송불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왜냐하면 방금 문가의 말은 바로 그가 바라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도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은 물론
지금까지 어떤 인물이 얼마나 죽어갔는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날 밤도 점점 깊어만 갔다.
송불군은 탁자를 붙여 만든 임시 침상 위에서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과연 그가 낮에 추측한 대로
신선루의 주인과 네 명의 점원은 모두 후원 누각에서 잤다.
그런데 그가 지금 누워 있는 전루(前樓)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고요와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삼경(三更) -
송불군은 탁자 위에서 벌떡 일어나 땅바닥에 가볍게 내려섰다.
낮에 보였던 흐리멍텅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현재는 날렵한 표범처럼 생기가 넘쳤다.
몸을 약간 휘청하자 그는 이미 다섯 자 밖으로 벗어나
벽에 찰싹 붙어 있었다.
이어 주방을 향해 조금씩 접근해 갔다
. 주방은 칠흑처럼 깜깜해서 옆에서 따귀를 쳐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살그머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더니
다시 문을 닫고는 천리화(千里火)를 찾아 불을 밝혔다.
희미한 불빛이었으나 주방 안의 모든 경물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약간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 주방은 보통 주루의 주방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 술독과 가마솥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송불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고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이 지하실도 주방과 같은 크기로 청석을 깔았고
차가운 냉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듯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눈 앞에 곧장 보이는 맞은 편 석벽에는
세 개의 해골이 빠끔히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아래에는 나무 탁자 하나가 고기를 요리하는 도마처럼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탁자에는 흰천으로 무언가를 덮어둔 것이 보여
소름이 오싹 끼쳤다.
송불군은 대담하게 몸을 획 날려 눈 깜짝할 사이에 탁자 앞으로 다가가
흰 천을 들춰보았다.
"엇! 이건 사... 사람의 시체..."
과연 탁자 위에는 머리도 손도 다리도 없는 사람의 시체가 누워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음... 그들은 정말 사람고기를 팔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였다.
돌연 난데없이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나타나더니
그중 하나가 아무 소리도 없이 송불군의 뒤로 다가갔다.
이어 오른팔을 불쑥 내밀어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그의 어깻쭉지를 움켜 잡았다.
그의 뒤로 다가온 그림자의 신법은 마치 귀신과 같아
분명히 비범한 무공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송불군은 흰 천을 도로 놓기도 전에
등뒤로부터 차가운 냉기가 밀려옴을 느꼈다.
위기일발의 찰나,
송불군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띠지 않고 손을 뒤로 돌려 내밀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그의 손에 있었는지 연검(軟劍)이 들려 있었다.
은광이 번쩍 하더니
부채꼴 형의 검화가 뒤에서 암습을 가해 오는 그림자를 향해 찔러갔다.
암산을 가하려던 인영(人影)은 뜻밖의 반격에 나직이 신음소리를 토하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엇! 정말 놀라운 솜씨군."
그는 아마 상대가 이처럼 놀라운 솜씨를 지니고 있을 줄을
생각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상대는 허리춤의 허리띠가 연검임을 꿈에도 몰랐으므로 기겁을 해서 후퇴했다.
덮쳐오는 동작도 번개처럼 빨랐지만
후퇴하는 동작도 더욱 쾌속하기 짝이 없어 그의 일진일퇴 (一進一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송불군은 상대가 물러서자 급히 연검을 거두며 뒤로 돌아섰다.
알고 보니 방금 등뒤에서 기습을 가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신선루의 우복산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 계단에는 낮에 송불군에게 호통을 치던 문가가 서 있었다
. 문가는 송불군을 알아보자 놀란 빛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질렀다.
"이제 보니 바로 너였구나!"
송불군은 두 사람을 쓸어보며 얼음장처럼 차갑게 냉소를 쳤다.
"그렇다. 나다!"
우복산은 그를 뚫어지게 쏘아보더니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과연 뛰어난 검법이구나.
유검쾌참(柔劍快斬), 회응사비(廻應斜飛)는
장안의 쾌검장(快劍莊)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렇게 쾌속할 리가 없다.
쾌검장의 검초는 이 우복산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 일 초를 피해내지 못하지. 하하하..."
우복산은 한바탕 공허하게 웃어젖히고 나서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젊은이, 자네가 혹시 송공자가 아닌가?"
송불군을 치켜 올리고
또 자기도 과찬하는 그의 말재주는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송불군은 그의 말솜씨에 우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대방이 무공만 비범할 뿐 아니라
단 일 초에 자기의 출신 내력을 간파해 내니
그가 예사 범인(凡人)이 아님을 느꼈다.
그는 상대를 경계하며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송불군이오. 당신의 눈은 과연 날카롭군요."
"핫하하...송공자, 그대는 어찌 정정당당하게 노부를 찾아와
노부가 친히 영접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공인(工人)으로 가장하여 반나절 동안이나 석회칠을 하다니,
너무 자신의 신분을 모독했다고 생각지 않는가?"
송불군은 빙긋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황야에 새 무덤이 매일같이 늘어가는데
송불군(宋不群)이 어찌 타계의 원혼(怨魂)이 되겠소이까?
또 당신의 신분을 알기 위해 이처럼 변장한 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이오?"
우복산은 횐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건 매우 이상한 일이군.
듣자하니 쾌검장 사람은 강호에서 남의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는데
송공자는 어찌해서 우리 신선루의 일에 간섭을 하는가?"
"나는 간섭하려는 뜻에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단지 흥미를 느꼈을 따름이오."
"무슨 흥미인가?"
"세상에서 개를 잡는 백정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람을 죽여 고기를 판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소.
당신은 무고한 사람을 죽여 천리(天理)를 어겼다고 생각지 않소?"
우복산은 계속 백발 수염을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었다.
"송공자도 내 일에 몹시 흥미를 가지고 있구만..."
"당신의 거동은 무림인이면 누구나 두려움을 금치 못하는데
내가 찾아보지 않는다면 헛된 삶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소."
우복산은 돌연 지하실이 떠나갈 듯이 쩌렁쩌렁 웃고 나서 말을 받았다.
"송공자는 잘못 알고 있네.
왜냐하면 노부는 재물을 탐내는 사람도 아닐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을 죽이는 취미도 아예 없기 때문일세."
송불군은 돌연 검은 눈썹을 번쩍 치켜올렸다.
"흥! 새 무덤이 날로 늘어나는데도 당신은 시치미를 뗄 셈이란 말인가요?"
"무엇을 시치미를 뗀단 말이지?"
"무덤 속의 시체를 당신이 죽이지 않았단 말이오?"
"물론 죽였지.
그러나 그들은 송공자와 같이 나의 일에 간섭하려 들기 때문에
부득이 처치했을 뿐 절대로 노부가 원한 건 아니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이니
노부가 자청해서 목을 내밀고 죽여 달라고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송불군은 탁자 위 횐 천을 씌워 놓은 시체를 힐끗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줏어대는군.
그럼 저 탁자 위의 사람 몸뚱아리와
문 앞에 보란 듯이 걸어 놓은 현판의 글귀에 대해
당신이 뭐라고 변명하는지 두고 보겠소.
설마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 테지요?"
우복산은 음침하게 웃고는 딱 잘라 말한다.
"그건 비밀이다."
"흥! 미안하지만 나는 바로 그 비밀을 알려고 이곳에 온 것이오."
우복산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으나 여전히 침착했다.
강호에서의 노련한 고수의 면목을 여실히 드러냈다.
"노부가 한 달 동안 살인을 하면서도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았는데
드디어 젊은이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군.
이쯤 되면 내일부터 나도 이 영업을 집어치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네,
아무튼 공자, 이 비밀을 말해 주겠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말이다.
헛허허..."
"알았소. 소생은 귀를 기울여 경청하겠소."
우복산은 웃음을 머금고 손으로 탁자 위 시체를 가리켰다.
"송공자, 그대는 우선 저 시체를 만져보고 기분이 어떤가를 말해주게.
좀 끔찍스럽기는 하지만... 하하...
그러면 모든 비밀이 저절로 풀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좀 부드럽게 말을 계속할 수 있을 걸세."
송불군은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탁자 곁으로 다가서서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흰 천 속의 시체를 만져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어리등절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도 시체가 물렁물렁한 게 사람 같지가 않았다.
"엇! 이건 시체가 아니잖소?"
우복산은 지하실이 떠나갈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공자, 이제야 알았으니 다행일세.
그렇소. 그건 사람의 시체가 아니라 사실은 밀가루로 만든 것이네."
송불군은 의혹에 가득찬 얼굴로 주위를 살펴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세상에 위선자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위악자(爲惡者)가 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해서 무림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이오?"
"노부가 고의로 헛소문을 퍼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저의가 무엇이오?"
"송공자, 나는 내가 찾는 사람을 이곳으로 유인해 오려고
이같은 위악자의 행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복산은 마귀가 울부짖듯 괴이하게 웃었다.
"흐흐흐... 그것은 송불군 바로 자네다."
송불군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어리둥절해 했다.
"나라구요?"
"하하하...그렇다네.
장안 쾌검장은 삼 개월 전에 갑자기 폐허로 변해버렸다.
또 장내의 모든 사람들 역시 실종되었지
. 물론 송공자도 말이다.
그런데 노부가 어찌 이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
귀하신 송공자를 모셔올 수 있었겠는가?"
송불군은 내심 놀랐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보잘것 없는 나를 찾으려고 이렇게 많은 경비를 들이다니
실로 이해할 수 없소이다.
또 중인들에게 많은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것도 불사했으니
당신의 손실이 너무 크군요."
"그래도 내게는 그것이 값어치가 있지. 암, 있고 말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노부는 사실 신선루를 찾아드는 강호의 인물들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흐흐... 큰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강호에서는 아직까지 노부의 십 초 이상을 받아낼 적수는 없다."
"핫하하하... 당신의 말 속에 송불군도 포함되어 있겠군.
그럼 나의 연검으로 귀하의 가르침을 청하겠소."
우복산은 급히 뒤로 물러서며 연신 손을 저었다.
"아... 아니네. 송공자, 자네 생각은 잘못이네.
만약 노부가 공자와 싸움을 할 생각이라면
노부가 이치럼 모든 심혈을 기울여
자네를 유인해 올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본론을 꺼내 보시오."
"하지만 그전에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그건 무슨 일이오?"
"쾌검장은 무림에서 위명이 당당한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모두 종적을 감추어 버렸는가?"
송불군은 눈썹을 찌푸꼴고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건 아버님의 명령이었으므로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오."
"무슨 명령인가?"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소."
"그럼 영존께서 지금 어디 계신가?"
송불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생은 지금 그분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오."
우복산은 깜짝 놀란다.
쾌검장의 송장주가 쾌검장을 해산시킨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이제와서 그가 실종되었다는 말에 크게 놀란 빛을 간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물었다.
"정말 영존께서 실종되었다는 말인가?"
"그렇소. 주인장,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에게 물어 보아야겠소."
"아, 그러면 사양하지 말고 물어 보게."
"귀하의 날카로운 눈빛, 거만한 말투,
그리고 풍부한 견문으로 보건대 귀하는 결코 오합지졸이 아닌 것 같구려."
"칭찬을 들으니 기쁘기 짝이 없군.
잠깐, 밖에 또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나 보군."
이어 아직 계단 위에 서 있는 문가를 돌아보며 차가운 어조로 명령했다.
"문량(聞亮), 너는 당장 올라가서 우선 불을 밝히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친구들에게
살신(殺身)의 화를 입기 전에 빨리 물러가라고 일러라."
"예,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에게 내일부터 우리 신선루는 영업하지 않으니
더 이상 이곳을 찾지 말라고 전해라."
문량은 길게 응답을 하더니 곧 밖으로 솟구쳐 나갔다.
우복산은 그제서야 송불군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공자를 서 있게 하는 것은 손넘을 대접하는 예의가 아니지
. 공자, 우리도 위로 올라가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 어떤가?"
"좋소. 그럼 당신이 먼저 올라가시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주방에는 등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다.
문량은 누각에서 침입자를 향해 우복산의 말을 전달하느라고
아직 실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송불군은 대나무 의자에 걸터앉으며 우복산을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주인장,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소?"
"알고 있네. 자네는 내가 누군지 정체를 알고 싶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소이다."
"자네는 이런 두 구절의 가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즉, 구름 속에 선불영 (仙佛影)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는 신선부(神仙府)가 있도다."
"아, 그럼 당신이 신선부의..."
"그렇다."
송불군의 안색이 순간 확 변했다.
"음혼불산 마귀곡(陰魂不散魔鬼谷),
장생불로 신선부(長生不老神仙府)
이 두 글귀에서 말하는 마귀곡, 신선부는
무림에서 단지 전설로만 전해 오는 신비한 곳인데
정말 그런 곳이 실존한다니
소생은 믿을 수가 없구려."
우복산은 신비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어찌 두 구절의 가요가 무림에 전해졌겠는가?"
송불군은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냉랭하게 물었다.
"당신이 신선부의 사람이 틀림없다면
신선부와 나와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았소?"
"물론 그것이 또 한 가지의 비밀이다.
자네 정말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소."
우복산은 갑자기 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곧 말을 이었다.
"노부는 우리 신선부 부군(府君)의 지엄한 엄명을 받았네.
다시 말해서 부군께서는 자네더러 어떤 장소로 가서
한 가지 귀한 물건을 찾아 오라고 할 생각이지."
"어디서 무슨 물건을 찾아 온단 말이오?"
"노부가 답변을 하기 전
자네가 먼저 승낙할 것인지의 여부를 고려해 보는 게 좋을걸.
노부가 일단 장소와 물건을 얘기해 버리면
자네가 죽기 전에는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일세.
대신 우리 부군께서는 자네에게 상당한 상을 내리실 거네."
"그런 일이라면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을 텐데
당신네들은 무엇 때문에 굳이 나를 찾는 것이오?"
"물론 젊은이 말고도 그 일을 할 사람은 많아.
하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송불군은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쾌히 승낙했다.
"좋소, 하겠소. 그러나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나는 하지 않겠소."
우복산은 벌써 일이 다 된 것처럼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자네 자유이니 마음대로 하게.
그럼 잘 들어보게. 부군께선 자네더러 마귀곡으로 가서
기회를 틈타 곡주(谷主)가 은밀하게 감춘 물건을 훔쳐 오라는 걸세."
송불군은 상대의 물건을 훔쳐오라는 우복산의 말에 어리등절해 했다.
그것도 마귀곡에서...
"도대체 어떤 물건을 훔펴 오라는 거요?"
"반쪽의 화씨벽(和氏壁)..."
송불군은 내심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 바로 그 화씨벽이 있기 때문이었다.
화씨벽이란 무림의 진귀한 보물로서 오래 전부터 실종된 물건이었다.
그것은 두 개의 화씨벽으로 나뉘어져 한 짝을 잃은 것인데
그 두 짝을 얻는 사람은 무공의 비급(秘及)을 얻어
천하무적(天下無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불군도 마지막 그 반쪽만 구입하는 날이면
무림의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신선부에서
바로그 화씨벽을 구하고 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우복산의 말을 듣는 순간
3개월 전에 생겼던 괴변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작년에 부친께서 강호를 유람하고 돌아온 후
그를 밀실로 불러 전에 없이 긴장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내가 밖에 나가서
뜻밖에도 희대의 진귀인 반쪽의 화씨벽을 얻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머지 반쪽의 화씨벽을 찾지 않는 한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 두 개를 찾아야만 일종의 고금(古今) 절학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머지 한 쪽을 찾아 절학을 연마하기만 한다면
천하무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쾌검장도 당금의 팔대문파(八代門派)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송장주는 반쪽 화씨벽을 맡긴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느날 돌연 강호로 나가서 사라졌다.
이것이 송불군으로서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그 후 삼 개월 되던 어느날 저녁 무렵
돌연 아버지와 함께 떠난 충복(忠僕) 송의(宋義)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송불군의 앞에 나타났다.
손에는 한 쪽의 흰 비단천이 들려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부친이 그에게 보낸 친필이 뚜렷하게 씌어 있었다.
화씨벽
화씨벽
빨리 깊이 숨긴 후
노출시키지 말지어다.
장중의 남녀노소를 해산하고
너는 나머지 화씨벽을 찾아내어
이 아비를 찾아오너라.
송불관은 아버지의 편지가 너무나 간단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절박한 사연만 적어 보냈을까?
하는 의혹만으로 며칠을 보냈지만 편지에 담긴 비밀은 캐내지 못했다.
단지 나머지 화씨벽을 찾아 합벽(合壁)한 다음
아버지를 찾아오라는 사연만이 귓속에 쟁쟁히 파고 들었다.
드디어 송불군은 눈물을 머금고 쾌검장의 남녀노소를 모두 해산시켰다.
이어 한 분 모친과 두 누님을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킨 다음
천하를 떠돌며 부친의 행방을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다른 반쪽의 화씨벽을 찾는데도 온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결코 보물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합벽을 하는 것만이 부자(父子)가 상봉할 수 있다는 부친의 말이
유언(遺言)처럼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강호를 유랑한지 어언 석달이 흘렀건만
화씨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식도 또 단서도 잡지 못했다.
강호에서는 쾌검장이 별안간 해산된 일에 의논이 분분했지
어찌된 일인지 송노장주(未老莊主) 의 실종과 화씨벽에 대해서
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언급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오늘 이곳에 와서 화씨벽을 찾으라는 요청을 받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가 이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송공자, 공자...."
하며 거듭 부르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번쩍 차려보니
우복산이 눈에서 신광을 뿜으며 자기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으음... 자네는 지금 무언가에 넋을 잃은 것 같군."
송불군은 흐려진 심기를 바로 잡고 다시 침착한 자세로 되돌아갔다.
"무림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귀곡과 신선부 두 장소를 싸고
신비스런 전설이 내려왔는데
소생이 지금 신선부의 신비인(神秘人)을 직접 맞이하고
또 의혹이 무궁무진한 마귀곡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확실히 기이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우복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자네는 승낙하는 건가?"
"아직 아닙니다.
나는 우선 신선부의 부군이 내게 줄 대가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결정하겠소."
"음... 노부는 부군의 분부에 따라 다시 말하겠는데
대가는 자네가 제의하게."
"주인장! 당신은 너무 선심을 쓰는 체하지 말기 바라오
. 왜냐하면 신선부에는 신선부의 규칙이 있고,
또 쾌검장이 강호에 존립해 있는 이상 쾌검장의 규칙이 있소."
송불군은 잠깐 말을 중단했다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신도 내가 말하기 전에 거절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한 후에는 거절할 수 없을 것이오."
그는 강호의 위명이나 무공 등 어느모로 보나
쾌검장은 절대 신선부와 비교도 되지 않음을 잘 안다.
하지만 호기가 넘치는 약관의 청년으로서 상대에게 고개 를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방금 한 말은 상대방에게 피차 동등한 입장에서 타협하는 것이지
결코 신선부의 위명에 눌려 타협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담겨 있었다.
우복산은 그의 심중을 십분 알아차린 듯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오핫하하... 들리는 바에 의하면 송공자는 매우 교만하다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군."
송불군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당신은 승낙하는 거요?"
"그렇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노부는 모두 승낙하겠다."
"잠깐! 나는 먼저 당돌함을 무릅쓰고 당신에게 한 가지 묻겠소
. 당신은 신선루에서 어떤 지위에 있소."
"노부는 부중(府中)의 외무총관(外務總管)이다."
"외무총관으로 신선부를 대표할 수 있겠소?"
우복산은 돌연 안색이 변하더니 노성을 질렀다.
"송공자, 그대는 노부를 너무 깔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
"흥! 깔부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롭다고 노하시오?
우리는 지금 중요한 타협을 하고 있소.
피차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지 않겠소."
"옳은 말이다.
노부는 다른 일은 몰라도 이 일만은 부군의 분부를 받들고 행사하는 것이니
물론 어떠한 일도 처리할 권한이 있다고 믿는다."
송불군은 눈썹을 찌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는 보물이 탐나지 않소.
단지 당신네들이 소생을 도와서 가친의 행방을찾아
안전하게 호송해 준다면 그걸로 끝나오."
"좋다 그런 조그만 일이라면 노부가 신선부를 대표해서 승낙하겠다."
대답이 시원스럽게 나왔다.
계 속
첫댓글 잘볼께요^^
즐감요~
잘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ㅎㅎ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하구 갑니다
감사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1
즐감요~~~
즐독
즐독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요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요
ㅈㄷㄳ
좋아좋아
즐독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