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국립생태원장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에서 자녀 양육이 끝나는 이른바‘번식기 50년’을 인생의 일모작,이후 번식후기를 인생의 이모작으로 구분했다. 이모작에 해당하는 인생은 잉여인생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에는 은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새로운 인생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모작이 인생에 있어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땀 흘린 시기라면 이모작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라고 힘을 주었다.
이는 ‘노화는 죽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 이라는 세계적인 장수 과학자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와 맥을 같이하는 듯 보인다.
망구望九에 접어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후진 음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울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쓰레기차에 몸을 그대로 맡길 것인가? 아니면 인생 삼모작의 씨를 뿌릴 것인가. 이 글은 생명이 담겨 있나니 지금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은 상수上壽는 거뜬히 넘긴다고 나는 장담한다. 프로스트의 시 ‘가보지 않는 길’처럼 오늘을 위해 남겨 놓았던 그 길을 이제 나서자. 무언가 목표가 없으면 삶이 지루하고 그건 우리를 좀먹으며 파괴할 수 있다. 항상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유의미하며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르다.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노동자 시인의 탄생을 알렸던 박노해 시인은 그의 저서 ‘길’의 책 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마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것을 나는 안다. K는 뭐니, 뭐니 해도 돈 버는 재미가 최고라면서 공인중개사자격증을 따 부동산 임대업을 계획하고 있다. H는 10년 전에 배울 기회를 놓쳤다면서 아코디언을 배워 증손자들에게 일인 일 악기를 다룰 수 있게 교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J는 80세 박선민 할머니가 작년에 대구 수성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한 것에 영향을 받은 탓인가 가리 늦게 대학수능시험을 준비 중이다. B는 생뚱맞게 외국어를 익혀 그 나라로 단독 여행을 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를 택하느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O는 어떻게든 돈을 아껴 10억을 채워 사회에 기부하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내 기를 팍팍 죽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고 했다. 아직도 갈길 몰라 묻고 또 묻는 친구가 있는가. 게으름을 피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방탄소년단 진이 말하듯 잠시 멈추어 마음을 정하자. 그런 후 신발 끈 야무지게 조여 매고 따라나서자. 늦은 것을 두려워 말고 서 있는 것을 두려워 하자. 어, 어, 하다 날 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이란 미지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져있다. 요즘 사람들은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라면서 현재를 즐기는 추세지만 우리 세대들은 미래에 방점을 두도록 설계돼있어 미래를 바라보아야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은 옛날 옛적 이바구고, 이제 ‘인생은 80부터” 다. 어렸을 적에 늙은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늙어도 사는 재미가 있을까 했었는데 살아보니 어떤가? 새록새록 재미있는 구석이 더 많지 않는가? 인생 망구望九라도 꿈이 있으면 언제나 청춘이다!
나는 백수가 되는 어느 날 있을, 출판기념회를 위하여 하루 3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다 삶이 날 배신하면? 그땐, 친구야 말해주라. 그래도, 씨를 뿌리다 갔다고…. 삶이란 다 그런 거 아닌가!
나는 요사이 머리맡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두고 틈틈이 읽는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84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로 시작하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오랜만에 나간 고기잡이에서 거대한 청새치와 광활한 바다 한 가운데서 혼자 사흘 낯 밤을 싸우고 부대끼다 스스로를 향해 다독인다.
“차분하게 힘을 내, 이 늙은이야!Be calm and strong old man”
산티아고는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면서 상어 떼와도 사투를 벌린다. 그렇다. 우리도 언젠가 파멸하겠지만 패배하지는 말자! 산티아고는 뼈만 남은 청새치 잔해와 더불어 귀항한 뒤 말없이 잠이 들면서 꿈을 꾼다. 늘 꿨던 사자 꿈을 다시 꾼다. 우리도 꿈을 꾸자. 그것도 신성한 기운을 지닌 이중섭의
‘흰 소’ 꿈을 꿔보자. 튀어나온 등과 휘몰아치는 꼬리의 힘,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선 뒷다리로 작년처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어려운 현실을 훌훌 털어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아 마음의 위안과 새 기운을 충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우직한 소가 만리 간다. 牛步萬里’는 말처럼 소처럼 그저 묵묵히 걸어 가세나. 가다가 지치면 노변에 앉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너털웃음 껄껄 웃으며 터키 시인 나짐 하크메트가의 시 ‘진정한 여행’을 읊조려보자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 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는 날들,
….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는가.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어금니를 물고 스위스의 조각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앞장서 걷고 있다. 누군가 ‘나이 듦은 무르익은 샴페인처럼 절정으로 향해 가는 길’ 이라 했던가.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 삶은 보기에 따라 지긋지긋하면서도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이기에 인생은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희망을 안고 멋진 발자국을 남기자. 잘 늙으면 청춘보다 아름답다 하지 않는가. 해거름에 생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포착하려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야, 하긴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이룬 것이지만, 이제 또 제3의 농사를 지어보자.
아인슈타인도 “인생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으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친구 안효민이 업어주고 싶을 정도로 멋진 것은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의 넬슨 제독도 전투가 끝나기 전 이순신과 같이 전사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일찍이 박경리가 말했었지.
‘산다는 것은 참 아름답고 애잔하다’고….
첫댓글 친구야! 공감이가는 주옥 같은 글 고맙게 잘 읽었네.
그리고 자네 백세 출반기념일에 꼭 만나서 축하하세.
물어 무삼하리요
식순 첫번째가 주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니까...
마음이 청춘이면 언제나 청춘이다
내 나이 구십이 멀지 않았는데 그때가 되면 인생은 90부터 라는 말이 새로 나올지도 모른다
노인이 시장에서 팔씨름을 하는데 24시간이 되어도 끝이나지 않아서 심판이 밥먹으러 가기 위해 대신 심판을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와 노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떤 농사>
노인들이 읽을 교과서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