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10.연중 제23주간 화요일 1코린6,1-11 루카6,12-19
자녀다운 삶, 제자다운 삶, 사도다운 삶
“기도가 답이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칠줄 모르는 샘솟는 열정, 피곤하거나 지친 모습이 전혀 없는 영원한 청춘,
교황님의 활약이 참으로 눈부십니다.
어제는 동티모로 국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믿음의 토착화를 강조하신 연설 한 대목이 참 신선했습니다.
“날마다 자기들의 믿음을 살아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문화가 되도록 하십시오.”
오늘은 주로 기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순교자성월 10월, 묵주기도성월 10월, 위령성월 11월 가을은 명실공히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
수확의 계절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이, 생명줄이 기도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들의 삶은 살아있는 듯 하나 실상은 죽은 삶입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나는 수도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수도자를 하느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수도자뿐 아니라 참으로 믿는 사람
모두에 대한 정의입니다.
자녀다운 삶에, 제자다운 삶에, 사도다운 삶에 기도가 답입니다.
여전히 날마다 만세칠창 기도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합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알렐루야” 하느님 찬미로 시작하여 “아멘” 하느님 감사로 끝나는 하느님 중심의 하루요 일생의 삶이라면
얼마나 멋진 삶이겠는지요!
하느님 창공을 자유로이 날게 하는 영혼의 양날개가 찬미와 감사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입니다.
나중에 남는 얼굴도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기도의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기도와 회개, 깨어있는 삶은 늘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오르막길은 어렵지만 끈기로 성취할 수 있고, 내리막길은 쉽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다산>
“선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듯 어렵고, 악을 따르기는 담이 무너지듯 순간이다.”<다산>
젊을 때나 노년이나 한결같은 기도의 삶이 제일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는’,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는’ 지혜도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수도원 입회후 사십년이 지났어도, 하루하루 날마다 기도해 왔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배우고 공부해야 할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삶만 봐도 언제나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기도가 자리잡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음도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복음의 배치도 의미심장합니다.
어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중 열두 사도를 뽑아
사도공동체를 만드십니다.
개인의 한계를 절감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이제 명실공히 ‘안으로는 제자로’, ‘밖으로는 사도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은 열두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샘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온통 집중하셨을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께 외딴곳에서 아버지와 일치의 기도는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열두 사도들은 그대로 기도의 열매이자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열두 사도들은 자녀다운 삶에, 제자다운 삶에, 사도다운 삶에 더욱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의 면면이 다양합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제자들이자 사도들의 한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예수님 중심의 다양성의 일치라는 공동체 일치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서로 좋아서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바라보는 중심인 주님께 맞춰감으로 이뤄지는 다양성의 일치요,
이것은 우리 수도공동생활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이어 열두 사도를 뽑으신 주님은 함께 내려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고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 모두를 낫게 하시니 그대로 기도의 힘이자
하느님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예수님 중심으로 커다란 치유 공동체를 형성된 모습이 흡사 미사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주목되는 대목이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반복되는 악순환의 현실이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다시피 코린토교회 신자들중 일부는
다양한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고 있음을 봅니다.
교우들간의 송사문제에 이어 불의한 자들,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 우상숭배자와 간음하는 자들등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자들, 즉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음을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자업자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기도의 삶을 잊음으로 자초한 결과가 더러운 영들에 시달리는 삶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질서있는 삶을 살게 하시고
온갖 더러운 영들을 퇴치해 주시어 영육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미사은총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6,11).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