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수도권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진학담당을 하고 있는
고교 동창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요즘 교사로서 느끼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말을 하더군요.
그 중에 하나가 입시지도인데,
요즘 대학입시가 워낙 복잡해서 뭐가 뭔지도 하나도 모르겠고,
본인이 일하고 있는 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보니
교장이 아예 학교에서 교사들 몇 명을 뽑아 진학자료집을 작성하랬답니다.
진학자료집을 만들기 위해 여러 대학 설명회도 다녀보고
대학의 입학처 직원들도 직접 만나서 정보를 얻고
또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간 아이들을 지도할 때 학교 내신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를 해왔는데,
실제 입시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보니 사실상 3년간의 학교 내신 성적이
입시 변별력에 거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학교 내신이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눠져 있는데,
보통 5등급 정도가 아이들이 받는 점수가 100점 만점에 99점 정도고
좀 심한 학교는 100점 만점에 99.6점이라고 하더군요.
즉, 3년간 죽어라고 공부한 내신이 실제 대입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신이 좋지 않은 특목고 아이들이 명문대를 휩쓰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죠.)
보통 입시요강에는 떡하니 ‘학생부 전형’, ‘학생부 비중 70%’라고 적어놓고
뒤로는 99%를 기본점수로 줘서 내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대신 대부분의 수시 전형이 인문교양이나 전공관련 면접,
또는 논술을 통해 신입생을 뽑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교 차원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아이들을 지도해왔으니
그간 대학 진학률이 떨어졌던 건 교사들 책임이 가장 컷던 것이죠.
특히 작년에는 수능에서 거의 만점을 받은 학교의 기대주가
서울, 수도권 의대에 모두 탈락을 하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네요.
수능 성적이 워낙 좋아서 정시로 밀면 서울대 의대도 가능할 줄 알았더니
웬걸, 수능 위주의 정시에서도 줄줄이 낙방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5명 정도의 교사들이 모여 자료를 취합하고 정리해보니
요즘 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어떻게 아이들 뽑는지가 보이더랍니다.
수시 전형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것 같아도
결국에는 서류와 면접, 그리고 논술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의 학교 방침과 너무 동떨어져있기에
자료집을 만들 때 어디까지 진실을 밝혀야 될지를 놓고
교사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게 되었다네요.
제 친구는 당장 아이들의 원망을 듣는 한이 있어도
진실을 100% 공개하고 지금이라고 내신 평가 방식과
대입 준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자료집 준비의 총책임자인 교사와 다른 몇 몇 교사들은
아이들이 진실을 알면 누가 학교 내신 공부를 하겠으며,
누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겠느냐?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면 무엇보다 내신과 수행평가를 통한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은 숨기고 각 학교에서 발표하는 공식 모집요강만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자료집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갈등이 생긴 것이지요.
결국에는 각 대학들의 실질 내신 반영비율 자료는 삭제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오는 수준의 모집요강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는 진학 지도 교사로서 진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진실을 얘기해 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학교라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 조직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조차도 조직(?)의 이익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참 개탄스럽더군요.
아마 세상 모든 분야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실만을 전하겠다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기자들도,
대중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은 대학 교수들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을 닫고 있어야 할 상황이 아마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늘 세상에 대한 진실만을 전한다고 알고 있었던 TV나 신문이
사실 소설을 쓰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대다수 대중들이 그들의 말을 진실로 믿고
오히려 기득권의 논리에 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모습들 볼 때,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결국 본인이 직접 공부하고 발로 뛰어서 알아보기 전에
다른 누군가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오늘 여러 경제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친구가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간단히 적어보았습니다.
첫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밖에서 떠도는 내용은 진실과 거리가 먼 내용들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그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포장되고 과장된것이 더 많지요. 옥석은 스스로가 가려 내고 생존하는길을 찾는게 바람직 하다고 봅니다 .농어촌 전형으로 서울대에 수능 200점으로도 간다고 하더라구요 ㅎ
참고로 친구중에 서울대 교수가 한 명있는데 올해부터는 서울대의 경우 83%를 뽑는 수시에서 아예 수능 자체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대신 철학, 역사 등 인문학 지식과 대학에서 배울 전공관련 질문을 위주로 할거라고 합니다. 요즘 대학 추세가 그렇답니다. 자녀들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흠.. 그렇군요...
학생들의 교육환경 입시환경이 우리가 학교다닐때인 20년전과 비교해 과연 발전하였는가를 생각하게되네요
역사,체육,음악,미술 과목을 비롯한 많은 과목들이 불필요하다고 사라지고 대신 국영수만 죽어라 시키며 생각과 교양을 가르켜주지 않으니 요즘 젊은이들 옳은게 뭔지를 헷갈리고 아빠,삼촌세대보다 더 쉽게 기득권을 수용하고 따라가려고하는듯해서요
우리땐 어른들을 꼰대들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세상좀 바꿔보자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일베 때문에 말이 많지요. 민주화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그 이유가 근현대사 부분이 기말고사 뒷 부분에 있어서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음악, 미술, 체육 안하는 것도 문제지만 있는 과목들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그게 더 문제인 듯 싶습니다. 참고로 저랑 제 집사람은 아이들 중학교 까지만 학교보내고 고등학교 때는 홈스쿨링 시키면서 책 읽히고 여행 시키기로 했습니다. 제 집사람도 학교에 있는데 학교 현실을 잘 알고 있다보니 쉽게 동의하더군요. 그냥 도서관 가서 책보는게 더 낫다고..
얼렁뚱땅 자식을 s대에 보내긴 했습니다만, 지나고보니 기적처럼 여겨지더군요.
입시가 엄청 복잡해보여도 알고보면 간단하다는 걸 최근에 알았네요.
friend님은 일단 성공하셨네요!! 언론에서는 수시 전형이 수천개라고 하지만 사실 서류와 면접이 거의 대세지요.
다만 면접 질문이 철학, 역사, 문학 등 기초 인문학 부터 시사 문제까지 매우 심도있게 다루어지기 때문에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합격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글 엄마들 카페에 퍼가도 되나요?ㅎㅎ
퍼가시는 건 문제 없는데 아마 많은 분들의 반발을 살껄요??
입시, 특히 내신에 대한 엄마들의 믿음은 거의 신앙과 같아서 대부분 못 받아들일겁니다..
우리아이는 아직 대학입시는 멀었지만.. 아이키우면서 유념할께요. 감사해요.
사회시스템이 음서제로 거의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봐도 되는 건지요?
정확하게 보셨네요..
작년에 서울의 한 명문대 교수님 한 분과 식사를 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특목고를 우대하냐고 물었더니 펄쩍 뛰시더군요.
아예 블라인드 면접을 보기 때문에 특목고 아이들인지 아닌지 알수도 없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뽑아놓으면 80%가 강남, 특목고 아이들이라고 하시더군요.
면접 수준이 높기 때문에 따로 준비하지 않은 아이들은 통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좋은정보 고맙습니다. 퍼가도 되겠습니까?
퍼가시는 건 문제 없는데 아마 많은 분들의 반발을 살껄요??
입시, 특히 내신에 대한 엄마들의 믿음은 거의 신앙과 같아서 대부분 못 받아들일겁니다..
스크랩해도 될까요? 수험생 학부모라서 애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 조카도 학교 말만 믿고 수시 갈려고 내신공부만 죽어라고 했는데, 고 2때 목표로한 성균관대학교 입시 설명회 갔다왔다 삼일간 이불 뒤집어 쓰고 울었답니다. 위 글 내용처럼 내신 교과 실질 반영비율이 미미했던 겁니다. 당시 설명회를 진행하던 교수님도 아예 대놓고 말씀하시길 수시에서 내신은 의미없으니 스펙과 면접, 논술 준비가 잘 된 학생들은 내신 신경쓰지 말고 지원하라고 했다네요. 제 조카는 내신 빼고 따로 준비한게 없어서 결국 대입 실패하고 재수해서 정시로 집에서 머나먼 학교로 갔어요.
씁쓸한 현실이네요.
다수를 위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억지로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양심의 편에 서다가 돌 맞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네요. ^^;;
제 아는 분 아이도 서울대 면접때문에 일주일 몇백만원 논술 면접 과외를 따로 받던데요.
뭐 그렇게 안하면 안된다나...
에헤라.. 난 그냥 아들내미 농사짓게 잘 설득해야징^^
감사합니다. 스크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