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경전과 어록(1) 마음은 어떻게 써야 하는 가르침이 불교이다.
제2회 경전과 어록(2) 경전이 다양한 것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설했기 때문이다.
선 : 글자 중심에서 언어중심으로 바뀐 것 부처님의 설법은(아난이묻고 답하는-끝장토론) 언어 불교라면 후대에는 교학의 글자 중심의 불교가 되었다.
상대적 자유-속가의 자유 절대적 자유-반야 지혜의 힘
인연이 맺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야 불법이다. 남을 위해서 불법을 공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수능엄경-조사선의
제3회 임제선사의 깨달음
제4회 불법의 대의 초기불교-중생심-고의 해탈 중국불교-생사일대사 해결
악도 선도 생각치 말라.
一味, 一如 = 不二
중생심은 법이 없어서 고물줄 측정이고 척도이니 이것이 업을 만들고 고통을 만들고 윤회를 하게 되니 법에 의한 수행이아니다. 바닷물에는 백천 강물이 모인다.
컴터는 사용했을 때 컴터이지 그냥두면 쇠덩어리 뿐이다. 불법을 많이 알아도 실행하지 않으면 보살도 수행자도 아니다.
무지와 무명때문에 마음에 병이 생기니 불법의 지혜를 갖추고 나면 이병을 모두 알게 된다. 다양한 지혜가 구족되면 중생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제5회 임제의 설법(1) 神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神에 얘기라고 하면 그것은 神의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얘기인 것이다.
불교는 자각의 종교이다.
구제 : 길을 안내하고 환자에게 진단하여 처방을 내릴 뿐이다. 나머지는 환자의 역할이고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 자의 몫이다. 구제의 본질을 불안 고통 근심 걱정을 구제하여 주어야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의존형의 종교는 神이라는 이름의 종교로서 한 번도 살려낸 길은 없다 오히려 전쟁만 했을 뿐이다. 독자적인 힘을 자립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줄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진정한 자비인 것이다.
수학의 공식을 줄 뿐이지 그것이 맞다 그르다는 본인이 확인 해야한다
여래-불심의 지혜작용=禪
제6회 강사스님과의 대화 구도는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근본을 벗어났기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불법이며,
서양은 사막이라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서 만들어진 민족이고 동양은 농사 짓는 것들의 고향에 정착하는 것이라 안으로 살피는 종교다.
허공에 못을 박지 말라 거친 풀 밭에 아직 호미질도 하지 않았구나
제7회 천수천안과 정안 개구즉찰 - 언어문자 사량분별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은 방편이지 달이 아니다. 일대사의 생명활동을 언어문자를 떠나 할로 보여준 것이다.
제8회 무위진인 비로자나부처님-노사나부처님-석가모니부처님이 다 본래진면목
몸과 마음의 의식을 초월한 경계이어야 眞人이다.
무심과 평상의 지혜 작용일 때 道라고 할 수 있다.
人 : 남자 여자의 구분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하나인데 서양의 언어는 남자 여자를 하나로 묶어낸 언어는 없다.
眞人:중생의 차별 경지를 못하는 경지. 인간의 사상, 불교나 선도 없고 無依道人->어디에도 의지 하지 않으려는 사람. 無依道人에도 벗어나야한다 의식의 경계 대상은 갖지 말고 추월하여야하니 권시궐이라 한 것이다. 강렬한 부정으로 절대적 긍적으로가기 위한 자비심이다.
제9회 빈주구 임제 의 빈주구 (賓主句) 의 할은 주객 미분전의 할이다, 미분전는 주객이 나누기전 의 일이다, 賓 主
여래는 자신의 진여법성의 지혜 작용이다. 지혜로운 생활 인격적인 삶을 살아 가는 -- 그럴 때 여래를 본다.
불법의 대의는 여래법신의 지혜작용이다.
방편의 도구(주장자,부채,,)는 방편의 지혜이다.
독자적인 것, 빌려주고 물려주는 교육은 제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독자적인 교육을 주어야 한다.
제10회 劍刃上 의 事 어느 장소에 있는가, 어느 시기에 있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의식의 대상 경계를 초월할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젖가락이라는 물질을 생각하지 않기에 밥을 잘 먹을 수 있지만 외국인이 젖가락질을 잘 못하니 밥맛도 밥도 잘 먹지 못한다.
본래 , 근원, 원점, 본분으로 돌아가라. 법에도 속박되지 말고
제11회 임제의 삼구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식도 없이 보살행을 하는 모습으로 교화하는 것. 빈 공간에 난초를 처음 가져오면 냄새를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난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이니 훈습이다.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을 동사습이라하고, 십자가두라한다
일구안에 삼구가 포함되있으니 일구가 핵심이다, 일현문에 반드시 삼요가 가춰저있다 삼요는 게정혜 삼학을 말한다.
지금 = 三世 - 시간 여기 = 十方 - 공간 ..법계法界라한다
빈주賓主 - 상대적 차별분별의 경지 제11회 임제의 삼구 청정한 마음이 도량이다.
1.언어로 이해 2.내용-상상,정신 3.실처누행방법 내것으로만들어 방법과 방향 4.자우ㅠ자재하게 보살행으로 회향한다
..불교는 종교인 동시에 자신의 생활을 지혜와 인격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일구안에 삼구가 포함되있으니 일구가 핵심이다, 일현문에 반드시 삼요가 가춰저있다 삼요는 게정헤 삼학을 말한다,
제12회 임제의 교화방편(사료관).
제13회 진정견해 진정한 해탈 - 마음의 자유를 획득 하는 것
마음쓰는 공부가 불법이다.
사람에 의거하지말고 佛法에 의지하라.
제14회 진정견해의 안목 心病 空病 禪病 ..시절인연 거부, 초월은 정법이 아니다.
지식(정보)->언어(이미지, 모습相-이름名) ->본성本性 ->참선공부확실히 자기 것으로 박히게 한다 습성화 되는 작용이 되게한다.
누굴 위해서의 목적의식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니 불법이 아니다. 남을 위해 보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15회 조불이란 무엇인가 구할려고 하는 것은 집착을 하는 것이다.
부처는 무엇인가..?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
지금 보고 듣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자가 여래이다. 보고 듣는 작용의 주체가 지혜작용.
본심으로 번뇌 망념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무사인이라 하는것이다
미혹한 삶을 작용하는 것은 중생심이요 - 대상경계에 사로 잡힘 중생심에서 불심으로 지혜작용으로 본분사로 지금 삶을 사는것은 불심의 정법으로 사는것이다,
제16회 부처의 지혜작용 법성신 법성토 는 명지시 광영 이니라,법성신 법성토 는 이빚의 그림자인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불법을 자신의 지혜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여 지금 이자리에서 쓰는 것이 참선이다.
제17회 제불의 본원 진여자성 의 지헤작용 을 쓰는 겄이 제불의 본원이다,그렇게 되면 삶의모습이,(歸舍處) 도라가 쉴곳이다, 견성성불: 중생심의 차별분별심을 자각하고, 불심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
제18회 불법은 심법이다 시간 : 자연의 시간 -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의변화=생명의 시간, 생물이 죽고 실고 연결되는 것, 몸의 생명 활동 작용, --달력 시계
불교에서는 인식의 시간은 망념이다. ..지금과 여기에 있다고 하면 속박당하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고, 몸과 목숨도 의식하지 않는다. ..시간과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의 지혜 : 원력의 일, 시절 인연의 일(그때그때..)
-- 십지보살이나 성인까지도 노예와 같이 취급해버려라! 등각 묘각 까지도 감옥의 죄수와 같이 취급해버려라! 인식 지식 의식의 관념에서 벗어나 지금 이자리에서 본성의 지혜로 살아가야한다.
제19회 마음밖에서 구하지 마라 무상속에서 무상하기에 苦痛이 이울어진다 무상속에 법신의 지혜를 변화 되어 가면서 변화되지 않는 것.
정법과 불법의 수행을 하라(실참실구-본인이 직접 체험 참구하라) 바른길 - 여법한 길 그릇된 길 -
부모, 선악, 천지, 凡聖,,, ->차별의 경계에서 헤매는 것이다. 회광반조 - 빛이 어디에서 이루어 졌는가? 사물을 보는 것은 우리들 눈에 빛의 파장이 나가게 되어 있는데 오온에서는 감수작용(베다나)에 해당되고 빛은 자신의 마음에서 나왔고 눈은 비추는 작용이 있고 빛은 근원적인 각자의 마음에서 나왔다. 부모, 선악, 천지, 凡聖,,,이것은 인식의 근원에서 자신의 마음에서 나왔다.
무유정법 -방편과 시절인연의 법, 부처나 도가 있다고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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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망념인 차별상 착각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본인의 자각에 의해서 불법의 대의로 치료한다. 휼륭한 선지식의 지혜를 자기것으로 만드는 도둑이 선승이다. 찾고 있는 그 놈이 바로 그 놈이다.
실참실구=실지로 불심의 지혜로서 궁구하는 것
제20회 임제의 四照用 경계에 빼앗겨 있는가? 주관에 빼앗겨 있는가?
말에 의거하지 말고 뜻에 의거하고, 사람에 의거하지 말고 法에 의거하라.
모든 경전은 대화법으로 설해졌고 간혹 게송도 있고,,
중국불교 - 기지의 대화, 상대방의 영량보다 뛰어난 대화, 기지의 대화 機智 - 승부, 주객 선문답 - 구법의 정신, 구법의 대화, 아상 인상이 없는, 선문답은 승부를 가져서는 안된다 승부는 아상인상에 떨어진 선승이다.
연 꽃은 진흙속에서 피어난다. 이것이 보살행의 실천이다.
말 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는 선문답이 될 수 없다.
禪 : 지금, 여기에, 지혜로 작용하는 것, 자신의 일을 통해서 깨닭음을 실행하는 것, 지혜로운 삶을 작용하는 것, 지금 찰라찰라 지혜로 사는 것, 현실의 생명 활동을 지금 여기 삶이 실현 되는 것, 생명력이 없는 禪은 죽은 것이다
제21회 무사한 사람의 삶 무심 : 번뇌 망심이 없는 마음, 本心, 여래, 부처, 無心 = 無事人
法 = 물이흘러간다, 무심이 흘러간다, 위에서 아래로 단절되어 않고, 시절 인연에 맞추어서, 더러움이 깨끗해지고, 만물을 고르게 흘러가고, 여법하게,
부처는 무엇인가..? : 법당의 부처는 의식의 부처, 살아있는 부처는 모양과 형상이 없는 지금 여기에 진실된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 생명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불법의 지혜로운 생활과 보살도를 하는 것,
정법이 갖추어지질 않으면 - 중생심의 부처인가, 불심으로 작용하는 것이 부처인가를 알 수 없다.
삼학 : 계-몸으로 닦는 10가지, 정- 혜- 삼학을 닦으려는 것 역시 버려야 한다. 무심의 도인은 의식의 대상 경계가 시공을 초월하여 삼학 자체가 생활로 나타난다.
자식을 삶을 바꾸려하는 것이 잘못이다. 유정무정의 모든것은 자성이 있어서 (자성-각자 자신의 본분에 생명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시절 인연에 작용하는 모습으로 그모습을 남이 간섭한다고 시절인연의 생멸활동이 바뀌지 않는다. 바꿀려고 하는 그생각이 착각이다, 이것은 물고기를 하늘을 날게 하려는 생각이고, 날아가는 새를 물 속에 들어가 헤엄치게 하려는 것과 같다.
자식을 삶을 바꾸려하는 것이 잘못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절 인연에 맞게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바른 방향에서 생명활동을 하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 뿐이다. 그런 영역을 벗어나서 하려고 하는 것은 조작이며 중생심이다.
무사한 사람은 진여 자성의 시절인연의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길을 열어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개시라 한다. 본인이 바른 방향으로 자각해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지혜와 자비를 종교의 본질이다. 남의 마음을 내맘되로 바꿀려하는 것은 나와 상대방 모두가 괴로움만 초래하니 전도몽상이며 착각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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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부처가 아닌 작용의 부처.
발견한 법을 기준으로 한 자각의 지금 여기에서의 지혜로운 생명활동이 부처다
제22회 心地法門 心地 : 진여본성의 지혜작용
현실을 삶을 살아라, 시절 인연과 함께하는 것이 일심의 일이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라.
마음 : 마음씀의 지혜 작용, 마음 씀 자체가 부처,
참선 수행 :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닦아도 마음은 비워지질 않고 고요해지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없는 것이 참선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마음이 지혜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 생명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지혜가 여법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道는 마음 밖에서 구할 수 없고, 남에게 구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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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법문 지금 여기지혜 작용,
제23회 진정한 출가인 무심 : 번뇌 망심이 없다 = 一心 = 평상심 = 본래 청정한 마음 = 진여자성 = 불성 = 여래장,, 조작 : 부처 될려고 하는 것, 깨닭으려고 하는 것, 마조 도일이 부처되려고 좌선하려는 모습, 생각
마음따로 몸따라의 생활만 하지 않으면 진여로운 깨닭음의 지혜로운 생활을 한다. 밥 먹을 때 밥만 먹고, 차마실 때 차만 마시고,,
자각적인 지혜작용일 때 참 된 참회가 된다. 망념이 일어나면 망념을 자각하는 지혜작용에서
출가 - 세간의 가치관 탐진치 욕망을 벗어남, 체념한 것, 空의 실천, 오욕락 포기, 양보하면 남고 다투면 모자란다- 벽암록,
욕심이 앞을 못보게 한다, 욕심이 이성을 잃게 한다, 포기는 자신의 근본으로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은 아이를 살리려는 보살 이야기,, 포기야만이 진실로 자신의 삶을 살게한다 포기는 비움이다.
--- 자각적인 지혜로 사는 것이 부처의 삶이다
세속의 가치를 다 포기 버림 비움이 삼계를 벗어난 출가...환상 착각에서 벗어나라
제24회 출가인의 안목 부처가 무엇인가? ->정법을 바로 보는 안목이 구족되어 지혜작용하는 것
마구니는 무엇인가? ->마라 성도를 방해하는, 마음의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
..차별적인 세계를 버려라, 부처와 마구니는 없다,
진공 : 번뇌망념을 비운다 묘유 : 정법의 안목과 지혜와 진정견해가 생긴다.
空 = 비운다 = 중도의 실천 - 중도? ..진정한 견해는 근원과 일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교 : 法의 발견, 불심의 지혜로 사는 방법으로 전향한 것이다.
달마서래의 <->뜰 앞의 잣나무->목적의식도 중생구제도 아닌 자신 본분사의 생명활동을 하기 위함이다. 보살도의 삶으로 실혀하기 위함-불법의 대의를 체득했기에,, 잣나무는 잘보일려고 그늘을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생명활동을 하니 본분사이고 이것이 법이다
부처 :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 일이란 - 원력을 세운 일, 시절 인연의 일,,
제25회 진인의 삶 육도의 세계 부처의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 낸 세계이니 고정된 세계가 없으니 있다고 생각하는 것- 청정한 세계, 깨닭음의 세계는 중생심이 만들어 낸 착각이다 방편은 깨닭기 위한 세계이다. 방편을 진실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선종의 견해는 사교입선, 선악의 모두를 버릴 줄 아는 것의 안목
수행의 기간이 없다. 지금 이자리에서 작용하는 것의 법문이다.
--- 직시현금(直是現今)이요 갱무시절(更無時節)이니라,바로지금일뿐 다른시절이란없다, 약여시견득 (若如是見得)하면 시진출가(是眞出家) 라 일소만양황금(日消萬兩黃金) 하나니라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사람. 시방세계와 함께하면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 않고 끄달리지 않고자유자재하게 산다 그는 일체의 차별 분별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차별 견계대상이 망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망념이 없으면 비우면 된다. 차별 경게 대상에 무常,무相, 무住가 실상이다. 지혜광명이 일체와 함께한다. 고정된 무었도 없다.들어가지만 거기에 떨어지지 않고 번뇌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菩薩의 慈悲로운 삶이란 할일 다하지만 어떤 境界에도 動搖됨이 없어야 한다 이는 보살이 보살로서의 보살道를 實踐함에 있어 證得한 般若(菩提正眼)를 언제 어느때고 여의지 않음에 一乘의 妙法을 自在로이 펼 수 있는 것이며 일승이 곧 實相이며 실상이 곧 妙法 이며 묘법이 곧 一佛乘의 道인 오직 부처되는 한길임을 알고 보살은 一切處 一切時에 本分事에 忠實하지만 어디에도 걸림 없는 참사람의 寂滅無爲한 大道(般涅槃)를 實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相法인가 我人衆生壽者 놈을 알아야 한다 我는 일체 만물이 나로 부터 發生하며 나로 부터 起因됨을 아는 것이요 人은 因緣生起 한 因緣法을 깨닫는 것이며 衆生은 行爲의 果報인 業報衆生임을 自覺하는 길이며 壽者란 前者를 實踐함으로써 받게되는 報答이니 이는 善因善果 惡因惡果의 世上의 倫理道德.
제26회 인가와 전법 지금 여기 자신의 일,
진정한 견해 ,바른 안목
불법의 대의, 증명, 얻을 것이 있고 전해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정법의 안목이 있어야 한다. 지혜와 자비로운 생활일때야만이 바른 안목을 얻었다 하겠다.
남의 욕에 끄달리는 자신이 중생이 된다. 남의 허물을 보지말라, 남의 눈에 티끌은 봐도 내눈에 대들보 못본다.
깨닭음 불국토는 방편의 세계이다.
부처 : 현실의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 如來 : 본래 그대로 가는 모습, 가고 오는 것이없이 지금의 삶을 사는 것
설법을 했다는 것이니 설했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설한 것은 없다. 자신의 바른 안목을 위해서 했다, 중생을 위해서 설한 것이없었다. 자신의 본분사를 위해서 살 뿐이다. 자신의 본분사는 시절 인연에 따라서,, 그러니 흔적이 없고 가고 오는 흔적과 자취와 모습이 없다. 부처 자체는 가고 오는 모습이 없다, 있다는 것은 중생의 모습이다.
부처님 法에 의존해서 살지말고,
무엇을 위해서(목적의식을 위해서)라는 중생의 분별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은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없다.
대상경계가 없어야한다.
부처 : 의존함이 없는 곳으로부터 출현한다. 모두 비워진 경지, 의식, 대상, 관념, 경계가 비워진 것에서 지혜작용을 하게 된다.
제27회 사대는 무상하다 해탈 : 주곡 사는 것을 이르는 것이아니라 시절 인연에따라 지혜작용을 하는 것이다.
지수화풍의 大 크고 위대하다, 일체 존재는 땅이, 일체 모든 존재는 물에 의해 수용 포용, 불과 바람 역시나,, ..사람의 다리는 地(뼈), 소변 보는 곳 水(피, 물), 가슴부위는 火(열기), 숨이 왔다 갔다하는 곳(호흡) 風, 머리는 空,,그리니 머리는 텅 비어야 한다. 탑의 모양처럼 기신론은 7대 견대見大(일체모든 것을 보는 안목)와 식대識大(삼라만상을 인식) 이모든 것을 마음心이 수용한다.
의심의 초월 신심, 성인 : 위대한 보살도로 지혜작용을,,
문수 보살 : 보고 듣고,,하는 지혜작용하는--
一佛 : 문수-지혜, 보현-행화, 관음-감응 한 부처가 작용하는,, 실체가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작용하는 것 보현, 시절인연따라 자신을 나투는 것 관음, 서로 주연이 되고 조연이 되고 동시에 나타난다.
법신 - 의학을 통달한 지혜, 의사의 자격 화신 - 환자를 바르게진단 처벙하는 것(응변여약), 바른 안목이 있어야한다. 보신 -
제28회 부처의 경계 1.간소(簡素) 2. 탈속(脫俗) 3.자연(自然) 4.유현(幽玄) 5.고고(枯高) 6. 정적(靜寂) 7. 변화(變化)
지금 여기의 삶이 깨닭음의 세계이다. 지금 여기의 삶의 진실한 생활이 깨닭음이다.
대장부 :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기질을 갖고사는 사람 = 무위진인
만일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비워라 모든 망상과 취하려는 욕심만 없애 버리면 내 마음 향하는 곳에 무엇이 걸림 있겠는가
부처의 경계는 무애이니 실체가 없다. 의식의 대상 경계가 있다면 무애가어렵다.
--- 의식의 경계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 불경지다.
제29회 여법한 수행자 法에 의거하지 사람에의지하지 마라
여법 : 물이 흘러가는 세계 佛法 = 如法 = 佛,보 살, 法 - 去+ 삼수변 -> 물이 흘러감- 아상 인상이 없으며, 독자적임 모양도 없으며, 일체 생성 양육만물을 길러내고, 순리를 따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수평적이고 깨끗하게 하고, 나와 남도 깨끗하게 한다.
眞如 참되 모습 그대로-> 법과 같이 사는 것- 중생심 -> 탐진치, 너와 나를 구분하고 분별심 시기 질투하는 항상 자신의 본래심으로 살지 못하고 마음 대상 경계나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니 제대로 살 수 없다.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의 일.
확실을 가질 때 깨닭음을 얻을 수있다. 중생은 의심, 부처는 信心, 의심에서 심신으로 부럽이 뒷 받침되어야 심신으로 갈 수 있다 마음의 변화는 아무도 해 줄 수 없다.
진실은 ing이니, 의식이 아닌 지금 일어나는 사실적인 일이다. 무상이고, 무아이며,일체가 空한 경지다.
진여의 세계 : 불립문자, 언행처멸, 물이 흘러가는 세계
깨닭음의 세계, 부처의 세계 無有定法 실체가 없다. 지혜로운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
작용하는 힘. 일체를 초월하는 힘. 물水과 같은 것.
=== 불법승, 계정혜-중도-사성제-팔정도-12연기
의심은 지옥을 만든다. 집에 가스불을 켜 놓고 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은 곧 불안으로 만들고 이것이 발전되어 지옥이 된다. 극락은 편안함이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을 의심없이 하는 일이다.
깨닭음은 알아차림이다.
相想思 상 法 - 去+ 삼수변 -> 물이 흘러감- 아상 인상이 없으며, 독자적임 모양도 없으며, 일체 생성 양육만물을 길러내고, 순리를 따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수평적이고 깨끗하게 하고, 나와 남도 깨끗하게 한다.
--- 三眼國土 하야 處處遊履 하야 唯見空名 이니라, 삼안국토에 들어가서 가는곳마다노니나니 오로지 빈이름을 부칠뿐이다,
제30회 삼안국토란? 거울은 차별과분별심을 내지않는다.
해탈된 또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통해서 지혜로써 살아가는 모습이 해탈이다. 수처에서 해탈, 일체 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 의식의 속박-깨달으려하고,,
法 - 의식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의식의 대상 경계 인식의 대상이 존재 할 때-
방편 : 울음을 그치게하기 위해서는 황금색 낙엽을 주고, 불법을 깨달게 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언어가 필요했고, 사바세계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불국토를 제시할 수 밖에 없고, 중생심을 벗어나게하기 위해서 부처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으니,,
마음은 밖과 안 모두에서 찾을 수 없다. 마음 작용을 道로써 지혜를 체득하여야한다. 마음 안에서 도는 없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고통스럽다.즉 무소유어야한다. 구할려는 그것은- 얻을려고하는 의식이 없어야한다. 無事人-의식의 대상 경계가 없는 사람, 마음에 번뇌 망사으이 일이 없는 사람, 무심의 경지에서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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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茗田의 차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茗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