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
아침 10시 반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작은 아이인가? 큰 아이는 벌써 메일을 보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메일을 체크하던 중 나는 큰 아이의 메일을 보았다. “‘ㅅ’으로 시작하는 말 중 제일 멋진 말은?”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내 동생은 어젯 밤에 전화를 하였다. 내 누이동생은 나한테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자기 동생에게 전화를 하여 상의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작은 아이 전화겠구만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 하세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섬짓해졌다. “말씀하세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섬짓해지면서 울컥하였다.
잠시 뒤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감기 걸리셨어요?” 감기 걸린 것은 아니란다. “그러실 것 없으세요. 봄이 되면 벌써 1년이 되는 건데요, 뭐.” 나는 아주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걱정마세요. 나가서 맛있는 거 사먹을께요.” 어머니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노인정에서 특별한 점심을 낸다고 하시면서, 오늘 점심은 거기에서 먹을 참이라고 말씀하셨다. “삼례에서도 해요. 깨순이 김밥 있잖아요? 거기서 65세 이상된 노인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대접한대요. 저도 오늘부로 꼭 5년 남은 거 잖아요. 히히히”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 해인 듯하니, 2012년의 일인 것 같다. 그 해 여름 아내와 나는 지리산 화엄사 밑의 무슨 리조트에서 며칠을 묵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두 사람만 여행을 간 것은 그 때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우리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그 주변에 있는 운조루 등을 구경하였고 쌍계사와 화개장터도 둘러보았다. 화개장터의 녹차 가게에서는 녹차 잔도 몇 개 샀다. 그것은 여느 녹차잔과 달리 크기가 약간 큰 것이, 내가 찾던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흰 색이었다. 커피잔도 그렇지만 녹차잔은 흰색, 즉 무색이어야 한다. 기계로 대량으로 찍어낸 것이라 값도 쌌다. 그러나 아내는 값을 흥정하려고 달려들었다. 아내는 무조건 깎고 본다. 내가 아내를 젊잖게 제지하고 값을 다 치루었다. 그래 보았자, 3, 4만원 정도였다. 주인 여자가 물건을 포장하면서 아내에게, 바깥분이 혹시 학교에, 대학교라거나, 학교에 계시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게 보이세요? 많이들 그러더라고요, 호호호. 그러면서 아내는 묻지도 않는 말에 한참이나 대답을 하였다.
우리는 노점상 한 군데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각종 주물을 파는 곳이었다. 손바닥 크기의 불상도 여러 개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값을 물었다. 주인은 물론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 나는 인사동이나 황학동에서 그런 물건을 좀 사보아서 적정 가격을 안다. 주인과 나는 흥정에 들어갔다. 한참이나 걸렸다. 우리는 기싸움도 했다. 나는 전문가라도 되는 양 아는 채를 하기도 했다. “저것은 황동인데, 구리에 아연을 섞은 것이지.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섞은 거고.” 주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두 남자의 흥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아내가 불쑥 나섰다. 아내는 불상 세 점을 자기 앞으로 끌고 왔다. 내가 여러 번 들어보았던 물건들이다. 하나는 연화대에 앉은 전통적인 부처의 상이고, 또 하나는 남방에서 온 것인 듯 모양이 특이하고 큰 불상이었으며, 마지막 것은 철불이었다. 아내는 값을 불렀다. 아내가 말한 액수는 22만원이었던 것 같다. 많이 후려친 것이다. 22만원 받고 넘기시든지 그만 두시든지 하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주인에게 그렇게 말했으며, 나한테는, 자기가 자기 돈으로 지불해주겠다고 말했다. 주인은, 사모님께서 그렇게 나오시니 밑지면서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물건 값을 치루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아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생일 선물이야. “뭐라고? 내 생일은 겨울이잖아?” 미리 주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그렇게 가지고 싶은 거라면 가져야 되는 것 아니냐고 큰 소리를 쳤다. 가격이 제법 쌔지만 많이 깎았으니까 된 것 아니냐고 내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동의해주었지만 속은 쓰렸다. 잘 하면 15만원까지도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례읍내의 농협 건물에 붙어있는 현금인출기 앞에 아내를 내려주었다. 주차장을 찾지 못한 나는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 차를 대고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차 안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자기 카드에서 현금 22만원을 찾아 나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딘가에서 입금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돈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가끔씩 용돈 벌이는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긴 돈을, 남편이 그렇게까지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물건을 대신 구입해 주는 데에 쓰고 나서, 아내는 아주 뿌듯해하였다. 아마 그 돈은 자기 힘으로 번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더 뿌듯하게 하였으리라.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아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데, 무슨 일이 생겼나? 왜 안 오지?” 조금 더 기다리다가, 나는 자동차를 그대로 방치한 채 빠른 걸음으로 현금인출기로 갔다.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잠시 뒤에 아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농협 직원을 대리고 농협 안에서 걸어 나왔다. 현금인출기가 오작동을 하였던 모양이다. 카드를 먹고 뱉어내지를 않았다고 하며 인터폰까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멋지게 한번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현금 22만원을 받아 지갑에 넣으면서 크게 웃기도 하고 큰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가 가여웠다. 그녀가 너무 가난해 보였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사위가 전화를 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은 아이도 점심시간을 틈타 전화를 하였다. “지금은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 전화한 거지만, 하지 않을께, 아빠.” 큰 아이의 메일, 즉 “‘ㅅ’으로 시작하는 말 중 제일 멋진 말은?”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 말은 “사랑해”였다. “생신 축하드려요.”나 “생일 축하해”가 아니다. 지난 설 날, 나는 가족들에게, 우리 가족의 사전에는 ‘아빠 생일’이라는 항목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 말은 금지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내 동생들도 어쩌지 못한다. (2016, 2, 20)
첫댓글 우선 회갑 축하하네. 새벽에 기모가 페북을 통해 전해준 노강국 목사 소천 소식에 카페에 들렀다가 모처럼 자네글 보니 반갑기도 하지만 왠지 더 마음이 무겁고 아파오네. 잠을 이룰 수 없을 거 같네. 새벽 공기 쐬며 담배나 태우고 하루 시작해야겠다.
불상 마련해주신 영복씨 마음이 부처님인거 같네. 천사의 마음이고... 가족과 생일축하 나누길 바라실거네
여보! 당신 사랑하고 환갑 축하해요 라며..어디선가 자네 내자가 속삭이고 있겠지. 나는 큰 소리로 영태아우! 환갑 축하한다 할께 ㅎㅎ
영태..... 조영태 교수...... 나도 얼마전 환갑 지났지만.....
아직 생노병사에 연연하고 지내니...
정신적으론 여전히 철이 덜 든 듯하구나...
하지만 영태가 먼저 삶의 뼈저림.. 외로움을 느끼고 지내니..
네가 나의 형님이네..
여하튼 고독한 그대를 위해.. 조만간 어디서든 회포를 풀어야겠네..
서울 올라오면 미리 연락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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