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색
감물들이기는 여름을 막 지나온 지금, 푸른 땡감이 성장을 막 끝내고 익어 가는 일만 남겨 놓았을 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천은 여러 번 문질러야 하기에 마찰을 잘 견뎌 내는 식물성 섬유가 좋다. 제주 갈옷처럼 보기만 해도 튼튼하고 시원함이 느껴지는 갈색을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한두 번의 염색으로는 얻을 수 없고 최소한 예닐곱 번, 아니 열 번 이상 반복해야 강한 느낌의 갈색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1) 씨알이 커진 푸른 땡감을 한 바구니 준비하였다. 대략 2㎏ 정도 되었다. 감 꼭지는 떼어 내 따로 모아 둔다.
(2) 꼭지 뗀 푸른 땡감을 녹즙기에 넣어 간 다음,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고운 망에 걸러 물만 받아 놓았다.
* 떼어 내 따로 모아 둔 감 꼭지는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세 배 분량의 물을 넣고 30분 정도 끓여 주었다. 물만 잘 따라 내고 처음 물 양의 반 정도 물을 넣어 30분 정도 끓여 염액을 만들어 두었다가, 처음 것과 두 번째 것을 섞으면 훌륭한 염액이 된다. 이건 나중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3) 즙의 양이 부족한 듯하여 물을 약간 넣고 소금을 조금(밥 숟가락 하나) 넣어 주었다. 즙이 넉넉하다면 굳이 물과 소금을 넣을 필요는 없다.
(4) 만들어 둔 즙(염액)을 둘로 나누고, 그 중 하나의 염액에 물에 적셔 두었던 면으로 만든 여름 한복을 넣어 30분 동안 열심히 주물렀다. 이 때, 찌꺼기가 묻어 있으면 얼룩이 생기므로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5) 두 번 헹구는 동안 찌꺼기는 안 묻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나머지 염액에 옷감을 넣고 20분간 열심히 주물렀다.
(6) 감물들이기는 다른 염색과 달리 매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일 자신이 없어 철 매염제에 담갔다. 철 매염제는 시중에서 파는 것을 사용해 찻숟가락으로 반 정도 넣어 준비했다. 눈에 띄게 색이 변해 갔다. 너무 어두운 회색빛이 나는 것 같아 철 매염제에 넣은 지 5분이 채 안 되는데 건져 헹구었다.
(7) 두 차례 헹군 다음, 중성세제를 탄 물에 가볍게 흔들어 빨아 주었다.
(8) 비눗기와 철 매염제가 남아 있지 않도록 신경 써서 예닐곱 번 헹구어 준 후, 볕이 잘 드는 곳에 널어 말렸다.
이렇게 염색을 하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너무 진한 회색이라 은근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힘들더라도 땡감을 더 구하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갈색빛 염색에 도전할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어제의 진한 회색빛은 간 곳 없고 은빛 물결치는 바닷가인 양 은빛 고운 회색이 기다리고 있었다.
갈색으로 물든 감물들이기를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염액을 만들어 염색하는 방법은 위에 적은 (1)번에서 (5)번까지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6) 염색이 끝나면 말릴 때 잘 말려야 하는데, 바구니나 발을 이용해 널어 말리는 게 좋다. 줄에 널어 말릴 때는 적당히 옷감이 마르면 뒤집어 주어 충분히 햇볕을 볼 수 있도록 해야 좋은 색을 얻을 수 있다.
(7) 땡감을 많이 구해 위 과정을 열 번 정도 반복하면 좋은 색을 얻을 수 있다.
감 꼭지로 만들어 놓은 염액으로 적어 놓은 대로 염색하면 땡감으로 염색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땡감의 양이 적어 염액 양이 부족하면 얼룩이 생기기 쉬우므로, 약간 적은 듯싶으면 끓여서 만든 감 꼭지 염액을 이용하면 좋다. 이외에 발효된 감을 이용한 감물들이기도 있다. 발효된 감을 이용한 염색은 계절에 상관 없이 어느 때나 염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본래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염색 방법이라 한다.
감물들이기에서 좋은 색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반복’만이 최선이다. 어느 염색이나 다 그렇지만 감물들이기는 공들인 만큼 정직하게 색을 얻어 낼 수 있는 염색이다. 햇볕 좋은 날, 감물들이기에 도전해 보자. 갈색이 어렵다면 은빛 물결치는 회색에라도 도전해 보자. 백 마디 이론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나은 게 천연 염색이라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