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사랑한 퇴계
고인돌
매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은 퇴계 이황 선생이다. 매화를 누구보다 극진히 사랑한 퇴계선생은 매화를 죽는 날까지 가까이 두고 아꼈다. 그러다가 ‘매형에게 물을 주어라.’란 말을 마지막으로 타계하셨다.
한성에서 벼슬을 하던 퇴계 선생이 고향 부근의 단양군수로 발령이 났다. 퇴계 선생이 객사의 뜰에 기르던 매화와 헤어지기 섭섭하여 자문자답의 시로 대화를 나눈다. 이 시는 凉, 香, 去(處), 藏의 운이 자문과 자답에 똑같이 들어있어 더욱 돋보이는 시다. 시에서 눈발처럼 흩날리는 매화 향기가 돋아나는 것만 같다
한성우사분매증답(漢城寓舍盆梅贈答)
頓荷梅仙伴我凉(돈하매선반아량) 고맙게도 매화 나의 외로움 함께 하니
客窓蕭灑夢魂香(객창소쇄몽혼향) 나그네 쓸쓸해도 꿈만은 향기롭다네
東歸恨未携君去(동귀한미휴군거) 귀향길 그대와 함께 못가 한스럽지만
京洛塵中好艶藏(경락진중호염장) 서울 세속에서도 고운 자태 간직하게나
聞說陶仙我輩凉(문설도선아배량) 듣건대 선생께서도 저처럼 외롭다시니
待公歸去發天香(대공귀거발천향) 그대가 돌아오면 향기를 피우리라
願公相對想思處(원공상대상사처) 바라건대 그대 언제 어디서나
玉雪淸眞共善藏(옥설청진공선장) 옥과 눈처럼 맑고 참됨 잘 간직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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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다. 이른 봄 창가에서 기르는 분매가 꽃을 피우면 매화 향기는 방안을 가득 채운다.
충북 단양에 낭랑 18세의 관기 두향이 48세(43?)의 퇴계선생을 사모하였다. 두향이 퇴계선생을 위해 멋진 매화나무 화분 한 그루를 선물하였다. 그 나무는 두향의 어미가 자신의 딸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것이었다고 전한다. 매화를 받은 퇴계선생이 두향을 가까이 불러 시를 짓고 어여삐 여겼다. 그러나 1년도 못 되어 퇴계 선생은 고향인 풍기군수로 떠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이 이별의 아픔을 시로 쓰고 거문고를 타며 이렇게 노래한다.
死別己呑聲(사별기탄성) 죽어 이별은 목소리조차 나지 않고
生別常惻測(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조차 짝이 없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술잔 들고 슬피 우네
어느덧 술 다하니 님 마저 떠나가네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나
처복이 없어 부인 둘을 사별한 퇴계 선생은 두향을 많이 사랑했을 터다. 16세에 결혼 했다 남편을 사별한 두향 또한 퇴계선생을 많이 따랐다. 그러나 남의 이목도 있고 기생 두향을 첩으로 삼아 고향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 대신 두향이 선물한 수석 두 점과 매화 한 분을 풍기로 가져갔다. 두향도 퇴계가 보고 싶어 산삼을 사들고 풍기로 찾아가 문안을 드리기도 했다.
퇴계와 이별한 직후 두향은 기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뺀다. 평생을 수절하여 퇴계 선생의 앞날을 축원하며 살았다고 전한다. 퇴계선생의 춘추 69세 겨울에 선생은 타계하였다. 타계하기 전에 제자 덕홍에게 남긴 말은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선생이 매화를 그토록 사랑한 것은 어쩌면 두향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퇴기인 두향도 퇴계의 죽음을 슬허하여 풍기의 상가를 찾아 문밖에서 조문하고 단양으로 돌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어느 해에 나도 도자기 한 점을 얻었다. 대추 모양을 한 백자 꽃병이었다. 그런데 그 꽃병에 매화 그림이 수 놓였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듯하다고 넘겼는데 자꾸만 정이 갔다. 여주 이천의 어느 도자기 공장에 갔다가 얻은 화병이다. 매화 꽃병을 만든 공방을 다시 찾으려하나 뚜렷한 기억이 없다. 아쉬운 대로 오래 두고 볼 참이다.
어느 해에는 매화 화분 한 점을 선물로 받았다. 창가에 두고 키웠는데 1월이면 벌써 하얀 눈꽃을 피웠다. 이런 매화가 설중매(雪中梅)려니 생각하였더니 그것은 아니었다. 설중매는 충청남도 부여시 신리에 자라는 나무로 12월이면 꽃을 피웠다고 한다. 이 마을의 선조가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다녀올 때 가져온 나무로 알려진다. 천연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었으나 오래 전에 고목이 되어 죽었다.
섬진강 사람들은 매화꽃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매우(梅雨)라고 부른다. 광양 쫒비산 매화밭에 쏟아져 내리는 꽃비의 이미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매화의 또 다른 매력은 꽃보다 사랑받는 매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과 향기보다 매실을 더 사랑한다. 그런 까닭으로 매실로 만든 온갖 상품이 매장에 넘쳐난다. 매실차, 매실주, 매실청 등이 건강식품 코너를 점령한다.
몇 해 전에 청매실을 사서 매실장아찌를 담가 보았다. 청매실을 살짝 데쳐 매실 껍데기에 남아 있을 농약 성분을 제거하였다. 그 다음에 과도로 매실의 과육을 벗겨 담고 매실 만큼의 흑설탕을 넣어 숙성시켰다. 석 달 후에 꺼내 맛을 보니 사각거리는 식감에 새콤달콤한 것이 입맛에 잘 맞았다. 등산가는 날에도 도시락 반찬으로 여러 번 가져갔다. 매실장아찌는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두루 어울리는 식품이었다.
매실은 소화가 안 되거나 배가 아프고 구토가 날 때에도 효험이 있다. 요즈음에는 매실이 알칼리성 식품으로 성인병에 좋다하여 더욱 인기가 높다. 매실이 출하되는 초여름에 매실장아찌 담지 않는 주부가 없는 상황이다.
매실나무는 거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건조한 토양이나 추운 지역에서도 잘 견딘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 전역에 두루 자란다. 성장도 빠르고 가꾸기도 쉬우며 고목이 되도록 오래 산다.
일본에도 매화나무가 많이 자란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서는 2월이 되면 매화나무 묘목시장이 붐을 이룬다. 일본인들은 우리와 달리 새로 개발한 매화나무 겹꽃에 관심을 보인다.
매화나무를 번식하려면 7월 쯤 잘 익은 열매를 모아 젖은 모래에 묻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면 된다. 그러나 특별히 마음에 드는 품종을 얻으려면 1년생 가지를 잘라 내어 접붙이기를 해야 한다. 매화나무의 가지치기는 꽃이 핀 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양산 영축산통도사의 홍매화이다. 이 매화는 입춘절인 2월 4일이면 피기 시작하여 2월 15일이면 만개한다. 설중매의 기품이 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김해 건설공고 교정에 피는 고매는 3월 10일경에 개화한다. 매화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담으려는 작가들이 줄을 잇는다. 조계산선암사의 백매화는 4월 10일경에 개화한다. 고졸한 기와지붕에 어우러진 선암사 매화는 향기롭기 짝이 없다.
매화를 시화로 지정한 고장은 경상북도 안동시이다. 안동시는 퇴계 이황선생의 고향이자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막아낸 서애 류성룡의 고향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자부하는 안동시는 퇴계, 서애와 같은 인물을 계절에 앞서 먼저 피는 매화에 비유하는 것이다.
충절의 고장인 우리 오산도 안동에 못지않다. 국난극복의 성지 독산성과 성리학의 터전인 궐리사가 있다. 독산성, 권리사, 오산시청, 오산대학 등에 홍매, 백매, 흑매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역사의 혼이 깃든 충효의 고장의 전통을 계승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첫댓글 아름다운 꽃 매화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일본에서는 매화의 열매가 익을때에 장마가 시작이라 "매우"라고 한다네요.
많은지식과 함께 아름다운 꽃소식도 감사합니다.
저의 고향이 오산입니다.....ㅎ
오산시에서 시화를 개나리에서 매화로 / 시조를 비둘기에서 까마귀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벌써 "매화"가 보고싶습니다.
올해봄부터 유난히도 매화가 그립습니다.
저도 그"때"가 되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