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야 일어 났어요, 8시 30분에 떠나요" 그동안 집근처에서 출퇴근하다가 갑자기 천안까지 다니느라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간다.
주말엔 좀 편히 쉬고 싶지만 지리산까지는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아서 어제 약속시간을 무리하게 잡은 것이나 이제부터는 천천히 일을하기 시작한다. 남편한테 지리산까지 다녀 온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 뻔하므로 그냥 가까운데 가는 것처럼 심드렁하게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한다. 마침 어제 큰집에서 가져온 방울 토마토가 있어서 물에 씻어서 용기에 담는다. 멀리 여행할 때는 과일이 최고인 것 같다. 언젠가 휴게소마다 들러서 사먹다보니 저녁 때 되니까 뱃속이 쓰레기로 가득찬 것처럼 부담스러워서 다음부터는 되도록 과일등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
친구와 아파트 앞에서 만나서 출발한다. 친구와의 인연은 마곡사 선수련회부터 만났으니 벌써 6~7년은 되었나보다. 전생에서부터 좋은 인연이었는지 그후로 불교 수련회도 같이 다니고 다움카페에서 만나기도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우리 지방에 와서 살게 되더니, 급기야 이 지방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어, 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살다보니 그런 인연도 있나보다. 그러니 옛날부터 어떤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시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다. 전에는 노처녀여서 항상 시간이 많으므로
" 다음 주에 별일 없으세요? 마곡사에 가지요" 하고 전화 오곤 했는데 요즘은 한 가정의 안 주인이 되고보니 모든게 어설프고 힘들어서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기는 나도 처음에 결혼해서는 살림에 요령이 없어서 밥을 하는데도 두세시간을 품매어도 막상 상에 내어 놓는 것은 변변치 않아서 울기도 많이 했으니, 그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동안 편안하게 자기 혼자만 살다가 갑자기 여러 식구들 살림을 하려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는 그녀가 안스러워서 평소에도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하는대로 해라"고 큰언니처럼 조언하지만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그냥 못 본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장에 들러 오렌지 한바가지를 샀다. 오렌지도 여행하며 차속에서 먹기에는 아주 좋은 음식이다. 그녀와 모처럼 많은 얘기를 나눈다. 이렇게 차 속에서 둘이만 얘기를 나누는 것도 오래전 일인것 같다. 아이들이 딸린 이혼남에게 결혼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을지 짐작이 간다. 한달후에 결혼식을 하는데 지금도 친정동생들이 반대를 하는 전화가 수시로 와서 전화를 꺼놓고 있다고 한다.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는데, 어떤 길을 선택하면 행복의 길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선택한 이상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당당해 보였다. 그녀가 그동안 어려운 삶을 살았던 것을 알고 있기에 이제 그녀가 좋은 남자를 만나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나도 그 남자를 만나 봤는데 좋은 사람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젬병이어서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중에는 아주 간사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서 내 눈을 믿지 못한다. 그래도 지역에서 그 사람네의 평가가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시골에서는 누구네 몇째아들 하면 다 알게 마련이고 일테면 " 누구네는 형제들끼리 재산갖고 싸운다더라, 이제 그 집안도 볼장 다 봤다" 하는 평이 돌기도 하는데, 아는 사람들한테 그 집안을 물어보니" 나쁜사람들은 아니야, 어쩌다 셋째가 이혼했는지는 모르지만........"하고 말했다.
얘기를 하다가 길을 알려주는 지피에쓰에 귀 기울이지 못하여 어떻게 장수까지 가게되어 다시 국도로 돌아서 남원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남원 광한루옆에서 추어탕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나서 광한루쪽으로 차를 돌렸다. 남원은 벚꽃이 한창이어서 온통 꽃동산이다. 마침 허름한 식당서 나오는 사람들이 지역사람들처럼 보여서 그 식당이 좋으냐고 물으니 맛이 좋으니 들어가시라고 한다. 식당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친정 여동생이 와서 이것저것 더 갖다준다. 전라도 쑥떡이니 맛보라며 갖다주고, 막걸리도 한 잔만 공짜라며 갖다준다. 아무래도 시골인심이 더 편하고 좋다.
남원시내를 지나 인월면으로 들어가니 이제 지리산이다. 그녀는 전에 인월면의 원불교 어린이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몇년전에는 지리산자락아래 황토방에서 다움카페 번개를 한 적이 있다. 넓은 마당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먹다가 밤에 노고단에 올라가 대금불던 기억이 새롭다. 아침에는 지리산 실상사에 가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주지스님께 법문을 들었다. 작년에는 실상사 도법스님이 전국 도보순례로 예산에 오셔서 같이 순례하기도 했다. 역시 실상사는 불교를 이끌어 가는 대표 사찰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인월 원불교 어린이집에 가니 마침 교무님과 그녀가 잘 아는 여자분이 계셔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결혼을 한다고 하니 축하해 주며 부디 잘 살라고 축복해주신다. 모두가 그녀를 위하는 마음들이다. 어린이집을 나와서 그 위의 원불교 노인복지관으로 가니 마침 밖에서 일을 하시던 교무님이 손을 붙잡고 반가워하신다. 교무님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원불교 교무로 출가시키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니 원불교와의 인연이 그만큼인가보다고 하신다. 원불교는 일찍부터 사회복지일에 눈을 떠서 사회복지 시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오랫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가 할말이 많은 것 같아서 혼자 밖으로 나와서 거닌다. 노인복지관 앞 뜰은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너른 바위 하나가 있어서 편히 바위위에 앉는다. 옆으로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개울물소리가 잔잔하고 가끔 새가 전라도 말로 뭐라고 지저귄다. 전라도에서는 새도 육자배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물을 따라 올라가면 백장계곡이 있어서, 옛날엔 소리꾼들이 계곡 옆에서 소리연습을 했다고 한다. 떨어지는 폭포소리보다 자기 소리가 더 크도록 수련했을 것이다. 몇년 전에 태풍으로 지리산계곡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하여 이곳이 지금 이만큼 도로도 넓어지고 편해졌지, 옛날에는 백장계곡까지 가려면 완전히 첩첩 산골이었을 것이다.
너른 잔디밭 바위에 앉아 지리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는 훈훈한 봄 바람에 나를 맡기니 서서히 눈꺼풀이 감기다가 꿈길에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잠을 깬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두리번 거리니 건물 저 쪽에 휠체어를 탄 노부인이 보인다.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가 노래부르시는 옆에서 그냥 평상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분이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
" 나의 살~ 던 고향으~ ㄴ꽃피는 산~ 골~~~~"
" 닐니리야 ~~~~ 닐니~ 리야~~~~~~~~~~~"
두 분이 같이 이곳에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곱게 화장을 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시는 것을 보니 괜히 슬퍼진다. 저분들한테도 고왔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처녀 총각때 만나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이루어서 자식들도 있으나, 이제 늙고 병들으니 이런 기관에 와서 몸을 의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할머니만 이곳에 계시고 주말인 오늘 할아버지가 만나러 오셔서 정원을 산책하며 노래를 부르시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떤 유료양로원에 갔다가 아무 표정도 없이, 생각도 없이 앉아있는 노인들을 보고는 '자기집에서 자기 살림하다가 죽는 것이 행복이구나, 절대로 양로원같은데 들어가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한 적이있다.
이삼십년후의 우리 모습일까? 괜히 서글퍼진다. 저렇게 늙고 그러다 죽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무엇이 잘 안돼서, 이루지 못해서 안달하고 애쓴다.
"동생아, 우리 그냥 살자, 너무 안달하지 말고..........,그것도 우리의 운명이면 그냥 껴안고 그렇게 살자.......... 살다보면 좋은 날 있겠지..........."
항상 걱정을 안고사는 동생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그녀와 교무님이 나오신다.
"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요..........."
사랑하는 제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스승님의 간절한 마음이 지리산자락 바람에 실려 두둥실 푸른 하늘을 나른다.
첫댓글 오랫동안 병원에 계신 어머니생각이 나내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뜻깊은 나들이 하셨네요...늘 행복하시길...
산새들도 육자배기하는 지리산 자락이 보곳싶습니다. 정겨운 친구와의 동행은 더더욱 좋으련.... 좋은 여행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