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엄마의 김치부침개 생각난다
조성순 수필가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로 장대비가 내린다. 부침개 붙이는 소리 같다. 드디어 비가 내린다. 그동안 너무 가물었으니 첫날은 반갑고 고마운 장마의 시작이다.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비가 내리면 밀가루반죽을 했다. 묽은 반죽에 애호박과 부추를 넣거나 김치를 넣어 김치부침개를 붙인다. 교문이 보이는 대문 앞에서 엄마는 지나가는 친구들을 기름 냄새 속으로 불러들였다. 비는 내리고 버스시간은 한참 기다려야 하는 통학친구들에게 특히 후했다. 학교 앞이니 언니친구 오빠친구, 새로 지은 큰 병원아래 있으니 병원에 오는 일가친척, 따지고 보면 사돈에 팔촌으로 친척 아닌 이가 없었다. 나이 들어 만난 어떤 동창은 나보다 그 시간을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의 김치부침개보다 맛있는 게 없었다며 엄마의 부침개를 기억했다. 너 나 없이 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비 오는 어느 날엔 누룽국(칼국수)을, 어느 날엔 수제비를 먹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꼭꼭 주물러 밀가루를 훌훌 뿌려가며 홍두깨로 밀어 두레상만큼 넓힌다. 동그라미는 반달이 되고 반으로 접고 또 접기를 반복한다. 두툼해진 반죽을 썰어 애호박과 감자를 넣고 누룽국을 끓인다. 비가 오긴 해도 후텁지근한 날에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뜨거운 걸 맛이나 제대로 알고 먹었을까. 또 하루는 부침개용보다는 되직하게, 칼국수용보다는 묽게 반죽을 해서 커다란 나무주걱에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올리고 젓가락으로 뚝뚝 끊어 끓이는 수제비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엔 잘 알지 못했던 맛이 이제는 생각난다. 담백하고 걸쭉하여 텁텁했지만 꿀떡꿀떡 넘어가 뜨끈하던 기억, 밀가루 반죽으로 빗어낸 거칠고 투박한 음식에는 그 시절 엄마들의 고난 했던 시간과 눈물도 들어 있었으리라.
엄마의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다. 김치부침개는 무조건 맛있다. 예전에 식구들이 많을 때는 재미있기도 해서 부침개를 곧잘 부쳤다. 프라이팬에 반죽이 반쯤 익으면 팬을 빙글빙글 돌려 피자 도우 만들 때처럼 공중으로 날려서 뒤집곤 했으니 실력은 자타공인이었다. 요즈음은 전이나 부침개를 쉽게 살 수가 있어 굳이 집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 명절이나 기일이어야 집에서도 전을 부친다. 상에 올릴 전을 다 부치고 나면 꼭 김치부침개를 한다. 좋아하던 음식이라며 상에도 올리는데 그때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제발 첫날 갈증을 해소해준 고마운 마음 유지할 수 있게 전국 어디에도 큰 피해 없이 지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23.6.30 대전일보 한밭춘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