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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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의 덩이
끓어앉아 올리는 향로의 향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 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적적히 다만 밝은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어두운 밤에 홀로이 누웠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그런지야 알 사람도 없겠습니다마는, 탓을 하자면 무엇이라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임과 벗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임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 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산 위에
산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임 계시는 마을이 내 눈 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흰 모래 모래 비낀 선창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 잦으며 날 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여서 흩어지는 물꽃뿐 아득합니다.
이윽고 밤 어둡는 물새가 울면 물결 좇아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같이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해 붉은 밭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이고 솔곳이 엿듣노라면 임 계신 창 아래로 가는 물노래.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임이 놀라 일어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 위에서 그 산 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릅니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뒤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가련한 인생
가련한, 가련한, 가련한 인생에 첫째는 삶이라, 삶은 곧 살림이다. 살림은 곧 사랑이라, 그러면 사랑은 무엔고 사랑은 곧 제가 저를 희생함이라, 그러면 희생은 무엇 희생은, 남의 몸을 내 몸과같이 생각함이다.
가련한, 가련한, 가련한 인생, 그래도 우선은 살아야 되고 살자 하면 사랑하여야 되겠는데 그러면 사랑은 무엇인고 사랑이 마음인가, 남을 나보다 여겨야 하고, 쓴 것도 달게 받아야 한다. 삶이 세월인가
삶의 끝은 죽음, 세월이 빠르쟎고, 사랑을 함은 죽음, 제 마음을 못죽이네. 삶이 어렵도다. 사랑하기 힘들도다. 누구는 나서 세상에 행복이 있다고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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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임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 나는 우리 임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 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 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임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 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사랑의 선물
임 그리고 방울방울 흘린 눈물 진주 같은 그 눈물을 썩지 않는 붉은 실에 꿰고 또 꿰어 사랑의 선물로서 임의 목에 걸어 줄라.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 소 월(金素月)님의 시(詩) 몇편을 올려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소월님의 시는 가슴에 아득히 맺혀오네요...
시(詩) 출처 : '김소월시집 진달래꽃' 中에서.. 이미지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서양화가 박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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