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더전 여행3 - 경덕진에서 백자에서 청자 그리고 청백자로 이어진 도자기 역사를 보다!

10월 23일 루산庐山(여산) 에서 버스를 타고 주장치처짠 九江汽車站(구강기차참) 에 가서
다시 10시 30분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40분을 달려서는 12시에 도자기 도시
징더전 景德镇(경덕진) 에 도착해서는 주차장 옆 行李奇存(행리기존) 에 배낭을 맡깁니다.


시짠(西站 서참) 이라고도 불리는 景德镇汽車站(경덕진기차참) 터미널로 들어가서 무원행
버스표를 끊은후 택시를 타고 징더전 런민꽝창 景德镇 人民广场(경덕진 인민광장) 에
도착해서는... 위쪽에서 도공들이 도자기를 만들거나 운반하는 청동 조각상 들을 구경합니다.


경덕진 은 강서성(江西省) 의 동북부에 위치해 송나라 때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원·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독보적 생산지로 명맥을 이어온 곳이니...
한나라 때부터 도기가 제작되기 시작해 수· 당나라 때는 백자와 청자류 를
생산하다가 송대에 와서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명성을 쌓아 나갔다고 합니다.


송대에 이르면서 징더전(경덕진) 은 백자에 청자 빛이 아른거리는 독특한 유색(釉色)
을 창출하게 되는데.... 이를 “영청(影靑 청빛의 그림자)”이라고
칭하였으니‘청백자(靑白瓷)’라고도 했다는데 이후 고려청자 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경덕진의 번영 은 지리적 환경 에서 비롯되었으니 주변은 울창한 수목과 드높은 산들
과 수많은 호수에 둘러싸인 진경을 자랑하며... 동으로는 무원(務源), 남으로는
낙평(樂平), 서로는 파양(波陽), 북으로 안휘(安徽)성의 기문(祁門) 이 위치하며
계곡은 창강(昌江), 동하(東河), 서하(西河), 남하(南河) 로 강줄기가 뻗어 있습니다.


안휘성 대홍산에서 시작되는 창강 은 여러 도시로 통하는 해운 길로 파양호 까지
흐르므로.... 중간에 자리한 경덕진은 수운(水運) 이 발달한
상업 도시였으니 생산된 자기(瓷器) 를 다른 도시로 수송하기 좋았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동하(東河), 서하(西河) 및 남하(南河) 는 경덕진에 풍부한 수력을 제공
하였으니...... 도자기 원료를 세공하는 기계에 수력을 공급 했고
소성에 필요한 소나무 가 풍부했던데다가 자토(瓷土) 의 채취도 용이 했습니다.

경덕진 자토 의 지층은 혈암(頁岩) - 자토광(瓷土鑛) - 사암(砂岩) - 자토광
혈암 의 순서로 퇴적되어 수량과 품종이 풍부하고 질이 좋은
까닭에 예전부터 다채로운 재료로 수많은 종류의 자기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도자기를 빚는 흙 을 고령토 라고 했는데... 경덕진에서
45km 떨어진 동하 고령산 (高嶺山) 에는 순수한 조토(組土) 로 되어 있어서
토질이 곱고 깨끗하며 가소성(可塑性) 은 약하나 소성 온도에 견디는 힘이
강해 최고의 도자 원료로 인정되었으니... 바로 고령토(高嶺土) 라 불리는 흙 입니다.


고령산 외에 경덕진 근교 대주(大州), 삼보봉(三寶蓬), 유가만(柳家灣), 은갱(銀坑) 등
에도 자토 산지 가 있으니... 자토는 백돈석(白敦石) 이며 일종의 유리성 자토로서
고령토 성질과 비슷한 장석(長石) 으로 고령토와 배합했을때 반투명성 을 얻을수 있습니다.


경덕진 은 한나라 때 도기를 제작 했으며 동진(東晉) 시대에 진(鎭)이 설치되었고 6세기
남조(南朝) 의 진대(陳代)에 경덕진에서 도자기 제조 가 있었으니 “물과 흙이 도기로
적당하고 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도업 을 하였다(水土宣陶, 自陳以來,
土人多業於比). (…) 진자기는 진대(陳代) 이래 그 이름을 떨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唐) 대로 오면서 경덕진은 옥기(玉器) 로 칭해질 만큼 발전했으며 형요(形窯) 의
백자, 월요(越窯) 의 청자를 모방 하면서 백자와 청자류를 제조 하였으니
당나라 무덕년에 민간에서 옥 같은 자기를 만들어서 조정에 바쳤으며
창남진(昌南鎭) 의 자기가 유명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바로 경덕진의 명칭 입니다.

송대 에 들어 진종(眞宗) 경덕년간에 진종은 창남진에 감진(監鎭)을 설치하고 자기를 구워
조정에 바치고 기물의 밑바닥에 경덕년제(景德年製) 라고 쓰도록 명하였으니 이때
부터 명성이 높아져 경덕진 자기 로 통용되었고 오늘날 까지 경덕진 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송대 에는 월요와 형요의 영향 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영청자(影靑瓷 청백자) 를
탄생시키면서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서는데... 영청자 는 태질이 치밀하고
결백한 백색이며 잔잔한 청빛을 띠는데, 청빛은 유질(釉質) 에 함유되어
있는 소량의 철(鐵) 과 환원소성 (環元燒成) 때문이며 유색은 맑고 영롱 합니다.

송대 경덕진 에서 시작되어 성행했던 자석(瓷石) 만 사용하던 청백자(靑白瓷) 는 원대에
종결되니 송대의 청자와 달리 고령토를 섞어서 배합하는 이원배방법 (二元配方法) 이
시도되면서 깨끗한 백색 이 되는지라 원청화(元靑花) 출현에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원대의 청료 는 중국산과 수입된 청료 두 가지를 사용하였으니 중국산은 망간 의 함량이
많은데 비해 수입 청료는 철 의 함량이 많으니 원청화 에서는 두가지가 절묘하게
배합된 것을 볼수 있는데... 중국 청료 는 청화에 자광(瓷光) 을 띠는 효과를
얻는데 이용되었고 문양의 선이나 어두운 부분 묘사, 세밀한 윤곽 묘사 에 이용 됩니다.


반면에 철의 함량이 많은 수입 청료는 청화에 흑빛을 띠게하고 문양의 표현에 있어 훈산과
농중(濃重)의 현상을 일으켜 마치 수묵의 흥취를 느끼게 하였으니... 이러한 청료의
절묘한 사용과 원료를 배합하는 기술 의 발전이 청화 출현의 중요한 요소라 볼수 있습니다.


청료 색상의 원소는 코발트, 망간, 철 인데 코발트는 진한 남색 으로 발색하며 망간은 자색
계통으로, 철은 흑색 으로 발색하는데... 또 유리홍 이 출현하였으니 동홍료(銅紅料)를
태(胎) 위에 채회하고 투명유를 발라서 환원 소성한 홍색 화문(花紋) 의 자기 라고 합니다.


원대의 경덕진에서 이룩한 업적은 청화와 유리홍의 완성 일 것이니 이것은 동홍유(銅紅釉)
와 고람유의 새로운 발전에서 기초한 것인데 동홍과 고람 은 청화와 유리홍 에
사용된 외에도 순수한 홍색과 남색 자기에도 응용되었으니 동홍유는 구리 원소 가
주요 착색제로 홍색 계통으로 발색하며 이미 송대의 균요(鈞窯) 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원대의 홍유기(紅釉器) 는 출토된 기물로 볼 때 소량이며 완벽한 홍색은 내지 못했고,
다만 명대의 선홍기(鮮紅器) 출현의 기초 가 되었다는데 기형은 완(宛),
반(盤) 등의 소형 기물 이며 인화(印花) 장식으로 용 문양을 주로 채용하였다고 합니다.


원대 남유기(藍釉器) 장식 방법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으니 남유에 금채(金彩)로 문양을
그린 남유금채(藍釉金彩) 와 남색 바탕에 백색 문양을 그린 남유백화(藍釉白花) 인데
명대에 와서 경덕진은 규모가 커져서 자업(瓷業) 의 중심지 로 상공업의 중심지가 됩니다.


명 황실은 어기창을 설치하여 궁정용의 전문 자기를 제작하도록 하였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요(窯)에는 공자(貢瓷) 를 바치도록 하였으니 만력(萬歷) 시기에 관요(官窯) 가 300좌
민요도 수백좌(座) 에 달했으며 가정(嘉靖) 시기에는 도공이 1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경덕진에서 관요와 민간요가 다투듯이 수많은 자기가 대량생산되면서 각 작업의 전문화가
시작되었으며 도공 등은 세습적인 전문공 과 보조공들로 나누어졌으니 전국에서 우수한
도공들이 경덕진으로 몰려 왔으며 또한 유상채자 가 명대 초기 부터 경덕진에서 시도됩니다.


유상채 의 화학 구성은 납, 규산, 산화칼륨 의 3원소 계통이으로 명대 채색 자기의 발전과
흥기는 백자의 수준이 높아짐과 관계가 있으니... 명대 유상채자의 안색(顔色)은
홍(紅), 황(黃), 녹(綠), 남(藍), 흑(黑), 자(紫) 등이며 착색제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소성한 백자 위에 문양을 그리고 다시 저온 소성 하였습니다.


명청 교체기 혼란을 수습한 후에 청대의 경덕진 은 명대에 이어 명성을 누리면서 관요와
민요 가 활발하게 운영 되었으니 관요는 내무부 조판처(造瓣處) 에서 관리 감독을 파견
하였는데 경덕진 자기의 성취는 당시 지식있는 파견 감독들의 노력 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강희 시기의 경덕진 관리감독 이었던 장응선(藏應選) 에 의해 취홍(吹紅),
취청(吹靑), 요황(窯黃), 요자(窯紫), 요록(窯綠) 등이 시도되었고
또 랑정극(郞廷極) 에 의해 랑요홍 (郞窯紅)이 성취되었으며, 옹정(擁正) 기에
들어 분채(粉彩), 법랑채(琺瑯彩) 가 출현하여 화려한 유상채의 절정 을 이루었습니다.


건륭(乾隆)시기 기묘하고 찬탄할 만한 제자(制瓷) 기술로 기교 넘치는 조형이 자기에 시도
되면서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서양과의 활발한 교류와 주문 자기 가 시작
됨에 따라 서양풍의 문양도 유행하게 되어 유럽 왕실에 까지 중국 자기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경덕진의 도자는 오랜 전통 을 가지고 제작되다가 송대에 그 독특한 유색인 영청자
(影靑瓷) 의 출현으로 명성을 얻었고 원대를 거쳐 명ㆍ청대에는 상공업 도시 번영과
함께 중화민국(民國) 초기에 원세개가 복구 하여 지금 까지 그 존재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도자기의 나라 중국....... 한나라시대 부터 청나라까지
시대별로 도자기가 변해온 사진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 송나라의 청자가 고려에 전해져서
더욱 발달한 것이 "고려청자" 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고려청자 이전의 자기가 없습니다.
중국 송나라에서 완성된 청자가 바로 도입되었으므로....
고려 광종 9년(958) 송나라 사람 쌍기(雙冀) 가
중국의 과거제도를 가져왔는데
고려청자 기술도 그의 소개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