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리 녹녹하지 않음을 갈수록 실감한다.
사람들의 생활이란 매우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거기서 거기로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열에서 언니도 제외 될 수는 없었나 보았다. 자식들 결혼시킨 뒤 좀 편안해지는가 했는데 주 닷새를 손자녀석을 키워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젊어서 제 자식 키울 때와 다르게 힘들어하면서도 더 정성 드려 키우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곱던 자태가 조금씩 사라지니 옆에서 보기가 안쓰럽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문에 살며시 열쇠를 밀어 넣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찰칵, 탁 소리를 내면서 문은 열렸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조금씩 내려앉는 가을볕에 분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서 머리를 맑게 한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마당을 건너고 있다. 벌써 누구인가를 감지했는지 다섯 살 난 꼬마 녀석의 반갑다는 소리가 현관 밖으로 울리고 있다.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가 초식공룡 스테고사우루스와 브라키오사우루스간에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초식공룡이 육식공룡에게 밀려나 잡혀 먹히고 말았다.
거실구석 주방 식탁 밑 이층계단으로 밀리다보면 죽었다고 아니 잡혀 먹혔다고 벌러덩 두러 눕거나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공룡놀이 하나가 끝날 때가 있다.
어떤 하루는 해룡이 된다. 바다 속을 다니면서 상어도 만나고 ①아켈론도 만난다. 그 중 가장 큰 흰 긴 수염고래를 만나면 무척 고생을 한다. 육지의 싸움보다는 물 속의 싸움이 더욱 힘이 드는 것이다. 방바닥과 마루바닥에 엎드려 팔 다리를 들고 배를 밀면서 허우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익룡이 되는 날은 펄펄 날아 먹이를 낙아 채어야 했다. 더욱이 알을 갖고 넓은 바다를 날다 떨어트리는 흉내를 낼 때는 싱크대나 욕조를 향해 뛰었다.
기후의 변화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공룡들이 얼어죽었고 식물들도 죽어갔다. 초식공룡들이 죽자 초식공룡이 그들의 먹이었던 육식공룡들도 죽었다. 모든 공룡들이 다 죽었을 때 우리 둘은 서로 웅크리고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얼마 후 다시 우주를 떠돌던 커다란 운석(隕石)들이 지구와 부딪치면서 지각변동에 의해 공룡들이 최후의 죽음을 당했다고 하면 다시 하루의 공룡놀이는 끝이 난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새로운 놀이 하나가 더 늘었다. 초능력을 발휘하는 ②「마법전사, 미루와 가훈」이「암흑의 마법전사」들과 싸워서 승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미루 가훈이 되면 좋은데 「암흑의 마법전사」가 되면 애꾸눈 후크선장으로 변신을 해야한다. 한쪽 눈을 가리고 한쪽 손에는 갈고리를 쥐고 피터팬과 대적을 하는 것이다. 꼬마 놈이③‘요 요’로 얍 얍 얍을 외치며 덤비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생각해도 완전히 아이가 된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언니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꼬마 녀석과 놀아주기로 시작한 일이 스스로에게 활력을 주고 있음을 느낀다. 대문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서는 것도 꼬마 녀석에게 재미와 흥미를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오늘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궁금증이 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암흑전사의 왕비, 백장미는 편히 의자에 앉아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 신경을 바짝 서야한다. 신체부분 어디든지 맞히면 승리자라는 것을 알아 꼬마 녀석은 무조건 공격적이기에 철저한 방어가 필요했다.
꼬마 녀석은 벌써 공격을 배워 가는데 나는 때늦은 방어력을 익히고 있다. 삶은 살아가면서 배운다더니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러고 보니 생각지도 않은 공룡의 역사를 고생대에서부터 시작해 중생대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꽤게 되었다는 것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꼬마 녀석에게 물었다.“너는 공룡학자 할거지”. “사람들이 언젠가는 공룡이 될 수도 있어”라고 엉뚱한 답을 한다. 그래서 자기는 마법전사 미루 가훈처럼 텔레파시를 발휘하는 용감한 전사가 되어 공룡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살 꼬마 녀석의 생각치고는 너무도 놀라운 발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거대한 자본들이 소수를 잡식하는 공룡 적 지배형태임은 틀림이 없다. 갈수록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세계는 허리케인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의 재해로 종종 몰아넣고 있다. 또한 끈임 없이 터지는 전쟁과 지진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언젠가는 기후의 변화에 의해 떠돌던 거대한 운석들이 정말 떨어지는 날 우리 모두는, 나도 아이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지구는 인간들이 쏟아내는 불순물에 의해서 자연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다 보면 지구의 모든 것들은 지각변동에 의해 사라지고 정말 파충류만 남는 고생대로 다시 되 돌아가 새로운 신천지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① 아켈론 : 파충류로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바다거북. 갈고리 모양의
부리를 이용해 조개를 잡아먹음
② 마법전사, 미루 가훈 : K B S 2. 오후 6 : 40 분 어린이 연속극.
③ 요 요 : 어린이 연속극에서 만들어낸 텔레파시의 빛을 내는 요술장난감.
첫댓글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나 놀이에서에서 얻은 발상이 언제부턴가 지구에서 서서히 진행돼가는 개벽을 감지할 수 있다는 혜안을 높이 사고싶습니다.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몰라도 지구가 변화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