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0.3.21.(맑음)
위 치: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출발지: 대왕암(11명)
코 스: 반구대 암각화- 통도사- 부산- 펜션숙박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히는 통도사 가는길에 반구대 암각화를 들려 보기로했다.
위치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대곡리의 대곡천 중류의
암벽에 위치하는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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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앞에는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봄을 부르는 햇살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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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끝에는
연둣빛 봄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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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반구대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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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는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어 안내 사진을 담아왔다.
아래 사진은 반구대 암각화 현장조사를 하기 위한
설치가 되 있었고 접근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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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보(제285호)이자
세계 최고수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하루가 다르게 모래먼지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고
세계 최고의 보물을 물려받고, 나아가 뒤늦게 국보로까지 지정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하루빨리 개선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과 관계기관의 각성을 촉구하는
김형오의장은 3/26일 기자회견도 갖고 두 차례에 걸쳐 직접
반구대 암각화 현장조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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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총림문
통도사에 새로 조성된 총림문이다.
현판에는 '영축총림'이라는 큰 현판이 매달려 있다.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 기관인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절의 종가를 이르는 용어로 우리나라에는 해인사(가야총림),
통도사(영축총림), 송광사(조계총림), 수덕사(덕승총림) 등의 4개 사찰이 지정되어 있다가
백양사(고불총림)가 총림으로 승격하여 총 5개의 대사찰이
'총림'이란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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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부도밭
양산 통도사에서 수행하신 고승대덕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들이 석당간 앞에 가지런히 줄을 지어 서있다.
몇 사찰을 다녀보았지만 통도사만큼 부도가 많고 단장을
잘 해놓은 곳은 처음인 것 같았다.
옛 사찰의 부도밭 정취와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수없는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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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성보박물관
도난·훼손 등 위험요소가 있는
사찰 전래의 문화재들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 전시하는 한편,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적으로 1987년 문화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찰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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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일주문
사찰이 시작되는 곳을 알리는 문이 바로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2개의 기둥이 나란히 한 줄로 세워져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다른 건물들이 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통도사 일주문은 4개의 기둥으로 삼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일주문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주춧돌 삼아 기둥을 세운 맞배지붕으로
거대한 지붕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워 힘을 분산시키고자 하였다.
이 굵고 힘 있는
글씨를 쓴 사람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그의 하늘거리는 석파란(石破蘭)에 익숙해진 눈에
큰 집안 맏아들 같은 뚝심이 느껴지는 글씨는 의외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절집이라는 자부심에는 잘 부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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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고목들이 마주하는 개천에 분수가 시원하고
힘차게 솟고 그 사이엔 무지개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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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홍매화는
사진가들이 봄이면 선호하는 곳이다.
지금은 꽃도 져가고 광각렌즈론 꽃 담기가 어려워
가까이 다가 서지도 못했지만 그 빛은
새색시의 홍조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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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영산전
통도사 하로전의 중심법당인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으로 석가모니불 주변에는 거대한 팔상탱화를 안치하였다.
영산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팔상탱화를 안치한 법당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팔상전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다.
통도사 영산전은 좌우에 극락전과 약사전을 동서에 배치하고
하로전의 중심 법당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의 단청과 색상도
옛 모습을 잘 갖추고 있는 법당으로 한 눈에
보기에도 정갈하고 깨끗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석등과 석탑이 고풍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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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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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사방으로 현판을 달았으니
동쪽에 대웅전(大雄殿). 남쪽에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 그리고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光殿)이다.
남쪽 금강계단 현판의 글씨가 낮 익으니
바로 일주문 현판을 썼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이다.
빛바랜 단청 속의 글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고풍스런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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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단(金剛戒壇)
통도사의 상로전은
말할것도 없이 석가모니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다.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그 정성이 오죽하였겠는가!
금강계단 앞에는 석등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돌문으로 장식하고 함부로 출입을 금하고자
돌난간을 두른 정성을 들였다. 불가에서 가장 소중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답게
한 껏 격식과 형식을 차려 금강 계단을 꾸며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상징이며, 중심이고
통도사의 창건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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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개산조당
개산조당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스님을 모신 해장보각으로 통하는 문이다.
형태가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는 우리네 사대부가나
사당에서 보이는 솟을 삼문의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축미에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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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대웅전 뒤에 있는 연못이
바로 구룡지이며, 용혈암은 통도사 입구 무풍교 근처에 있다.
옛날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본국으로 돌아와 통도사를 지으려고 하던 즈음이었다.
그 당시는 통도사 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이 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과 경을 읽으며 아홉 마리의 용에게
조용히 이 못을 떠나달라고 청하였으나 용들이 일절 응하지 않자, 법력으로
아홉 마리의 용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견디지 못한 용들은
제각기 앞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세 마리의 용은 달아나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었다.
당시 부딪힌 바위에 용의 피가 낭자하게 묻게 되어서
후세사람들이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다섯 마리 용은 통도사의
남서쪽에 있는 영축산 아래의 골짜기에 이르러 떨어져 죽게 되었는데,
그곳을 오룡골(五龍-)이라 부른다. 뒷산 중턱에 있는 검붉은 색의 바위는 이 용들이
흘린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한 마리의 용은 자장율사에게 통도사 터를 수호할 것을 맹세하자 자장스님이
조그마한 못을 하나 만들어 용을 살게 했는데, 그 못이 지금 통도사
대웅전 바로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인 것이다.
우측에 만세루, 앞에 대웅전,
그 사이에 범종각이 한눈에 보이고
아가씨가 동전을 던지고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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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처마가 이색적이라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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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고궁에서만이
만날 수 있는 봄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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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종주때 중간에서
통도사로 하산하는 이정표를 보았는데
영축산 자락이 통도사 뒤쪽으로
길게 펼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