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소 '뉘하운'. 배가 다니는 운하인데 주위의 파스톤 색상의 집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일곱번째 강연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유스호스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5시에 호스텔 지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6시에 오슬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 길었는데, 스님께서는 명상을 하시면서 대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9시5분에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하여 10시20분에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북유럽에 강연을 다니면서 스님 일행이 이용하고 있는 최저가 항공 ‘노르웨이 항공’.
공항에는 이번 강연 담당자인 임미숙님과 오늘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오재환 목사님이 마중을 함께 나와주셨습니다.
▲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이미숙님(왼쪽)과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오재환 목사님(오른쪽)
▲ 덴마크 코펜하겐은 자전거 도시란 것을 실감할 정도로 곳곳에 자전거가 많았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 한인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 스님께서는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목사님께 식사 기도를 청하니 목사님께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기독교식 예배를 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소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배움이 있었고, 최근에는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이곳 덴마크를 방문해주심을 무척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코펜하겐의 주요 유적지를 안내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덴마크에 오신지 24년이나 되신 분입니다.
덴마크는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모든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덴마크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며 걸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시청 앞 광장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입니다. 안데르센은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 주옥같은 동화작품들을 저술해 전세계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 덴마크의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 안데르센 동상
도심 한복판을 걷다가 큰 교회 앞에 도착했습니다. 교회가 크고 웅장해서 덴마크의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4층까지 올라갔지만 예배당은 없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전시회만 열리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교회 외벽에 “I'm not a church" 라고 크게 현수막이 걸려 있어, 스님께서도 크게 웃으셨습니다.
▲ 스님을 웃게 한 교회 앞에 적힌 “I'm not a church" 문구.
아마 많은 여행객들이 비슷한 오해를 많이 했나 봅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성당이 종교의 본연의 역할보다는 관광 또는 숙박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계속 걸으니 배가 들어오는 뉘하운(신항구) 운하에 도착했습니다. 운하의 양쪽에는 파스톤 색상의 각양각색의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식을 할 수 있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스님께서도 “정겹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 뉘하운 운하
뉘하운 운하를 지나니 바닷가 부두가 나왔습니다. 건너편에는 웅장한 오페라하우스가 보였는데, 오슬로에서 본 오페라하우스가 생각나면서 서로 더 웅장해 보이려고 경쟁을 하는 둣해 보였습니다.
수변 지구를 따라 조금 더 걸으니 광장을 둘러싼 네 채의 화려한 저택들로 이루어진 아말리엔보르 궁이 나타났습니다. 이 궁전은 크리스천보궁의 화재로 1794년 이래 왕실 처소로 이용되어 온 곳인데, 지금도 여왕 가족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 행사 때는 2층 테라스에 여왕 마르그레테 2세가 나와서 손을 흔드는데 많은 덴마크인들이 운집한다고 합니다.
▲ 덴마크의 여왕이 살고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
이곳은 덴마크의 유명한 명소라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이 있었는데, 스님을 알아보고는 많은 분들이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 했습니다.
▲ 스님을 알아보고는 너무나 반가워하는 한국인 관광객들.
아말리엔보르 궁 앞의 광장을 지나 프로데릭스 거리를 따라 내륙으로 가니 화려한 프레데릭스 교회가 나타났습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 딴 듯한 웅장한 돔을 가진 이 교회는 ‘대리석 교회’ 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교회 안에 앉아 잠시 기도를 하시고 나오셨습니다
▲ 프로데릭스 교회
교회를 나와 계속 걸어 카스테릭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이 요새는 별 모양의 성벽과 해자로 이루어져 무척 독특했습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요새의 성벽을 따로 조금 더 걸으니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인어 공주 조각상이 나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이 조각상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무척 외소해 보였습니다.
오재환 목사님은 덴마크의 교민 현황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덴마크에는 현재 약 300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 낙농업을 배우러 왔거나 국제 결혼을 통해 정착하신 분이 많고,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정착하신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분들도 많은데 덴마크에서만 대략 850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교민 수가 300여명 된다고 하니, 과연 오늘 강연에 몇 명이나 올지 걱정도 조금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연을 담당한 이미숙 보살님은 50명은 올 것이라며 자신 있게 말해서 스님께서도 웃으셨습니다.
요새를 모두 둘러본 후, 시내로 나와 버스를 타고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인 헬러럽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교회에 도착해서 강연 준비는 스텝들을 포함하여 스님까지 나서셔서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이 의자를 아무렇게 놓는 것을 보시곤 뒷사람의 시야가 앞사람의 머리에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시며 정성껏 의자를 다시 배치하셨습니다.
저녁 6시, 강연 시간이 되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20명 정도 올까 예상했는데 65명이나 와서 빈자리 없이 자리를 빼곡이 채웠습니다. 그동안 한인 행사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30명 모이기가 힘들었는데, 덴마크 교민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이 열린 Hellerup 교회 강당.
오늘 강연에는 특히 스웨덴 남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그저께 스웨덴 스톡홀름 강연이 있었는데, 스톡홀름 보다 코펜하겐이 거리가 가까워서 오늘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북유럽 4개국 강연을 마무리하시면서,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북유럽 하면 살기 좋은 곳이잖아요? 살기 좋은 곳에 살면서 힘들면 본인도 힘들지만 우리 인류 전체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 힘들면 북유럽에 가면 좋아지지 않겠느냐 생각하는데, 막상 여기 와보니 여기 있는 사람들도 괴롭다 하면 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괴로우면 자기 문제를 넘어서서 인류를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에요.(웃음)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 있거나, 괴롭거나 힘든 게 있으면 같이 대화를 나눠봅시다.”
오늘 강연에는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결혼 후 성격 차이로 남편과 많은 갈등을 겪고 도망치듯이 덴마크로 유학을 왔는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묻는 분, 한국 사회는 왜 덴마크 사회만큼 행복하지 못한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해외에 살다보니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데, 스님께 언제쯤 통일이 될 것이라 보는지 묻는 분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항상 남이냐 북이냐 하고 묻습니다. 이곳에 이주하고 나서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실 때 과연 통일은 언제 될 것이며, 통일은 과연 될 것인지, 된다면 어떤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이 통일에 대해 자주 물어보시는데 제가 답변을 항상 못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면 되지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픈 것이지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통일은 될 것입니다” 라는 것은 말할 수가 있지요.
그리고,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 묻는 질문은 외부 사람들은 그렇게 물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언제 될 것이지 묻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통일이 되도록 하면 통일이 될 것이고, 통일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언제 될 거냐고 묻기만 할까요? 통일을 누가 할 겁니까? 왜 자기는 빠져 버리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처럼 말하나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이냐는 질문은 옳지 않습니다.
통일 하는 것이 좋은가, 통일 안 하는 것이 좋은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막연히 ‘통일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하나도 안하게 됩니다. 통일이 되면 좋다 하지만 통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노력을 안 한다면 그것은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에 불과합니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 잡혀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통일을 하려면 어떤 문제가 예상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펴나가야 합니다. 현재 객관적인 조건은 예전에 비해서 우리가 통일을 하겠다고만 한다면 통일을 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 관계가 조금 유동적이 되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다는 말은 불안정해졌다는 것인데, 불안정해지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속도를 빨리 낼 수도 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기 때문에 통일을 하려면 하는 쪽으로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버려두면 통일이 어려운 쪽으로 기울 수도 있습니다. 독일도 통일할 때는 그동안 있었던 양대 세력 사이에 균형이 깨어지면서 유동적이 되니까 그 기회를 잡아서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반도도 중국의 부상에 따라 힘의 균형이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상황을 통일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외부 상황은 좋아졌지만 실제로 통일을 하려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까 통일의 주도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도 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나빠졌다고 볼 수 있어요. 통일을 주도할 세력이 없어졌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라는 집단 전체가 통일에 목을 걸 정도로 주도 세력이 있었어요. 남한에서도 이것에 동조를 하면서 통일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있었고요. 그런데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남북 중에 어느 한쪽이 전 민족적 관점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이냐 고민하는 세력이 없어져버렸어요. 남한은 분단 초기에 북한보다 열세였기 때문에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다루기에는 역량이 작았고 남한의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안에 있는 통일지지 세력들은 남한 정부와 갈등 관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지배세력들의 고민이 점점 체제 유지에만 집중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니 북한도 이제 통일 주도 세력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희망을 걸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던 남한 안의 세력들도 북한의 체제가 쇠퇴하면서 같이 몰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한 안에도 통일 주도 세력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남한의 발전을 넘어서서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남한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지도자들은 오랜 역사 경험에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북한은 지금 자기체제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고요. 민족 전체적으로 통일을 주도할 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외부 환경은 좋아졌는데 주체 세력은 미비한 이것이 지금 현재 우리 민족이 처한 형국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개념에서 남한 안에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가 남한 출신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남북 양측의 정치경제 시스템과 다양한 측면을 비교했을 때, 남한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고 북한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북한 중심으로 통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결책은 남한의 체제 시스템을 기본으로 깔고 이것을 조금 더 개선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방법이 옳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통일 안하겠다면 모르지만 통일 하겠다고 할 때는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더 있겠느냐 싶어요.
50년대의 적화통일 방식도 안 되고, 70년대의 남북 연방제 방식도 현실적으로 되기가 어렵고, 결국은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재 남한의 상태로는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통일 국가의 모델로서 현재 남한은 적절치 않습니다.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게 현재의 남한을 바꿔야 합니다. 남한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두 번째, 북한 입장에서는 이 안을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북한을 해체하고 흡수통일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이런 우려를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 내부를 분석해보면 3개의 계층으로 나눠집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을 보장해 줘야 하고, 생존권을 보장해 주려면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먹고는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인 중간층에게는 남북 간 경제협력이 되어서 통일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중국 제품 보다는 남한 제품이 훨씬 좋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통일의 중심 역할을 남한이 하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류층에게는 통일이 된 뒤의 신분 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체제 보장을 해주던지,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신분보장을 약속해 주던지 해서 이들이 통일 지향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과감한 정책을 취해야 통일이 가능합니다.
결국 주도하는 사람이 양보를 해야 합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양보하면 포용이라고 말하고, 힘이 약한 사람이 양보하면 굴복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남한이 북한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과 지배세력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합의점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남한 정부의 정책은 무릎 꿇고 빌면 지원하겠다고 하니 한발도 못나가는 것입니다. 대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과하면 대화한다, 이런 자세로는 안 됩니다. 대화를 먼저 시작하고 나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과를 해야 테이블에 앉겠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이 남북 간에 가로 놓여 있고, 이것을 둘러싼 국제 정세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국 힘만으로는 어려우니까 일본을 재무장시켜서 역할분담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을 그 밑에 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재무장한 일본 밑에 붙으려고 하지 않죠.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하자는 것이 미국의 요구인데, 한국은 일본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일본과 군사 협력하는 것이 중국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중국과 갈등이 생기고, 이걸 안 받아들이면 미국과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 있게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국가 이익을 위해 무조건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세력 변화 앞에서 통일 없이 미중 사이에 균형을 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한국은 미일 동맹체제로 편입되고, 북한은 현재까지는 잘 버티지만 내부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 중국의 체제 아래로 편입되면, 미중의 갈등 구조 속에 남북이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편재되어 지난 100년과 같은 고통을 또다시 보내야 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거대한 중국 세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과 등지지도 않는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는 미국의 힘도 필요하고 일본의 힘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는 반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과 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일본과 싸우면 앞으로 한국이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철저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일본 국민과 함께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일본의 군국주의를 반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협력을 하되 중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해야지 중국을 반대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수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반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미국의 평화주의자들과 미국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지 우리의 힘만으로는 미국의 정책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과의 협력이 돌파구를 열고 균형을 조금 깨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러분들에게 해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태어난 국가를 위해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여러분들이 기여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제시대 때 만주로 쫓겨나 힘들게 살았지만 그분들은 오히려 독립운동까지 하면서 희생을 치뤘잖아요. 사실은 국가가 그분들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치뤘고,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와서도 정부나 국가가 해준 것이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고 이것을 극복하는데 기여를 해주셨으면 해요. 이번 유럽 강연을 하면서 국적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이것은 도피적인 사고입니다. 한국 안에서 한국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내가 고국에 들어가서라도 해결을 해야 겠다 이렇게 보따리 싸서 들어올 생각을 해야지 도망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들어오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서라도 한국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댓글을 하나 달든, 편지를 하나 쓰든, 모금을 하든, 뭔가 한국이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
남북 간의 갈등에 너무 한쪽 편에 편들지 마시고, 여기서는 북한까지도 이해하면서 어떻게 지금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에 우리들이 기여할 수 있느냐, 우선 인도적 지원 문제부터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해외에 사시는 많은 교민들의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 스님 답변을 들으면서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공감했습니다.
마이크 시설이 옆 공간과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마이크 사용을 하지 못하고 소형 마이크를 사용하다보니, 스님께서 목소리를 많이 높여야 했습니다. 목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치고 많은 분들이 스님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실무를 맡으신 임미숙 보살님을 비롯한 여성회 모임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 해주신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오늘 숙소인 박혜정 법우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박혜정 법우님은 한국에서 깨달음의장을 하고 수련 바라지 봉사와 희망세상 강연 봉사를 통해 정토회와 인연이 깊은 분입니다. 덴마크에 와서 정착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참 적응해 가고 있는 시기인데, 오늘 스님 일행을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룻밤 재워준 박혜정 법우님에게 금강경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 덴마크에서 하룻밤 머물고 갈 수 있게 해준 박혜정 법우님.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은 독일 함부르크로 이동합니다. 내일은 기차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넘어 독일로 넘어가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