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피아노 트리오 Op.70-1 2악장 유령
영화에서는 세 여인이 등장합니다.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부인, '안나 마리' 그리고 동생의 아내 '조안나'입니다. 쉰들러가 편지의 주인공을 찾기위해 이 세 여인을 차례로 만나면서 영화가 전개됩니다. 글의 순서는 반대로 되어버렸습니다. 1편에서는 칼스버드 호텔에서 간발의 차이로 베토벤과 평생을 어긋난채 살아간 조안나의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1편에서 안나 마리가 나오는 장면은 피아노 협주곡 황제의 초연 장면에서 청각장애를 일으키는 베토벤을 만나게 되는 장면, 그녀가 전쟁으로 아이를 잃는 장면, 그리고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해 쓰던 교향곡 3번 영웅의 표제에 보나파르트를 지우는 장면까지였습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하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 곡의 별칭은 2악장의 우울하고 신비로운 느낌때문에 유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806년 작곡된 곡으로 초연당시 영상과 같이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쳤다 합니다. 2악장의 불가사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는 당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체르'(Violin Sonata In A Major, Op.47 )
"음악은 작곡가의 감정을 느껴야 이해할 수 있다" 아주 인상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그 시대의 배경이나 작곡가의 여자, 삶 등 여러가지를 공부하는 이유도 그래서 아닐까요?
이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다음 기회에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 와 같이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톨스토이가 영혼을 자극하는 음악이라고 평했던 곡으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직후에 쓰인 곡입니다.
베토벤이 청각장애로 자살결심을 했던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사건 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오히려 만개해서 이른바 '걸작의 숲'이라는 황금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연도로 치면 대략 1802년 부터 1814년 정도의 기간인데, 이 시기에 교향곡 영웅, 운명, 전원등과 피아노 협주곡 황제 등이 작곡되면서, 한층 강인하고, 정신적이나 기술적으로 매우 충실한, 전인미답의 예술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시련을 극복한 힘이 눈부신 창작의 시기를 이끌었다고 할까요...
쉰들러는 안나 마리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바로 동생의 아내인 조안나의 이야기입니다. 조안나는 베토벤의 아이를 가졌으나 칼스버드 호텔에서 베토벤을 만나지 못하자 자신이 농락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의 동생과 결혼합니다. 베토벤 역시 조안나가 호텔에 오지 않았음에 좌절과 분노를 느낍니다. 한 순간의 오해가 두 사람의 평생을 갈라놓았습니다.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61번 1악장
동생이 죽고나자 베토벤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칼의 양육권을 조안나에게서 가져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을 음악가로 키우려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Bagatelle In A Minor For Piano, WoO 59, 'Fur Elise')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방황하는 칼에게 베토벤은 분노하게 되고...
교향곡 9번 합창 1악장, 피아노 협주곡 황제 2악장
베토벤은 쉰들러도 해고하고, 칼은 자살을 기도하게 됩니다. 조카를 자살까지 몰고갔다는 따가운 시선이 베토벤에게 쏟아지고, 대중의 놀림을 받습니다. 쉰들러는 안나 마리를 떠나 조안나에게로 향합니다.
교향곡 7번 2악장
교향곡 9번 합창
이제 다시 뒤로 돌아가서, 첫번째 여인인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부인과의 만남 장면은 3편에서 올리겠습니다.
베토벤의 실제 여성에 관한 짧은 기록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베토벤과 여성
베토벤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1801년에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서신에는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라는 글귀가 인용되어 있다. 이 편지는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의 딸이며 그의 피아노 제자인 테레제와 요제핀의 사촌인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부인에게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일명 〈월광 Mondschein〉으로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C#단조 작품 27-2를 헌정한 대상도 바로 줄리에타 백작부인이었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1803년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했고, 이후 베토벤은 그녀를 어느 정도 경멸했지만 커다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토벤은 그녀의 사촌인 요제핀에게도 결혼 신청을 했다(그녀의 전 남편인 폰 다임 백작은 1804년 세상을 떠남). 둘의 만남은 3년 정도 계속되었지만 베토벤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요제핀 가족의 압력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1810년에는 테레제 말파티라고 하는 자신의 주치의 딸과도 결혼설이 나돌았지만 이것 역시 무산되고 말아 결국 베토벤은 총각으로 남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죽고 나서 잠겨진 한 서랍에서는 여성에 대한 베토벤의 심정과 관련해서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3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편지들은 '불멸의 여인' 앞으로 씌어진 것들로서 베토벤은 이 편지들을 쓰고 난 뒤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고 서랍에 보관해 둔 셈이다. 이 편지의 내용은 시적 정서에 잔뜩 부풀려진 것에서부터 건강과 생활의 불편함에 대한 사소한 불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따라서 이 편지들이 문장 연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특정인에게 보낼 의도로 씌어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달과 날은 적혀 있지만 연도는 적혀 있지 않은데, 여러 가지 추측들 중 1801~02년, 1806~07년보다는 1811~12년일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물론 수신인이 누구인지는 추측할 수 없다.
20대 때, 동해 바다가 너무 보고 싶어서, 토요일 저녁 부산에서 강릉가는 밤 열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경포대에 도착해선, 오전 4시간 동안 바다에서 갖은 궁상을 떨다가, 저녁에 버스 편으로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때 워크맨에 준비해간 테이프가 베토벤의 황제였습니다. 저 길이 험난했습니다. 기차는 두번을 갈아타야 했고, 좌석이 없는 완행열차라서 고생고생하면서 다녀왔다는.... 음악이 마음에 불어넣어 주는 힘이 없었다면 아름답게 기억될 수가 없는 길이었습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입니다. 혼자서 밥먹기, 혼자서 등산하기, 혼자서 술먹기 - 외상도 잘 하고, 길다니면서 노래 부르기 - 후배 녀석이 길가다가 보고는, 아예 혼자 감정에 취해서 지휘하는 것처럼 팔까지 휘젓고 다닌다는 소문을 낼 정도로... (30분에 한번 정도만 그러지, 대부분 얌전하게 다니는데... 오해였을 겁니다.), 백미는 1/5000 지도 준비해서 부산에서 첫 지하철 타고 낙동강변에 내려서 마산까지 혼자 걸어갔다가 저녁에 친구하고 술 한잔하고 돌아온 일이었을 겁니다. 김해에서 장유가는 길이 아주 좋습니다. 낙동강 지천이 많아서 유유자적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부산서 마산까지 걸어다닌다는 소문도 났지만...
베토벤이 1770-1827년, 모짜르트가 1756-1791년의 생을 살았습니다.
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모짜르트의 생애는 어떤 면에서 가난에 찌들린, 생활을 위해 음악을 만들던 음악노동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던 베토벤 또한 만년에는 가난에 찌들린 생활을 했습니다.
모짜르트에 대한 영화 '아마데우스'가 1984년에, 그리고 이 영화는 199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잠시 엿보면서, 그들 음악에 대한 감동이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마데우스는 전에 써 놓은 글이 있는데 정리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올려 주시는 정성에 고마움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가을 추억 많이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