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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최선을 다한다
아직 큰스님께 전달되지 못한 <야곰야곰 증도가 깨달음의 노래5>를 직접 드리고 싶어서 KTX를 타고 부산에 갔다.
가는 동안 큰스님께 빌려온 책 신심명을 열심히 읽었다.
함께 화엄전에 가주신 재무스님이 책이 어떤가 물어보시길래 마음에 한 번 새겨 보려고 암기하듯 말씀드렸다.
“좋은 일이 있다면 반드시 나쁜 일이 온다. 나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 그런 것이 인연과보인데 사실은 모두 공이다. 이해가 안 되거든 6바라밀을 행하라. 특히 보시와 기도를 하라. 이런 말씀이 반복돼요. 200번쯤 반복되는 것 같은데 저는 100번은 읽으면서 내려왔어요. 증도가를 공부한 끝에 실천 강령으로 읽혀져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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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염화실지도 원하시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재고가 쌓여서 궁리 끝에 범어사에 허락을 받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는데 그것만 가져가게 하기가 그래서 <108자재어>도 같이 공양하고 있다고 큰스님께서 아침 법문 중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경집으로 낸 <108자재어>를 큰스님께서 법공양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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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서 아직 공양전이셨다. 대선스님이 큰스님 밥상을 한 장 찍으라고 하셨는데, 큰스님께서 책을 가지고 들어와 보라고 하시고는 사진에 책 제목이 바르게 나오도록 ‘책을 돌려서’ 들어주셨다. 아직 한 권이 더 남았지만 이로써 오래 걸려 나온 증도가가 스스로 점안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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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원각사에 대웅전 탱화 점안식을 다녀오신 회장스님이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사진으로 본 원각사 탱화들은 한국의 사찰보다 더욱 한국스럽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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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의 사업부 부장님이 오셨는데, 회장스님이 일부러 청했다고 하셨다. 이제 문수경전연구회가 광고비를 부담하기 힘들어서 ‘잠정적으로 방송을 중지하자’고 제안하셨는데 사업부 부장님과 입사 때부터 이 프로그램을 맡아온 김경훈PD가 난감해 하셨다. 서로를 안타까워 하시는 마음들과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곤란해하시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용학스님이 ‘올해는 내 강사비로 광고비를 내겠다’고 하시면서 회의가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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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증도가를 인쇄하는데 종이값이 오르고, 책도 두꺼워져서 비용이 배가 되었다. 그런 내용을 보시해주기로 하신 여초스님께 설명해야 될 때 진땀이 났다. 종이 한 페이지도, 한 컷의 방송도 ‘갚아야 할 물 한 방울’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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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거사님도 항상 돈이야기가 말하기 힘들다고 하셨었다. 오랜만에 큰스님을 뵈었는데 큰스님께서 삼영음반을 매월 보시하기로 하셨고, 그렇게 보시하는 분중에 제일 많은 금액을 내시기로 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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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큰스님께서 법문하시는 <유튜브 염화실TV>화엄경은 길고 긴 십회향품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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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의 사바세계에 다시 오시는 부처님을 맞으려고, 문수선원의 등들은 앙상하게 종이를 벗었고, 거기에 사경반 법우님들이 울력하여 다시 새 종이를 입혔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三
[托法進修成行分 第三]
[成行因果周]
[第八會 一品 二千行門]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一
四 . 普賢菩薩의 二百答
반갑다.
이세간품 문답편 지난 시간에 조금 하다가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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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드린 어른스님의 신문기사 프린트를 보자. 어른스님께서 살아오신 일생을 하정은 기자님께서 잘 정리하셨다.
제가 QR 코드 나눠드린 것에서 사진을 서너 장 뽑아서 달라이라마, 성철스님, 팃낙한스님과 어른스님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잘 활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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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당신이 좋아하시는 증도가 <깨달음의 노래 5> 다섯 번째 권이 나와서 어른스님께서 법보시로 회향하셨다.
어른스님께서 나오셔서 같이 한번 서문도 읽어보시고 한 구절 읽어보시면 더 좋았을 텐데, 건강은 좋으신데 오늘 좀 내려오실 형편이 안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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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8자재어>는 잘 아시다시피 동그랗게 똘똘 뭉쳐있는 정사각형 책이었는데, 늘씬하게 사경집으로 나와서 어른스님께서 이번에 1차적으로 3천 부를 찍어서 배포하셨다. 그동안 이 책을 17만 부, 거의 한 20만 부 가까이 법보시하셨다.
거기에 보태어 저도 여러분들께 유인물 같은 것을 좀 편하게 보관하시라고 아름답게 파일홀더를 만들어서 나눠드린다.
바깥쪽에 프린트된 법성게는 수성펜으로 한문 사경을 하시고 또 지우면서 영구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글씨를 하얗게 써놨다. 먹으로 쓰시고 물로 닦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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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께서 익숙하게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요즘 수업을 맡아서 큰절에 와 있다. 학인도 없이 강주 혼자다.
화엄경 연구원장이라는 이름도 걸고, 방만 제가 전에 쓰던 방 그대로 쓰고 있다.
요번 졸업식 날 학인스님들 세 분이 졸업하고 나가고, 시절이 어렵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치문반 한 서너 명이 들어오고 사집 해서 한 일곱 명이 들어와서 요리저리 모으면 아홉에서 열 분이 계실 것 같다.
졸업식 날 ‘이순신 장군한테는 열두 척의 배라도 있었는데 저는 돌아오니까 제가 심어놨던 매화도 다 베어져 없고, 아끼던 아름드리 백오동도 없고, 학인은 어디 갔는지 하나도 없고, 빼짝 마른 국화만 있는 거 같다’라고 말했었다.
어제 어른스님께도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학인들을 데리고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공부하는 것이 제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신심나고 고무적인 일이다.
가까이 계신 스님들은 오히려 드물게 참석하실 정도지만 먼길에서 이렇게 많이들 오셨다.
거기에 걸맞게 충실한 강의도 해드려야 되는데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다.
학인스님들 한 일곱 명 정도를 데리고 제가 살아야 되는데 가만히 새벽에 앉아서 큰 방 기둥을 세어보니 강당 기둥이 한 60개쯤 되었다. 기둥보다도 대중이 적다.
기둥은 이만큼 많은데 기둥 같은 우리 후대가 없으니까 불교가 어떻게 되겠는가, 기둥만 멀쩡하고 집은 멀쩡한데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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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눠드린 신문 어른스님 인터뷰에서 제가 줄을 그어 놓은 대목들이 있다.
어른스님께서 67년도에 역경원에 들어가셔서 법정스님이나 운허스님이나 탄허스님 같은 대종장들, 이기영 박사 같은 분들을 모시고 역경 연수원 1기가 되셨다.
출가 열 분, 재가자 열 분 이렇게 한 스무 분 정도 선발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 맞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시험을 쳐서 뽑힌 분들 중에 어른스님이 수석으로 들어가셨다. 당신은 이런 말씀을 직접 잘 안 하시는데 제가 안다.
우리도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면서 ‘어떻게 공부하고 나아가야 될 것인가’ 이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다.
어른스님께서 역경원에 67년도에 가셨을 때 이미 ‘불교 공부 좀 한다’ 하는 실력파들이 다 모이셨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운허스님이 가르쳐 보니 번역할 실력, 역경할 실력, 한문 실력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지금도 논문이라는 학식적인 책을 가지고 직선적으로 평면적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얼핏 불교가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우러나오는 맛이 없다.
운허스님께서는 일단 6개월간 번역을 하려 하지 말고 ‘연수생들 혼자서 글을 좀 읽어라’라고 권유하셨다고 한다.
여기 신문기사를 보면 어른스님은 그때 맹자를 택하셔서 맹자를 한 2천 번 읽으셨다고 한다.
다른 스님들 중에는 장자를 읽으신 분도 계셨고, 능엄경을 택해서 몇백 번 읽으신 스님들도 계셨다.
스님들이 6개월 동안 밤낮없이 그렇게 책만 계속 읽었다고 한다.
저도 학인들을 가르칠 때 주로 그렇게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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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 삼사일 전에도 오늘 여기도 참석하신 스님인데 동국대 대학원도 다니면서 공부도 잘하신 젊은 스님들이 ‘큰절에 온 김에 저도 같이 공부 배우고 싶습니다’해서 10년 20년 차 된 스님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자’고 하였다.
이렇게 주고받는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은데 일단은 그 스님에게 제가 말하기를 ‘먼저 기신론을 천 번은 모르지만 한 백 번쯤 읽어 보세요. 일단 책을 많이 읽어 보세요’라고 말씀드렸다.
빼짝 마른 볼펜처럼 되면 아무리 쥐어짜도 물이 안 나온다.
우선은 경전을 많이 읽고, 습득이 되어서 푹 익어져야 이렇게 흥건하게 우러나오는 맛이 있다.
어른스님 신문 인터뷰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 것이다.
저도 학인들을 가르쳐 보니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에도 간경하고 점심에도 간경하고 수시로 간경 소리가 안 끊어졌으면 좋겠다.
‘저는 구닥다리 같아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라고 학인들에게 먼저 많이 읽으라고 제안했다.
전에 제가 동화사에서나, 대학원장을 맡고 기신론 같은 것을 강의할 때는 수업 시작 전에 먼저 세 번을 읽고나서야 그다음 해석을 하고 번역하고 강의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딸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못하고 한번 읽고 해석하고 번역한다. 그렇게 되니 공부가 조금 얇다.
우리 전체 대중이 함께 세 번을 먼저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요 단락이 무슨 내용인지 확 들어온다.
그리고 같이 교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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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서 나온다. 그 생각이라는 것 중에 수승한 생각은 바로 이해를 수반하게 된다.
그 이해가 행으로 옮겨질 때는 세 가지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신업이고 하나는 구업이고 하나는 의업이다. 마음의 행동, 몸의 행동, 말의 행동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행위 동작이 우러나온다.
스님들도 충분히 그렇게 하시겠지만 이세간품 일곱 권에 대해서 계속 반복적으로 읽으셔야 된다.
이런 내용을 우리가 다시 한번 어른스님 인터뷰 말씀에 비춰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안 좋겠나 싶어서 이렇게 말씀드린다.
우리 학인 스님들도 계속 읽고 읽고 읽다 보면 한문이라는 것이 나중에 오랫동안 읽어서 푹 익어진다.
그러면 번역할 때도 저절로 우러나서 하고, 솜씨가 익어진 주방장처럼 된다. 아무 재료나 쭈루룩 만져도 손에서 솜씨가 익어져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져 나온다.
염불도 그렇게 익어져 나오고, 강의를 하든지 해설을 할 때도, 논강을 하거나 토론을 할 때도, 많이 읽어 놨던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나온다.
그렇지 못하고 생짜배기로 잡아 째듯이, 끼워 맞추듯이, 기계 조립하듯이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제 강의가 부족하더라도 그걸 보완하는 방법이 그렇다.
선배 스님들도 많이 계신데, 스님들께서 같이 쭉 간경을 많이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 진도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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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너무 분위기가 딱딱해서 말씀드린다. 이것을 하실 수 있다면 제가 지금 백만 원을 드리겠다. 오늘 봉투를 가져 왔다. 상금을 한번 걸고 첫수업에 들어가겠는데 요렇게 밑으로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배꼽을 깨물 수 있는 분께 백만 원을 드리겠다.
대선스님은 진짜 깨문다고 고개를 숙이시는데 성공하시면 백만 원 가실 때 바로 드린다.
이것을 깨물 서(噬)자 배꼽 제(臍)자 배꼽을 깨무는데 서제에 막급이라 미칠 수가 없다, 서제막급(噬臍莫及)이라는 말을 한다. 비슷한 말이 후회막급이다.
인신난득(人身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후회막급, 서제막급처럼 어디에도 도저히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317페이지 지금 우리가 하는 부분은 십신, 종성주라고 한다.
이것이 끝나면 발심주로 넘어간다.
(3) 菩薩의 十種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行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衆生行이니 普令成熟故며 一切求法行이니 咸悉修學故며 一切善根行이니 悉使增長故며 一切三昧行이니 一心不亂故며 一切智慧行이니 無不了知故며 一切修習行이니 無不能修故며 一切佛刹行이니 皆悉莊嚴故며 一切善友行이니 恭敬供養故며 一切如來行이니 尊重承事故며 一切神通行이니 變化自在故라 是爲十이니라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行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행이니 널리 성숙케 하는 연고이니라.
일체 법을 구하는 행이니 다 닦아 배우는 연고이니라.
일체 착한 뿌리의 행이니 모두 증장케 하는 연고이니라.
일체 삼매의 행이니 한결같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연고이니라.
일체 지혜의 행이니 알지 못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일체 것을 닦아 배우는 행이니 닦지 못할 것이 없는 연고이니라.
일체 부처님 세계의 행이니 다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일체 좋은 벗[善友]의 행이니 공경하고 공양하는 연고이니라.
일체 여래의 행이니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는 연고이니라.
일체 신통한 행이니 변화가 자재한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행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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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행(十種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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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행(有十種行)하니 : 열 가지 행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일체중생행(所謂一切衆生行)이니 : 이른바 일체중생의 행이니
보령성숙고(普令成熟故)며 :두루 성숙하게 하는 연고다. 여기 열 구절은 두 개씩 댓구여서 제가 두 구절씩 잘라서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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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구법행(一切求法行)이니 : 모든 법을 구하는 행이니
함실수학고(咸悉修學故)며 : 다 닦아 배우는 연고다.
이것은 사홍서원 중에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와 같다.
일체중생의 행과 똑같이 해서 중생을 성숙하게 시키는 연고이기 때문에 중생무변서원도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은 저절로 따라온다.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두 개를 묶어서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한다.
상구보리(上求菩提)는 무엇인가?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다.
중선봉행제악막작(衆善奉行諸惡莫作)과도 일맥상통한다.
또 고집멸도(苦集滅道)와도 상통한다.
고집의 고(苦)라고 하는 것은 악도에 떨어진 것이고, 집(集)이라고 하는 것은 악도에 떨어질 수 있는 원인, 인과다. 악업을 집(集)이라고 한다.
선업을 8정도라고 하고, 선업의 결과물을 멸성제의 멸(滅)이라한다.
여기는 사홍서원을 가지고 해놨다.
육조스님 말씀을 빌리자면 구송심행(口誦心行)이라,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입으로 열심히 외우고 마음으로 행해야 된다. 그래야 광명과 정혜제등(定慧齊等)이라, 선정과 지혜가 가지런히 나타난다. 그렇지 않고 입으로만 천 번 만 번 읽어봤자, 광명이 불생이다. 지혜와 선정의 광명이 돋아나지 않는다, 라고 해놓았다.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본심에서 일어나고 행동은 삼업으로 규정지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도다.
두 구절이 댓구로 되어 있다.
그다음에 3번 4번은 어떻게 해놨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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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근행(一切善根行)이니 :일체선근행이니
실사증장고(悉使增長故)며 : 실사증장고며
일체삼매행(一切三昧行)이니 : 일체삼매행이니
일심불란고(一心不亂故)며 : 일심불란고다.
이 두 구절이 한 구절로 묶여진다.
이것은 지악지선이라. 악을 그치고 선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온갖 착한 뿌리의 행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현수품에 나오는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장양일체제선법(長養一切諸善法) 단제의망출애류(斷除疑網出愛流) 개시열반무상도(開示涅槃無上道)’다.
모두 외우고 있는 그런 구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세간품 중에서도 보현보살의 답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나왔던 화엄경의 모든 이론적인 것을 그 수준에 따라서 실천할 수 있는 근거, 수행 지침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조리있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단계다.
착한 뿌리, 선근행이니 모두를 증장하게 하는 까닭이고 또 일체 삼매의 행이니 한결같은 마음이 산란치 않는 연고다.
삼매의 행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굉장히 보드라와져서 자비로운 것이다.
그런 삼매의 행으로 가려면 탐진치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일심이 잡난하지 않다. 일심이 잡난한 것은 탐진치 때문에 흔들려서 그렇다.
그것이 악을 그치고 선을 지향한다는 그 두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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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체지혜행(一切智慧行)이니 : 일체 지혜의 행이니
무불요지고(無不了知故)며 : 무불요지고라. 부처님을 다른 이름으로 무불지, 무불통지라고 한다.
부처님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사(已捨)라. 이미 다 버렸다고 해서, 부처님을 다른 이름으로 ‘무불지(無不知)나 이사(已捨)다’라고 한다.
여기가 그런 대목에 해당되겠다.
모든 지혜의 행이니 부처님이 복과 지혜를 갖추셨잖은가.
알지 못함이 없는 연고이고
일체수습행(一切修習行)이니 :일체 모든 것을 닦아 배우는 행이니
무불능수고(無不能修故)며 : 닦지 못할 것이 없는 연고다.
이런 것은 기신론 같은 데 잘 나온다.
‘닦아도 닦는 바가 없고 얻어도 얻을 바가 없다’ 이런 것을 지관수행에 있어서 묘지심관이라, 묘한 묘사마타로써 아주 심오한 비파사나로써 만행무궁이라.
보현보살을 그렇게 표현한다. 닦지 못할 만행이 없다, 바라밀행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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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불찰행(一切佛刹行)이니 : 일체불찰행이니
개실장엄고(皆悉莊嚴故)며 : 개실장엄고며
일체선우행(一切善友行)이니 : 일체선우행이니
공경공양고(恭敬供養故)며 : 공경공양고다. 이 두 구절이 댓구절이 되겠다. 여기서는 바라밀행을 잘 닦아서 결국은 불국토를 장엄한다 이렇게 보면 되겠다.
온갖 부처님 세계의 행이니 개실장엄고라.
잘 아시다시피 장엄이라고 하는 것, 장식이라고 하는 것은 예식이고 예의고 존중과 존경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항상 하는 상용의례나 예식이나 장례식이나 결혼식이나 관혼상제 인간의 중대사에는 항상 음식이며 꽃이며 장엄이 나온다. 예의있게 사는 것을 장엄이라고 한다.
지극한 신심이 무르익어서 법당을 장엄하는 것은 존중과 존경과 신심 공덕으로 하기때문에 바라밀행이다.
부처님 가슴에 만(卍)자가 있는 것도, 육계 정상이 있는 것도, 백호미간이 있는 것도, 전부 바라밀행의 공덕으로 이루어진 형상의 모습이다.
무형의 바라밀, 무주의 바라밀행, 무상의 바라밀 공덕의 힘으로 중생들에게 유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처님의 32상 80종호라고 이야기한다.
일체 선지식의 행이다. 선우라고 하는 것은 선지식이다, 선지식의 행이니 공경하고 공양하는 연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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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여래행(一切如來行)이니 : 일체 여래의 행이니
존중승사고(尊重承事故)며 : 존중하고 받들어서 섬기는 연고며
일체신통행(一切神通行)이니 : 일체 온갖 신통한 행이다.
도반을 존중하고 선지식을 존중하고 스승을 섬기고 이런 것은 아주 고집불통인 사람, 말 안 듣는 사람은 안 된다.
변화자재고(變化自在故)라 : 변화자재라. 이것을 화엄경에서나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선타바(仙陀婆)라고 한다.
선타바 척하면 알아차려야 된다.
천리준마는 채찍 그림자만 봐도 잘 달리는데 노둔한 말은 어떤가? 엉덩이가 갈라 터지도록 채찍을 두드려 맞아도 안 간다.
그래서 소금 수레나 끈다.
변화가 자재한 연고라는 것은 스승이나 도반을 존경하고 누구에게라도 잘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후배한테조차 불치하문(不恥下問) 하는 사람들이 변화자재한 이들이다.
아만스러워서 묻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똥폼만 잡다가 잘난 사람도 제대로 안 모시고 자기만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지혜행(則得如來無上大智慧行)이니라 :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행을 얻느니라.
앞에서 행이 일어났다.
우리가 행동을 할 때는 악한 사람을 만나든지 천한 사람을 만나든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서 이세간품에서 행이 일어난다는 것은 반드시 선지식을 의지하여 나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선지식은 언제 만나야 되느냐? 우리가 이세간품 처음 시작할 때 즉득친근선지식이라고 배웠다.
불교 경전은 전부 다 즉시경전 내지 즉득경전이다.
‘즉득, 속히’ 이런 경전이다.
(4) 菩薩의 十種善知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善知識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令住菩提心善知識과 令生善根善知識과 令行諸波羅蜜善知識과
令解說一切法善知識과令成熟一切衆生善知識과 令得決定辯才善知識과令不着一切世間善知識과 令於一切劫에 修行無厭倦善知識과 令安住普賢行善知識과 令入一切佛智所入善知識과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착한 뿌리를 내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바라밀다를 행하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모든 법을 해석하여 말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중생을 성숙시키는 선지식이니라.
결정한 변재를 얻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일체 겁 동안 수행하되 게으르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며, 보현의 행에 편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간 데 들게 하는 선지식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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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선지식(十種善知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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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선지식(有十種善知識)하니 :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하등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소위영주보리심선지식(所謂令住菩提心善知識)과 : 이른바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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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선근선지식(令生善根善知識)과 : 착한 선근을 내게 하는 선지식이요
영행제바라밀선지식(令行諸波羅蜜善知識)과 : 모든 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선지식이다.
사실 이세간품은 총체적으로 정리하기 때문에 쭉쭉 읽어 나가면 제일 신심이 난다.
영해설일체법선지식(令解說一切法善知識)과 :모든 법을 일목 요연하게 아주 통쾌하게 해설하는 선지식이고
영성숙일체중생선지식(令成熟一切衆生善知識)과 : 일체중생을 잘 성숙시키는 선지식이다.
영득결정변재선지식(令得決定辯才善知識)과 : 의심없이 완벽하게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수 있는 선지식이며
영불착일체세간선지식(令不着一切世間善知識)과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달라붙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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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일체겁(令於一切劫)에 : 온갖 겁 동안에, 일체겁 동안에
수행무염권선지식(修行無厭倦善知識)과 : 수행무염권이라.
천년만년이 되더라도 하루처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싫어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없는 이들이다. 수행을 하되 게으르지 않게 결코 염증을 내지 않는 선지식과
영안주보현행선지식(令安住普賢行善知識)과 : 보현행에 편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영입일체불지소입선지식(令入一切佛智所入善知識)과 : 일체 부처님께서 들어가신 그 지혜에 우리도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선지식이며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선지식에서 지(知)는 선(善)을 모르는 사람들, 착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착하게 하는 것이고, 식(識)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악한지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래서 모든 이익은 선지식으로부터 나온다.
치문 같은 데서 ‘선지식은 인중의 최대 인연이다’라고 우리가 배웠다. 선지식은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인연, 인중의 최대 인연이라, 부모보다 더 소중하다.
이 세상에 만난 사람 가운데 최대 인연, 가장 큰 인연이 선지식이다. 부처님도 그 선지식을 찾아서 육사외도를 모셨다가 떠나고 또 떠났지 않은가.
선지식은 어떤 분이냐?
선지식(善知識)은 인중(人中)의 최대인연(最大因緣)이니 능화중생(能化衆生)이라, 모자라는 사람들을 능히 교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마치 태양이 한번 내리쬐어서 만 곡식을 한꺼번에 다 익게 할 수 있듯이 능화중생하며 득견불성(得見佛性)케 한다.
끝내는 번갯불처럼 번쩍 우리의 본지풍광을 볼 수 있게 하는 분들이 선지식이다.
선지식을 이야기했으면 그다음에는 ‘부지런히 부처님의 공덕을 닦아라’ 하는 내용이 나온다.
(5) 菩薩의 十種勤精進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勤精進하니何等이 爲十고 所謂敎化一切衆生勤精進과 深入一切法勤精進과 嚴淨一切世界勤精進과修行一切菩薩所學勤精進과 滅除一切衆生惡勤精進과止息一切三惡道苦勤精進과 摧破一切衆魔勤精進과願爲一切衆生하야 作淸淨眼勤精進과 供養一切諸佛勤精進과 令一切如來로 皆悉歡喜勤精進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如來無上精進波羅蜜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지런한 정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법에 깊이 들어가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일체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보살이 배울 바를 수행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일체 중생의 나쁜 짓을 제멸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삼악도의 고통을 쉬게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일체 마(魔)의 무리를 꺾어 버리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일체 중생을 위해서 청정한 눈이 되기를 서원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며, 모든 여래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정진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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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근정진(十種勤精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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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의 부지런한 정진이 있다. 스님들은 ‘수고하십시오, 고생하십시오’ 이런 소리를 안 한다. 고(苦)라고 할 것이 잊어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근념하십시오’라고 인사하는데 그 뜻은 ‘생각을 부지런히 해서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집착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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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근정진(有十種勤精進)하니 : 유십종근정진하니, 정진바라밀이 되는 사람은 악업장이 소멸이 된다고 한다.
인욕바라밀, 엔간히 참는 것만 가지고는 악업장이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욕바라밀 다음에 정진바라밀이 있다.
인욕하고 인욕하고 백 번 천 번 만 번 계속 인욕 속에서 업장이 소멸된다. 기신론 같은 데서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화엄경 제일 말미에 나오는 보현행원품이 정진바라밀이다.
화엄경 수행은 보현행원이라고 하고 그것을 알기 쉽게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방편 원, 력, 지바라밀이라고 해서 십바라밀을 이야기한다.
화엄경 십지품에 구체적으로 이론적으로 수행 방법을 정리해 놓았다.
그중에서도 정진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정진바라밀이란 계율의 종착역이다.
정진바라밀을 통해서 업장이 녹아 버리면 바로 선정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섭심위계(攝心爲戒)하고 인계생정(因戒生定)하고 인정발혜(因定發慧)한다.
계율의 종착역이 정진바라밀이다.
계율의 역전앞에 있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다.
종착역까지 가면 정진바라밀이라는 것이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지런한 정진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이냐.
몸과 마음의 모양을 다 떠나서 부지런하게 정진해서 잡되지 않게 사는 것이 선지식의 행이다.
앞에서 선지식을 만나, 선지식을 통해 우리의 행동이 선지식같이 다 갖춰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경책하고 부지런하게 나아가야 된다.
선지식만 만났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선지식 이후에 우리가 정진을 해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온 순서 그대로 소초나 합론에 보면 명쾌한 해석을 해놓았다.
경전의 해석은 이미 임상실험이 끝났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설하는 것이 아니고 순서대로 착착착 나온다.
선지식이 나오면 그다음에 근정진이 나와야 된다.
아무나 선지식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이 올발라야 된다.
선지식을 제대로 만났으면 저 뒤에 가면 ‘깨닫는다’는 수기가 나온다. 수기를 받으면 어떠냐?
지도 알고 부처님도 알고 남도 알고 다 아는 것이다.
어물쩡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압니까?’ 마음이 부처님처럼 열려 버리면 스스로 환하게 자기가 ‘내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다 아는 것이다.
‘여러분은 혹시 수기 받으셨습니까?’
확실히 모르면 안 받은 것이다.
받은 사람은 스스로가 안다.
깨달은 사람, 견성성불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본다.
‘내가 견성했는지 안 했지 잘 모르겠는데? 어디 가서, 병원에 가서 피 뽑아 봐야 되겠는데?’ 이런 사람들은 조금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여지없이 견성을 못한 것이다.
옛날에 제가 통도사에 살 때 월하방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거 나 요즘 깨달은 사람 못 봤는데 깨달으면 지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안다고. 지 혼자만 아는 건 잘 몰라. 남도 알아야 돼’ 라고 하셨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유십종 정진이라.
*
소위교화일체중생근정진(所謂敎化一切衆生勤精進)과 :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부지런한 정진이고
심입일체법근정진(深入一切法勤精進)과 : 일체법에 깊이 들어가는 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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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일체세계근정진(嚴淨一切世界勤精進)과 : 일체 모든 세계를 깨끗이 하는 부지한 정진이며
수행일체보살소학근정진(修行一切菩薩所學勤精進)과 : 모든 보살의 배운 바를 수행하는 부지런한 정진이고
멸제일체중생악근정진(滅除一切衆生惡勤精進)과 : 중생의 나쁜 짓을 제멸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다. 흔히 나쁜 중생 중에 아주 극악무도한 사람을 강강난화중생(剛强難化衆生)이라고 경전에서 표현한다.
너무 고집스러워서 쇳덩어리 같고,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다.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삼매의 맛을 보면 물 같은 유연함이 말소리부터 눈빛부터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 쏘아 보듯이 레이저처럼 팍팍 찌르는 사람들은 아주 아만덩어리 악독한 중생이다.
저처럼 착하니까 ‘살 빼라’하면 금방 10kg씩 빼고 이러는데 절대 살 못 빼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밥을 먹는다.
지식일체삼악도고근정진(止息一切三惡道苦勤精進)과 : 모든 세 가지의 삼악도 고통을 쉬게 하는 부지런한 정진이다.
삼악도의 고를 완전히 그쳐 버리는 부지런한 정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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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파일체중마근정진(摧破一切衆魔勤精進)과 : 마의 무리를 꺾어 버리는 부지런한 정진이고
원위일체중생(願爲一切衆生)하야 : 원컨대 일체중생을 위해 뭘하는가?
작청정안근정진(作淸淨眼勤精進)과 : 일체중생을 위하여 청정안근정진한다.
일체중생을 위하여,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오늘 대웅전에서 사진을 찍다가 먼지가 툭 떨어지니까 보살님들이 ‘아이고 먼저가 뚝 떨어집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가 ‘먼지가 어디 있노 먼지가 어디 있노’ 막 우겨버렸다.
“여기 있네요 스님.”
그런데도 ‘떨어질 먼지가 어딨노?’ 아는 스님에게 문제 있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우기고 왔다.
문제가 없다.
오늘 신심 있는 스님께서 부처님 벽화를 사진 찍으신다고 ‘율원장하고 강주하고 좀 잡아달라’고 해서 우리 교육국장 스님은 쫄병이 되어 옆에서 삼각대를 잡아주면서 대웅전에 다녀 왔다.
일체중생한테서 먼지를 봐 버린 사람은 일체중생한테 청정안을 짓지 못한다.
일체중생은 완전히 먼지투성이잖은가.
우리는 중생을 볼 때마다 혼탁한 눈만 가지고 본다.
중생도 ‘아이고 인간이 저렇게 사나. 지저분하게 거짓말이나 살살하고 욕심이나 부리고 아주 얍삽하게 저 쪽제비 같은 거 저게 인간이라고 저게 중이라고’ 맨날 이렇게 남을 가시 돋힌 눈으로 본다.
그런 것은 청정함이 아니다.
그러니까 대웅전에 가서 먼지를 보는 사람은 못된 사람들이다.
능엄경에 보면 그렇게 나온다.
‘산하대지가 본연청정한데 어떻게 산하대지가 일어났습니까?’
산하대지가 본연청정한데 일어나기는 뭘 일어나는가? 낭야 혜각(瑯琊慧覺) 선사가 그렇게 말했다.
육조스님도, 전부가, 몸도 먼지투성이고 생각도 먼지투성이데 ‘몸이 어디 있노? 생각이 어디 있노? 본래 없다.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어디가 먼지가 일어나노?’ 라고 하였다.
그래서 저도 막 그렇게 우기려고 한다.
먼지 뭉치가 떨어져도 ‘먼지가 어디 있노’라고 할 것이다.
공양일체제불근정진(供養一切諸佛勤精進)과 :모든 부처님께 일체제불에 공양 올리는 부지런한 정진과
영일체여래(令一切如來)로 : 일체여래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개실환희근정진(皆悉歡喜勤精進)이 : 아주 기뻐하게 한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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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와 같은 부지런한 정진에 머무른다면
즉득구족여래무상정진바라밀(則得具足如來無上精進波羅蜜)이니라 : 언제냐? 즉득 그 자리에서 바로 곧 얻게 된다.
깨닫게 된다. 구족 여래의 무상 정진 바라밀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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