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과 멸시를 감당하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27:32~44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누가복음에 보면, 로마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면서 말합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또 그 옆에 나란히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강도들도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하며 욕하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렇게 사방 팔방에서 쏟아지는 조롱, 멸시, 비방 속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침묵 중에 견디고 계실 따름입니다. 말없이 그 수치를 다 감내하시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쏟아지는 멸시와 조롱을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처럼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러한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경건한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한 멸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시편 119:22, 23, 141,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123:1~4,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그리고 다윗의 시며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언시로 이해되는 시편 22편에 이러한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시편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것,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우리가 경건한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갈지라도 이러한 멸시와 모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수치와 멸시를 당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27~36)
이렇게 가르쳐주시던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 위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그 가르침대로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주하며, 모욕하며, 멸시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축복하며 용서를 구하는 예수님의 실천은 우리들에게 실천적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그 당시 종과 노예 출신인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심판하시는 이에는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18~24)
오늘날 우리들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직장에서, 이웃간에, 집안 식구들 간에, 혹은 믿지 않는 가족 안에서 멸시와 모욕과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신앙 때문에 부당한 손해와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특별히 전도할 때에 멸시와 악담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항의하며 고소하고 고발하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런 일을 당하였고, 모든 진실한 신앙인들이 다 이러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도리어 소망 중에 기뻐하고 잘 시련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신앙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게 원수를 만나기도 합니다. 까닭없이 대적하는 훼방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모욕과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사사건건 시비하고 모욕을 주는 상관을 만나기도 하고, 공연히 트집을 걸고 뒷말하는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매사에 불퉁거리는 부하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까닭없이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이웃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당한 모욕과 조롱과 멸시를 만날 때 우리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위에서 멸시와 조롱과 인격 모독과 비방을 당할 때 말없이 견디면서 축복의 기도를 드렸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잘 감내하며 축복하며 하나님께 문제를 기도로 맡기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한 일을 만났을 때 욱하고 화를 내고 욕을 욕으로 대응하고 맞서면 신앙과 인격의 성장에 장애만 생길 뿐입니다.
잠언 12장 16절 말씀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온갖 수욕과 멸시와 조롱을 다 참아내시고 도리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신 모습을 항상 기억하여 본받아 행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이 시대에 성도를 향한 세상의 조롱과 멸시가 우리 위에 넘쳐 흐릅니다.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잘 인내하여 견뎌내며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며 더욱 사랑으로 다가가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